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잘못된 정보로 밀린 KF-21, 방산외교의 교훈

박선태 페루 트루리요 국립대학 명예교수
[박선태 전 주페루공사, 현 페루 트루리요 국립대학 명예교수]


전통적 협력국, 그러나 배제된 KF-21
  
페루는 전통적으로 한국과 방산 분야에서 가장 긴밀히 협력해 온 국가다. 경찰 차량, 해군 함정, 공군 훈련기, 육군 장비까지 네 군(경·해·공·육)에 걸친 협력은 중남미에서 드문 사례다. 그러나 최근 페루 공군의 전투기 현대화 사업(24대, 약 35억 달러 규모)에서 우리의 KF-21 보라매가 ‘시제품’이라는 잘못된 정보로 고려 대상에서 배제된 것은 뼈아픈 일이다.

후보 기종들의 한계와 KF-21의 장점

현재 페루가 검토하는 후보는 프랑스 라팔, 미국 F-16V, 스웨덴 그리펜이다. 세 기종 모두 강점이 있지만, 동시에 높은 가격, 인도 지연, 생산 병목, 외국 부품 의존 등 뚜렷한 약점을 안고 있다. 반면 KF-21은 이미 양산 단계에 들어섰고, 2026년부터 연간 24대 납품이 가능하다. 비용·운영 경쟁력뿐 아니라 과거 페루에서 KT-1P 훈련기 공동 생산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 조립과 연구개발까지 제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도 남아 있는 기회  

필자는 페루에서 두 차례 외교관으로 근무했고, 30여 년간 중남미 외교에 몸담았다. 그 과정에서 페루에서 수많은 각료와 대통령이 교체되는 불안정을 직접 목격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지금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페루는 의회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의회가 정확한 정보를 접한다면 성급한 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외교적으로 개입하느냐의 여부다. 개입하지 않으면, 세 기종 모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중 하나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방산외교가 주는 교훈  

이번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좋은 무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확한 정보 전달, 적극적인 고위급 외교, 현지 정치·제도에 대한 이해가 결합되어야 방산외교가 성공한다. “정권 말기에는 큰 결정을 못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도 경계해야 한다. 과거 중앙고속도로 낙찰자 선정이 정권 말기에 이루어진 전례가 있듯, 방산 결정도 막판에 속도감 있게 내려질 수 있다.

실리외교의 시험대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실리외교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KF-21을 다시 경쟁 구도 안으로 복귀시키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전투기 구매가 아니라 한국 방산외교가 얼마나 전략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무대다. 대통령실의 현명한 결단을 기대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전 주페루공사, 현 페루 트루리요 국립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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