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버거킹]
햄버거의 맛이나 가격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란이 햄버거 브랜드까지 번졌다.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이 출연 배우 유해진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버거킹으로 옮겨붙었다. 온라인에서는 제품 구매 중단과 모델 교체를 요구하는 글이 등장했고, 버거킹은 유해진이 등장하는 광고 영상의 댓글 기능을 제한했다.
논란 속에서 버거킹과 유해진의 광고모델 계약도 지난달 30일부로 종료된 것으로 확인됐다. 버거킹은 유해진이 특정 시즌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단기 모델이었으며 예정된 계약 일정에 따라 TV 등 주요 광고 집행도 함께 마무리됐다는 입장이다.
버거킹 관계자는 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유해진 배우와의 광고모델 계약은 사실상 9월 30일부로 마무리됐고 TV 등 주요 광고도 모두 종료됐다”며 “보통 시즌 상품 출시 기간에 맞춰 모델을 단기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거킹은 지난 6월 ‘보일링 씨푸드 버거’에 이어 지난달 출시한 ‘트러플 머쉬룸 와퍼’에도 유해진을 모델로 내세웠다. 유해진의 이름과 ‘뉴(NEW)’를 결합한 ‘뉴~해진 트머와’라는 광고 콘셉트까지 만들었다.
영화 논란이 커진 뒤 상황은 달라졌다. 버거킹 광고 영상에는 모델 교체와 계약 종료를 요구하는 댓글이 이어졌고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상품권 환불이나 애플리케이션 탈퇴 인증도 등장했다. 버거킹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광고 영상 자체는 유지한 채 댓글 기능만 제한했다.
버거킹 관계자는 “댓글에서 정치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다른 고객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논란이 불거진 뒤 상황을 지켜보다가 댓글 기능만 막았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다른 광고주로도 번졌다. 유해진을 모델로 기용한 키움증권은 관련 광고 캠페인을 종료했지만 회사 측은 이 역시 당초 예정된 일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해진과의 모델 계약 자체는 유지하고 있다. 유해진이 출연한 광고 영상의 댓글 기능도 제한됐다.
영화 밖에서 벌어진 움직임은 더 거세졌다. 지난 4일에는 일부 보수 성향 단체가 유해진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열고 영화 상영 중단과 제작진·배우의 사과를 요구했다. 일부 단체는 버거킹과 키움증권 등 광고주를 찾아 계약 철회를 요구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에 유해진 소속사 VAST엔터테인먼트는 지난 5일 허위사실 유포와 인신공격, 사생활 침해와 신변 위협 등에 대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례가 업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논란의 출발점이 배우 개인의 사생활이나 범법 행위가 아니라 ‘출연 작품’이라는 점이다.
과거 광고모델 리스크는 주로 모델 개인에게서 시작됐다. 배우나 가수가 사생활 논란이나 학교폭력 의혹 등에 휩싸이면 기업은 광고를 내리거나 계약 관계를 다시 검토했다. 모델의 호감도를 브랜드 이미지에 얹은 만큼 부정적 이미지 역시 함께 옮겨오는 구조였다.
이번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배우가 출연한 영화의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배우 개인을 거쳐 햄버거와 금융회사 광고까지 이어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광고 계약 당시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브랜드 리스크가 확장된 셈이다.
논란의 발단은 ‘암살자(들)’이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삼으면서 당시 정부의 공식 발표와 다른 가능성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은 데 있다. 일부 정치권과 보수 성향 단체는 이를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제작진은 특정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 사실을 왜곡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유명인을 광고에 쓰는 이유도 결국 같은 원리에 있다. 모델이 가진 인지도와 친숙함을 상품에 옮겨오기 위해서다. 짧은 시간에 브랜드를 알릴 수 있고 모델의 이미지를 통해 제품 성격까지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연결이 강할수록 반대 방향의 위험도 커진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특정 배우가 광고하는 기업 목록이 빠르게 공유되고, 광고주의 고객센터나 공식 계정으로 항의가 몰릴 수 있다. 모델과 기업의 공식 계약이 끝난 뒤에도 소비자의 기억 속 연결은 상당 기간 남는다.
기업의 대응도 쉽지 않다. 광고를 그대로 두면 논란에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곧바로 광고를 내리면 기업이 사회적 논쟁에서 특정 입장을 택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논란의 원인이 기업이나 제품 자체에 있지 않을수록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과거 대규모 불매운동과도 차이가 있다. 2019년 일본 제품 불매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발단이었고, 2022년 SPC 불매는 계열 공장 사고 이후 기업에 대한 소비자 반발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기업이나 제품이 논란의 당사자였다.
반면 이번에는 버거킹도, 햄버거도 영화 논란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광고모델이라는 연결고리 하나로 전혀 다른 산업의 브랜드까지 소비자 판단의 대상에 들어간 것이다.
업계에서도 이런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광고모델의 사생활과 평판뿐 아니라 작품, 소셜미디어 활동 등 기업이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 영역이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광고모델의 사생활이나 개인적 논란을 주로 리스크로 봤다면 최근에는 작품이나 소셜미디어 활동 등 기업이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브랜드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사회적 논쟁이 발생했다고 곧바로 광고를 중단하는 것 역시 기업이 특정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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