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수첩은 왜 자꾸 카메라에 찍힐까

  • 렌즈에 포착된 의원석 뒷줄, 정치판을 흔든 '노출 사고들'

국회 본회의장 2층 방청석, 망원렌즈를 장착한 사진기자들의 시선은 언제나 1층 의원석 뒷줄을 향한다. 당 지도부와 중진들이 모여 앉는 자리로, 카메라가 의원들의 손끝과 스마트폰 액정을 포착하기 쉬운 곳이다.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수첩 김 대표의 수첩에는 서울시장 후보로 5명의 성을 뺀 이름 또는 이니셜이 적혀 있다 이 가운데 청래를 제외한 나머지는 흐릿하게 포착돼 식별이 어렵다 수첩 오른편에는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과 한동훈 무소속 의원의 이름 옆에 OUT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수첩 [사진=연합뉴스]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의 수첩이 연달아 렌즈에 잡혔다. 지난 9월 9일에는 '서울시장 후보' 아래 '청래' 등의 이름과 '이진숙·한동훈 OUT'이, 10월 1일에는 '전작권', '세종의사당 집무실 check', '한동훈 file' 등이 찍혔다. 서울시장 후보 명단에 오른 정청래 전 대표는 "수첩으로 때리느냐"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 메모는 주변에서 거론된 인사를 아이디어 차원에서 적은 것이고, 'OUT'은 두 의원의 제명이나 자격정지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노출 뒤에는 난감함을 드러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 / 유튜브 '민티07']
"개인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메모하거나 하는 것들. 그 메모에 그냥 제목만 있을 수 있는 걸 가지고 그거를 마음대로 찍어서 마음대로 쓰고 마음대로 유추한다 이게 과연 맞나. 공인에 있어서 공적인 것도 프라이버시라는 것이 있어서 적절한 범위가 있는 것인데…"


개인적인 메모인 만큼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 / 유튜브 '민티07']
"이번에는 보니까 글씨 자체를 오독한 경우가 몇 개 있더군요. 제 필체를 탓해야 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걸 굳이 제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실수일까, 메시지일까

본회의장 노출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2년 7월 대정부질문 중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주고받은 텔레그램에 '체리 따봉'과 '내부 총질' 문구가 찍혔고, 이후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 체제로 넘어갔다.

2024년 12월 11일 비상계엄 관련 긴급현안질문 때는 안철수 의원 휴대전화에 윤상현 의원을 겨냥한 "입단속 좀 시켜라"는 동료 의원들의 문자가 포착됐다. 같은 날 조은희 의원이 이철규 의원과 주고받은 텔레그램에는 원내대표 선거 국면에서 의원 이름 옆에 '확실', '불확실'을 적은 명단이 담겼다. 12월 14일 탄핵안 2차 표결을 앞두고는 한 의원의 자녀가 "아빠 제발 정무적 판단 좀 하세요. 내일 지나면 끝이야"라고 보낸 메시지도 찍혔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41207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4.12.07[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2025년 8월에는 당시 법사위원장이던 이춘석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주식 거래 화면을 보다 포착됐다. 계좌 명의자가 보좌관으로 알려지며 차명거래 의혹으로 번졌고, 이 의원은 화면을 연 것은 사과했으나 차명거래는 부인했다. 이후 민주당을 탈당하고 법사위원장직도 내려놨다.

모두 카메라에 포착된 장면 하나하나가 화제가 된 사례들이다. 대체로 의도치 않은 노출, 곧 부주의로 여겨졌다.

‘공식 발언’의 책임은 피하고, ‘알리바이’만 남기는 꼼수?

반면 의도된 노출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한 사진기자는 과거 기고에서 노련한 정치인 가운데는 휴대전화나 자료를 일부러 오래 노출해 기자가 담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썼다. 한동훈 의원은 김 대표가 일부러 사진에 찍혀주는 정치를 한다고 비판했다.

공식 회견은 검증과 책임이 따르지만, 수첩 노출은 파장을 일으키면서도 논란이 커지면 '개인 메모였을 뿐'이라며 물러설 구실, 곧 정치적 알리바이가 남는다는 해석이다.

의도적 노출이라는 의혹은 해외에서도 있었다. 2017년 미국에서는 백악관을 방문한 랍비(유대교 지도자) 슈물리 보테치가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와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사진 배경의 화이트보드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 이행 목록이 적혀 있었다. 보테치는 배넌이 사진 게시를 허락했다고 밝혔고, 영국 가디언은 이를 단순 실수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공인의 메모에도 프라이버시가 있을까

노출이 실수였는지 메시지였는지는 끝내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의도보다 중요한 것은 공적 관련성이다. 사사로운 사생활은 보호해야 하지만, 본회의장에서 오간 메모가 공인의 정치적 판단과 이어져 있다면 이를 사생활의 울타리로 묶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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