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재판 참관기 4] "제 자리를 잃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목이 멘 오세훈의 마지막 호소

  • '오세훈법'을 5選 시장보다 명예롭게 여긴다는 고백…"여론조사 의뢰도, 대납 요청도 없었다"

  • 명태균 끊어내지 못한 처신에는 "모두 제 불찰"…23일 항소심 선고서 진실의 판단 요청

김두일 선임기자
김두일 선임기자

 
"나아가 저의 캠프가 부담하여야 할 비용을 다른 사람에게 대신 지급하도록 요청하였다는 것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지난 2일 서울고등법원. 최후진술을 이어가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목이 메었다.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론조사 비용 대납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전해졌다. 오 시장을 약 20년간 취재해 온 기자에게 이 순간은 오래 남았다. 평소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그가 무엇을 가장 아프게 받아들이는지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구회근)는 이날 오 시장과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사업가 김한정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항소심 결심공판을 열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오 시장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추징금 3300만원, 강 전 부시장과 김씨에게 각각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모두 1심과 똑같은 구형량이다. 오 시장 측은 여론조사 의뢰와 비용 대납 요청을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선고는 오는 23일이다.
 
오 시장은 먼저 촉박한 일정에도 피고인들의 의견과 주요 증거를 세심하게 살펴준 재판부에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이어 자신의 정치적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 깨끗한 정치인이 되겠다는 신념이었다.
 
“깨끗한 정치를 만들어 보겠다는 저의 뜻을 높이 평가하여 국민이 붙여준 자랑스러운 이 이름을, 저는 서울시장 5선보다 더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그가 말한 이름은 ‘오세훈법’이었다. 초선 의원 시절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는 입법에 앞장섰던 일을 그는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명예로운 성취로 꼽았다. 그래서 이 법을 '오세훈법'이라 명명했다. 그런 자신이 후원자에게 선거비용을 대신 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은 지켜온 신념과 양립할 수 없으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호소였다.
 
그 말을 들으며 기자는 2004년 그의 총선 불출마 선언을 떠올렸다. 오 시장은 앞서 5·6공 인사들의 용퇴를 주장했고, 자신도 기득권을 내려놓는 선택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만 물러나라고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다음 선거를 포기했던 이력이었다. 당시 오 시장의 지역구는 보수의 텃밭 강남이었다. 
 
정치인의 과거가 현재의 혐의를 저절로 지워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이 어떤 원칙을 세웠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내려놓았는가는 행위의 동기를 살필 때 가볍게 넘길 대목도 아니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앞장선 그가 왜 그 원칙을 스스로 허물었겠는가. 법정에서 그 질문에 답할 것은 구체적인 증거다. 기자가 최후진술에서 느낀 무게도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오 시장은 특검이 제시한 의뢰 동기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당내 경선에서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조바심을 느껴 명태균씨에게 먼저 연락했다는 구도가 선거를 치르는 자신의 태도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선거를 지휘하는 사람이 개별 여론조사에 흔들리면 캠프 전체가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특히 문제의 조사들이 이뤄진 때는 출마 선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초기였고, 판세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 차례 불리한 조사 때문에 갓 접근한 사람에게 별도의 조사를 의뢰했다는 설명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명씨를 대했던 자신의 태도도 설명했다. 김영선 전 의원을 통해 접근한 명씨가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책사를 자처했지만, 자신은 곧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강 전 부시장에게 명씨를 맡긴 것도 관계를 정리할지 판단하라는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선거 이후에는 전화 등 가벼운 소통조차 없었다고 덧붙였다.
 
항소심에서 새로 제출된 명씨와 김씨의 통화도 거론했다. 명씨가 자신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적대시하는 내용을 보면, 당시 자신이 명씨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앞선 참관기에서 살펴본 녹음 속 발언들과 이날 최후진술은 결국 같은 쟁점으로 모였다. 오 시장이 실제 여론조사를 의뢰했는가. 비용을 다른 사람이 부담하도록 요청했는가.
 
"저는, 특검이 제가 의뢰했다고 주장하는 그 여론조사를 사전에 논의한 적도, 그 결과를 받아 저의 선거에 활용한 적도, 단연코 없습니다."
 
그는 의뢰와 활용, 비용 대납 요청을 모두 부인했다. 그리고 캠프가 부담할 비용을 다른 사람에게 대신 지급하도록 요청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이어갔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오 시장은 목이 메여 울컥했다. 기자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의심받는 데 대한 깊은 상처가 묻어나는 순간으로 느껴졌다.
 
이어진 말은 처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명씨에게 이상한 느낌을 받았을 때 즉시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했고, 계속 접근할 여지를 줘 결국 법정에 서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공인으로서 우유부단했던 자신의 부족함이 모함의 여지를 줬다고 말했다.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책임은 자신에게 돌렸다. 이 말을 의뢰나 대납의 인정으로 읽을 수는 없었다. 그가 인정한 것은 명씨와의 관계를 일찍 끊어내지 못한 처신의 부족함이었다. 법정에서 다투는 행위와 국민 앞에서 돌아보는 책임을 그는 각각 자신의 말로 설명했다.
 
최후진술의 끝에서 오 시장은 자신의 자리보다 더 두려운 것을 말했다.

"재판장님, 저는 제 자리(서울시장)를 잃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가 두려워한다고 밝힌 것은 원칙을 지켜온 정치가 정치 브로커의 증오와 적개심 때문에 오염돼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었다. 서울의 번영과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라는 자신의 소명이 멈춰 서는 일이었다. '증오심'과 '조작된 정황'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오 시장 자신의 표현이다. 재판부는 그 호소를 포함해 법정에 제출된 증거와 진술을 판단하게 된다.
 
기자는 그가 목이 메었던 순간을 재판부가 그의 말을 이해하는 하나의 맥락으로 함께 살펴야 한다고 주문하고 싶다. 그것이 무죄의 증거라서가 아니다. 피고인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말로 설명하는 시간에는, 수사기록의 문장만으로 전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도 담기기 때문이다. 약 20년간 지켜본 오세훈의 성정과 그날의 호소는 기자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증오가 진실을 이길 수 없고 조작된 정황이 사실을 덮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사법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바로 이 법정에서 증명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는 진실에 기초한 현명한 판결을 간곡히 요청하며 말을 마쳤다. 이제 답은 재판부의 판단으로 돌아온다. 오는 23일, 법정은 그가 지켜왔다고 말한 원칙과 그가 하지 않았다고 말한 행위 사이에 어떤 증거가 놓여 있는지 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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