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태의 중남미 포커스] 광산은 남미에, 길은 중국으로 …韓 자원외교의 빈 칸을 채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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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태, 중남미 전문 전 외교관]
 

 
한국은 반도체 강국을 이야기하고 AI와 데이터센터, 이차전지, 전력망, 로봇과 우주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는다. 독자 개발한 KF-21 전투기도 한국 첨단 제조업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자주 놓치는 전제가 하나 있다. 이 모든 첨단산업은 필요한 광물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뛰어난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이 있어도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으로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투기 한 대에도 수많은 금속과 특수소재가 들어간다. AI가 확산될수록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이 늘어나고 막대한 양의 구리가 필요해진다.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에는 리튬·니켈·흑연 등이 필요하다. 첨단산업 경쟁은 기술경쟁인 동시에 소재와 광물을 둘러싼 공급망 경쟁이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지도를 다시 보면 중남미가 전혀 다르게 보인다. 칠레와 페루는 세계적인 구리 생산국이고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주요 리튬 생산국이다. 브라질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도 니오븀·흑연·희토류 등 전략 광물이 풍부하다. 한국에서 물리적으로는 멀지만, 미래산업과 경제 안보의 관점에서는 결코 먼 지역이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중남미에서 근무하면서 이 지역의 가능성과 한국과 중남미 관계의 한계를 함께 지켜보았다. 공급망 경쟁이 벌어지는 지금, 우리의 시각은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가. 여전히 중남미를 먼 시장이나 개발 협력 대상, 대통령 순방 때 경제사절단이 찾아가는 지역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도체와 AI, 첨단 방산을 국가전략산업이라고 말한다면 그 산업을 가능하게 하는 광물과 에너지, 시장을 가진 중남미 역시 국가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자원외교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 정부도 핵심 광물 확보와 공급망 다변화, 자원외교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나 역시 그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관련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말하는 ‘자원외교’란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정상회담에서 광물 협력을 논의하고 MOU를 체결하는 것인가. 필요한 광물을 장기계약으로 구매하는 것인가. 아니면 광산에 투자하고 생산권을 확보하며 제련·정제와 물류까지 공급망에 참여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이 분명하지 않다면 ‘핵심 광물 확보’와 ‘공급망 다변화’는 구호에 머물 수밖에 없다.

자원외교를 제대로 하려면 먼저 광물 산업의 생태계를 이해해야 한다. 땅속에 광물이 있다고 바로 반도체나 배터리 공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리는 광석을 채굴하고 선광해 구리정광(Copper Concentrate)을 만든 뒤 제련과 정련을 거쳐 전기동(Copper Cathode)과 같은 산업용 소재가 된다. 리튬도 염수나 광석에서 추출한 뒤 정제·가공해야 하고, 희토류는 필요한 원소를 분리해 고순도로 정제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광산을 확보하는 것과 산업이 실제로 쓸 수 있는 광물을 확보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누가 광산을 소유하고 개발하는가, 생산된 광물은 어디로 가는가, 누가 제련·정제하고 소재와 부품으로 만드는가, 전력·용수·철도·항만과 물류는 누가 제공하는가까지 봐야 공급망의 실체가 보인다.

중국은 광산이 아니라 길을 만들었다

중국이 지난 수십년 동안 중남미에서 해온 일을 보면 이 구조가 더욱 선명해진다. 중국은 해외 광산의 지분을 확보하고 생산물을 장기 구매했으며 자국에는 대규모 제련·정제와 소재산업을 구축했다. 페루의 대형 구리광산 라스 밤바스(Las Bambas)는 중국계 컨소시엄이 소유하고 있고, 토로모초(Toromocho)는 중국 국유기업 치날코(Chinalco)가 개발·운영하고 있다. 중국계 서우강(Shougang)은 페루 마르코나(Marcona) 철광산을 장기간 운영해 왔으며, 찬카이항(Port of Chancay)에도 중국 자본이 참여해 남미와 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물류거점을 구축했다.

더 주목할 것은 광산 이후다. 칠레는 2025년 세계 구리정광 생산의 약 23%를 차지했다. 같은 해 칠레 구리 생산에서 정광 비중은 약 64%였고, 수출되는 구리정광의 약 3분의 2가 중국으로 향했다. 반면 칠레가 세계 제련동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3%에 그쳤고, 자국 제련시설의 가동률도 60% 수준이다. 페루 역시 구리 수출의 70% 안팎이 중국으로 간다. 광산은 남미에 있지만, 그곳에서 나온 막대한 광물이 중국의 산업 생태계와 연결된 것이다.

희토류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극명하다. 광산을 확보하더라도 원소를 분리·정제할 능력이 없다면 핵심 중간단계를 다른 나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힘은 광산을 많이 확보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광산에서 정광, 제련·정제, 소재와 제조업, 물류로 이어지는 길을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 놓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탈 중국’도 말처럼 쉽지 않다. 중국산 광물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한다고 새로운 공급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빠진다면 누가 광산개발에 장기자본을 제공하고 생산물을 구매할 것인가.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싶다면 중국이 해온 역할 가운데 무엇을 우리가 맡을 것인지부터 답해야 한다.
 
