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행정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정책 실패가 아니다. 판단이 사라질 때다. 정책은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판단 능력을 잃은 행정은 실패조차 학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단체장의 AI 리터러시 부재가 있다.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특정 부서의 기술이 아니다. 예산을 배분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며, 행정 서비스의 방향을 결정하는 판단 구조 자체가 AI와 데이터 기반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AI를 이해하지 못하는 단체장은 필연적으로 외부 보고서에 의존하게 된다. 문제는 ‘외주’ 그 자체가 아니라, 외주를 검증하지 못하는 구조다.
지방정부의 주요 정책 보고서 상당수는 이미 AI 분석 결과를 전제로 작성된다. 교통 수요 예측, 재난 위험 지도, 복지 사각지대 발굴, 지역 산업 경쟁력 분석까지 데이터 모델과 알고리즘을 거치지 않는 정책 설계는 드물다. 그러나 단체장이 이 분석의 전제와 한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보고서는 참고 자료가 아니라 사실상 결정 그 자체가 된다. 질문하지 못하는 리더는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하지 못하는 리더는 책임질 수 없다.
AI 리터러시가 부족한 단체장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은 “전문가에게 맡겼다”다. 그러나 행정에서 전문가는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전문가는 설명하는 사람이지,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다. 보고서에 ‘AI 분석 결과에 따르면’이라는 문장이 반복될수록, 그 결과가 어떤 데이터에서 출발했는지, 어떤 가정 위에서 작동하는지는 뒤로 밀린다. 이때 행정은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판단을 외주화한 상태다.
이 구조의 위험성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재난 대응에서 AI 예측 모델은 중요한 도구다. 그러나 모델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예외 상황과 새로운 변수, 현장의 직관은 결국 사람이 보완해야 한다. 단체장이 AI를 맹신하거나, 반대로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결과만 받아들이는 순간 행정은 경직된다. 기술은 도구가 아니라 알리바이로 전락한다.
AI 리터러시의 핵심은 ‘잘 쓰는 능력’이 아니다. 묻고, 의심하고, 선택하는 능력이다. 이 정책 판단에 사용된 데이터는 무엇인가. 어떤 집단이 데이터에서 배제됐는가. 알고리즘의 오류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가. 자동화된 판단이 주민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은 없는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 AI는 행정을 강화한다. 질문하지 못할 때 AI는 책임 회피의 수단이 된다.
지방선거에서 이 문제가 거의 다뤄지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AI 리터러시는 말로 포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덕성이나 경륜처럼 추상적인 미덕과 달리, AI 이해도는 구체적인 질문 앞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후보자 토론에서 늘 빠진다. 그러나 빠진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영역일수록 위험은 커진다.
공무원들은 이미 변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공무원 대상 AI 교육을 확대하고, 실무 적용을 전제로 한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조직의 최종 판단권자인 단체장은 예외로 남아 있다. 선출직이라는 이유로 학습과 검증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는 조직 전체에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 배우는 사람과 결정하는 사람이 분리된 조직에서 혁신은 일어나기 어렵다.
‘AI 리터러시 선수’란 화려한 기술 공약을 내세운 후보가 아니다. 개발자를 자처하는 단체장도 아니다. 질문할 줄 아는 리더, 판단의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 리더, AI를 핑계로 숨지 않는 리더다. 이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며, 공적 책임의 문제다.
AI를 모르는 단체장이 외주 보고서에 의존하는 것은 개인의 무능 때문이 아니다. 시스템의 결과다. 그러나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선거다. 묻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검증하지 않으면 책임지지 않는다.
6·3 지방선거, 이제는 단체장의 말솜씨가 아니라 판단의 깊이를 봐야 한다.
AI 시대의 지방행정은 선언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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