대한민국은 지금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는 나라이다. 이는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지는 그런 나라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저출산을 이야기하면 문을 닫는 어린이집과 통폐합하는 학교를 떠올린다. 그러나 인구 감소가 가장 먼저 무너뜨리는 것은 교육도 아니고 복지도 아니다. 경제다. 그리고 경제를 떠받치는 기업이다. 이제는 점점 기업이 사라지는 나라가 되고 있다.
기업은 하루아침에 문을 닫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기술이 이어지지 못하고, 시장이 축소되고, 후계자를 찾지 못하는 과정이 오랜 시간 반복되면서 조금씩 생명력을 잃어간다. 우리는 지금 그 과정을 지나고 있다.
내가 태어난 1960년 전후로 대한민국에서는 한 해 약 100만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던 나라였다. 새출발하는 분위기가 사회 곳곳에 만연했다. 학교에는 아이들이 넘쳐났고, 교실이 부족해 오전반과 오후반을 운영하면서도 대도시에서는 한 학급에 80명이 함께 콩나물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만 했다. 내가 대학에 갈 때에는 대학 입시는 치열했고,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기업들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경쟁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가장 큰 자원은 광물도 아니고 에너지도 아니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밤낮없이 땀 흘려 일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2025년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약 27만명이다. 내가 태어나던 해의 거의 4분의 1 수준이다.
먼저 사라지는 것은 손님이다.
소멸은 거창한 모습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골목에서 시작된다. 한때 대학가는 젊음의 상징이었다.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이 식당으로 몰려가고, 카페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서점과 복사집, 문구점, 편의점, 원룸, 하숙집까지 모두 학생들 덕분에 살아갔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풍경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대학가는 공동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가 상가건물 1층만 공실인 것이 아니라 건물 전체가 비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식당은 문을 닫고, 원룸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다. 서울 신촌 대학가 상가 거리가 그렇고 부산대 앞 상가도 그렇다고 한다. 학생이 줄어든 것이 대학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지역경제 전체를 흔들고 있다. 이것은 특정 대학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2024년 자영업자 폐업률이 9%를 넘었고 처음 1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매년 거의 100만개의 자영업자가 폐업하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풍경이다. 사람이 사라지면 소비가 사라진다. 소비가 사라지면 자영업이 무너진다. 그리고 소멸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다음은 기업이다.
대한민국 제조업은 이미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조선소는 용접공을 구하지 못한다. 건설 현장은 기능공 부족에 시달린다. 병원은 간호사를 구하기 어렵고, 농촌은 일손을 구하지 못한다. 요양시설은 돌봄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정원을 줄이거나 폐업을 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기업은 기술력이나 상품 시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없어서 생산을 늘리지 못해서 어려운 것이다. 외국 인력을 구하려고 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조와 정부 정책 때문에 상황은 더 심각해져 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숙련 기술이다. 숙련공 한 사람이 은퇴하면 단순히 한 명의 근로자가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함께 사라진다. 그 기술을 이어받을 젊은 세대가 없으면 기업은 설비를 갖추고도 생산하지 못한다. 기업의 경쟁력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만들어진다. 사람이 사라지면 기업도 함께 늙어간다.
일본은 이미 그 길을 걸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경험했다. 인구 감소가 시작되자 지방 제조업은 인력을 구하지 못했다. 숙련 기술자는 은퇴했지만 이를 이어받을 젊은 세대는 부족했다. 기업은 생산을 줄였고, 공장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났다. 지역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학교와 병원도 하나둘 사라졌다. 우리와 일본의 차이가 있다면 속도다. 일본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변화를 우리는 훨씬 짧은 시간 안에 겪고 있다. 그래서 대응할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기업은 두 번 죽는다
그러나 우리 기업 앞에는 또 하나의 장벽이 있다. 기업은 두 번 죽는다. 처음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 죽는다. 두 번째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해 죽는다. 대한민국에는 수십 년 동안 기술을 축적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 온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 적지 않다. 이들 기업은 한 개인의 재산이 아니다. 협력업체와 근로자, 지역사회가 함께 떠받치는 사회적 자산이다. 그런데 기업 승계 과정에서 세계 최고의 상속세 부담은 기업의 연속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기업은 현금으로 이루어진 자산이 아니다. 공장과 설비, 기술과 사람, 거래처와 신뢰가 모여 만들어진 살아 있는 조직이다. 승계 과정에서 경영권이 흔들리면 단순히 주인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기술과 조직, 협력망이 함께 흔들린다. 기업이 사라지는 것은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다. 그 기업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과 지역경제의 기반이 약해지는 일이다. 법을 만드는 대부분의 국회의원과 이를 집행하는 정부 관료들은 이러한 상황을 인지할 능력도 없고, 쳐다볼 여유도 없고, 본다 한들 정부의 선심성 정책을 지지하는 국민의 눈치를 보느라 말도 꺼내지 못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무너지고 있다.
소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저출산과 지방 소멸, 대학의 위기와 자영업 침체, 기업 경쟁력 약화를 각각 다른 문제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의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다. 학생이 줄어든다. 대학이 흔들린다. 대학가 상권이 무너진다. 자영업이 어려워진다. 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일자리가 줄어든다. 청년이 떠난다. 결혼이 줄어든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학생이 줄어든다. 소멸은 이렇게 서로를 증폭시키며 사회 전체를 잠식하는데 대한민국은 이 소용돌이 속에 이미 깊숙이 빠져들어 가고 있다.
최근 우리 경제는 반도체 산업 호황에 힘입어 수출이 증가하고 주가도 상승하고 있다. 이런 지표를 보면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건강을 한 산업의 성과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숲 전체가 병들어 가는데 가장 큰 나무 한 그루만 푸르다고 해서 숲이 건강한 것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걱정해야 한다. 다음 세대가 있어야 기업이 이어지고, 기업이 이어져야 일자리가 생기며, 일자리가 있어야 청년은 미래를 계획하고 가정을 이루며 아이를 낳는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을 지키는 일은 특정 기업이나 기업인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성장률만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과연 다음 세대까지 지속될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소멸 사회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날 시작되어 학교가 사라지고, 지역이 사라지고, 기업이 사라지는 순간이 되면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부의 양극화를 막고,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서민의 민생 지원을 늘린다고 떠든다. 민생 지원금으로 뿌려진 현금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국가 채권 발행 액수와 국가 부채는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물가와 집값을 올린다. 모두 서민과 기업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인구 소멸의 시대에 우리 사회는 지금 헤어날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과 언론과 학계의 지식인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여러 방면에서 소멸의 길에 들어섰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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