자원외교,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 기업들은 장기구매계약인 오프테이크(Offtake Agreement) 등을 통해 필요한 원료를 확보해 왔다. 광산개발에는 막대한 자본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지질·가격·환경·지역사회 위험도 크기 때문에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광물은 돈이 있다고 필요할 때 시장에서 원하는 만큼 사올 수 있는 일반 상품이 아니다. 주요 광산 생산물의 상당 부분은 이미 장기계약으로 판매처가 정해져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한 구매 능력이 아니라 필요한 광물에 장기간 접근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급망이다. 자원보유국 정부와 좋은 관계를 맺는다고 광물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광업권과 개발허가, 세제와 환경규제를 결정하지만, 실제 광산의 개발과 생산·판매에는 글로벌 광산기업과 민간 기업이 깊숙이 관여한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해외 광산을 무조건 사들이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자원외교’라는 말에는 과거 해외자원개발이 남긴 막대한 손실의 기억이 따라붙는다. 멕시코 볼레오 광산(El Boleo)은 우리가 왜 신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이 사업에 3조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손실이 누적됐고, 결국 2025년 11월 보유 지분과 채권 전량을 사실상 회수금 없이 매각했다. 국가적으로 광물이 필요하다는 것과 개별 광산사업의 경제성이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매장량과 품위, 개발비용, 가공기술, 인프라, 운영 능력과 가격변동 위험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시급함과 졸속은 다르다.

광물별로 전략도 달라야 한다. 시장구매와 장기계약으로 충분한 광물이 있지만 오프테이크와 지분투자를 결합해야 할 광물도 있다. 반도체·배터리·전력망·방산 등 핵심산업과 직결되고 공급국이 제한된 광물이라면 광산지분과 개발 참여, 생산물 인수권, 국내외 제련·정제 능력까지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중남미의 입장도 봐야 한다. 칠레와 페루가 원하는 것은 광물을 더 많이 캐서 외국에 파는 것만이 아니다. 자국에서 가공과 산업화를 확대해 더 많은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남기기를 원한다. 우리에게 광물이 필요하다면 상대국은 산업발전을 필요로 한다. 두 이해를 연결하는 것이 진짜 자원외교다.

칠레는 이미 구리 제련·정련과 전기동 생산 기반, 리튬 추출·정제·가공산업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노후 시설 현대화와 생산성·에너지 효율 향상, 전선·케이블·동박·전력 기기와 배터리 소재산업으로 이어지는 협력을 생각할 수 있다.

처음부터 광산을 직접 개발하거나 대규모 제련시설에 투자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국내 기술 스타트업 엔투이머트리얼즈(N2E)는 칠레의 세계적인 리튬 생산기업 SQM(현 Nova Andino Litio SpA)과는 리튬 염수의 자연 증발을 촉진하기 위해 개발한 패널(SMP) 도입을, 구리광산 Minera Los Mantos와는 검측 관리 IoT 시스템과 고강도 배관(IPVC) 등 국내 제품의 공급을 각각 추진하고 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스타트업도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가지고 현지 시장을 꾸준히 개척한다면 세계적인 광산기업의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에는 광산의 생산성과 안전, 에너지, 환경, 자동화와 검측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기업이 적지 않다. 이런 기업들이 기술과 장비, 서비스를 공급하면서 현지 광산기업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산업구조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작은 기술협력이 장기계약과 공동사업으로, 이후 투자와 오프테이크로 확대될 수도 있다. 자원외교를 반드시 광산을 사는 것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 먼저 광산 생태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제 중남미 외교를 다시 볼 때다

최근 대통령의 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 방문과 멕시코 국빈 방문을 계기로 중남미와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 칠레와는 광물 자원 파트너십 MOU를 체결했고, 아르헨티나와도 리튬을 비롯한 핵심 광물의 탐사·채굴과 투자·공동사업을 위한 협력체계를 마련했다. 브라질과는 희토류 등을 포함해 채굴뿐 아니라 중·하류 가공과 부가가치 창출까지 협력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멕시코와도 경제 및 산업·자원 협력 이니셔티브를 체결하고 양국 정부 간 광물 자원 협력 공동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정상외교가 문을 열었다면 그 문을 통해 실제 사업이 들어가야 한다. 어느 광물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어느 국가와 광산에서 확보할 것인지, 누가 투자하고 누가 구매할 것인지, 제련·정제와 금융·물류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이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만이 아니라 광물을 사용하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중남미의 광산과 기업, 광업 정책과 법 제도를 알고 제련·정제, 국제금융과 계약, 환경과 지역사회, 물류와 현지 언어까지 연결해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광물별 우선순위를 정하고 수요기업·금융기관·공공기관이 함께 프로젝트를 만드는 협의체와 중남미 전문인력 양성체계가 없다면 자원외교는 정상회담과 경제사절단이 지나갈 때마다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수십년에 걸쳐 광산투자와 장기구매, 제련·정제, 소재산업과 물류망을 연결했다. 우리가 하루아침에 그 구조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제는 미래 한국 산업에 필요한 광물이 무엇인지 정하고, 어디에서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 공급망의 어느 부분에 우리가 직접 들어갈 것인지 하나씩 답을 만들어 가야 한다.

10년 뒤 우리 손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은 정상회담 사진과 또 다른 MOU가 아니다. 실제 광물과 안정적인 공급계약, 기술과 인프라, 현지 기업과의 네트워크, 그리고 이를 지속해서 발전시킬 전문인력이어야 한다. 중남미는 더 이상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자원 부국이 아니다. 한국의 미래산업과 경제 안보를 함께 설계해야 할 전략적 파트너다. 자원외교는 광물이 땅속에서 나와 우리 산업에 들어오기까지의 길을 만드는 일이다. 이제 그 길을 실제로 만들 때다.

필자 주요 이력
 
△중남미 전문 외교관 출신 △ 페루 Trujillo 국립대학교 명예교수 △ 콜롬비아 Dentons Cardenas & Cardenas 법무법인 고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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