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심야에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분류하고 검수하고 포장해야 한다. 택배기사들은 대부분 국민이 잠든 시간에 새벽배송 차량을 몰아 위험천만한 도로를 달린다. 문제는 야간·심야 노동이 인간의 생체리듬을 깨뜨려 만성질환, 과로사, 산업재해 위험을 급격히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야간 고정근무는 신체가 적응할 수 없으며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한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택배 물량이 폭증하며 과로사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됐고 2021년 택배업계·노조·정부·소비자단체가 참여한 사회적 합의까지 이뤄졌다. 당시 합의문에는 '밤 9시 이후 심야 배송 제한'과 '분류작업은 배송기사 업무에서 제외'가 명시됐다.
그럼에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택배기사의 평균 노동시간은 여전히 주당 약 70시간에 육박하며 설령 아프더라도 쉬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10일 제주에서 새벽 배송을 마치고 복귀하던 30대 기사가 사고로 숨졌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올해만 야간노동과 새벽배송으로 인해 4명이 숨졌다. 전국택배노조는 2020년부터 올해 11월까지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택배기사 등 모두 27명이 일을 하다 숨졌다고 추산한다.
이것은 단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강요다. 택배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한다면 마땅히 근로시간 제한, 안전장치, 휴식권 보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성을 인정하면서 노동시간 규제는 외면하는 것은 반쪽짜리 법·제도에 불과하다.
새벽배송의 실체는 노동 강도에 비해 처우가 턱없이 낮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일부 대기업은 '택배기사 연 소득 6900만원'이라는 홍보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차량비·유류비·보험료·수리비 등을 제외하면 연 소득이 40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한밤중 폭우·폭설 속에서 생명을 걸고 일하는 노동자가 사무직 평균 연봉 수준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과연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 것인가.
또 물류센터의 냉난방 시설 미비 또한 여전히 심각하다. 신선식품 물류센터에서는 난방기 가동이 어렵다는 이유로 한겨울에도 장시간 추위에 노출된다. 기술적으로 설치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단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기업이 투자하지 않을 뿐이다. 결국 비용 절감의 대가는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다.
택배는 전 국민이 이용하는 필수 공공서비스다. 그러나 정작 정치권과 정부는 사고가 발생할 때만 관심을 보일 뿐이며 구조적 개선에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국민의 편의 뒤에서 누군가의 건강과 삶이 무너지고 있다면 결코 선진국의 모습이 아니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새벽배송의 대가로 누군가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 정당한가. 새 정부와 국회는 심야·새벽배송이 초래하는 위험을 직시하고 실질적인 법·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빨리빨리' 문화가 과거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함께'와 '안전'이 미래를 이끌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12위 경제대국이며 선진국이다. 국민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택배 서비스 뒤에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 택배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음으로 삶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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