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금요일 밤이면 사람들로 붐빌 법한 PC방을 지나쳤는데, 창가에 보이는 자리는 절반도 차지 않았다. 거리 곳곳에 생긴 인형뽑기 매장에는 10대부터 20·30대까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짱구, 유미의 세포 등 원하는 캐릭터를 뽑기 위해 기계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며 게임을 즐기기 위해 PC방을 찾던 과거와는 다른 놀이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년간 게임업계를 취재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게임을 오래 하지 않는다”는 고민이다. 새로운 게임을 내놓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게임을 처음 시작할 이용자를 찾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기보다 게임에 쓸 수 있는 시간과 관심을 둘러싼 경쟁자가 과거보다 많아졌다는 얘기에 가까웠다.
201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기자에게도 PC방은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PC방에 모여 몇 시간씩 게임을 했다. 고향이 울산인 탓에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았고, 학생들에게 허락된 공간이라고 해봐야 코인노래방이나 PC방 정도였다. 대학생 시절에는 PC방에서 웬만한 식당 못지않은 메뉴를 팔기 시작해 더 자주 찾게 됐다. 게임을 하지 않는 친구들도 PC방에서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게임을 배우기도 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짧은 영상 하나를 보기 시작했을 뿐인데 몇십 분, 때로는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도 한다. 새로운 게임을 익히려면 공략을 찾아보거나 게임 방식을 익혀야 하는 것과 달리 숏폼은 휴대전화 하나만 있으면 즐길 수 있다. 친구가 없어도, PC가 없어도 된다. 친구와 대화할 때도 긴 메시지를 주고받는 대신 재미있는 릴스 하나를 보내는 것으로 근황 토크가 시작되기도 한다. 이렇게 간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콘텐츠가 늘면서 식사 시간만큼은 조용히 보내고 싶은 부모들이 어린 자녀에게 숏폼 시청을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짧은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몇 달 전에는 AI로 제작한 ‘과일 불륜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사과, 바나나, 키위 같은 과일이 사람처럼 등장해 막장극을 연기하는 콘텐츠다. 처음에는 누가 이런 걸 보나 싶지만 어느새 다음 편을 찾아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중국에서는 AI를 활용해 비슷한 형식의 짧은 영상을 대량으로 제작·유통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도 AI를 활용하면 몇 초 만에 만들어낼 수 있어 콘텐츠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작품성을 따져야 할 콘텐츠와는 거리가 있어도 한 편을 보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힘은 있다. 게임과 숏폼은 이용자의 한정된 시간을 놓고 경쟁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최근 만난 게임 업계 관계자는 요즘 젊은 세대의 콘텐츠 소비 방식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는 게임을 시작하려면 공략법을 찾아보고 복잡한 조작법과 규칙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웹툰이나 웹소설의 설정에 몇 가지 요소를 더해 AI로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식의 놀이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게임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최근 찾은 한 대학가 상권에서는 한 매장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인형뽑기 매장이 들어서 있었다. PC방이 친구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가챠샵에서 좋아하는 캐릭터를 뽑고 숏폼을 넘겨보며 AI로 원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식으로 놀이의 방식이 세분화되고 있다.
게임업계를 취재하며 여러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봤지만, 본인 역시 어느 게임 하나 일주일 이상 꾸준히 하지 못했다. 게임을 하지 않던 사람이 게임을 시작하게 만드는 것도, 시작한 사람이 계속 게임을 하게 만드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게임에 쓸 수 있는 시간과 관심을 둘러싼 경쟁자가 많아진 지금, 게임업계는 이용자에게 게임을 ‘해야 할 이유’를 어떻게 만들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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