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가 막 태동하던 격동의 시기,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타오르는 창작의 불꽃으로 또 자신만의 빛으로 어둠을 밝힌 여성 작가들을 조명하는 특별전이 마련됐다.
천경자, 방혜자, 윤석남, 류민자, 박래현 등 한국 현대미술의 여성 거장 5인을 조명하는 특별기획전 ‘찬란한 빛과 예술혼’이 오는 10월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아트큐브 2R2에서 열린다.
이번 특별전은 여성 작가 5인이 예술의 황무지 속에서도 구축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들여다보고, 이들이 한국 미술사에 남긴 미학적 성취와 역사적 의미를 국내외 관람객들과 공유하기 위한 자리다.
아트큐브 2R2는 “전시는 여성 작가들이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도전과 이를 극복하고 쌓아 올린 예술적 성취를 중심으로 구성된다”며 “작품을 통해 작가들은 여성의 삶에서 경험하는 희생, 헌신, 인내, 고독 등 감정을 표현하는 동시에 이를 넘어서는 강인함, 창조성, 개척정신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천경자, 박래현, 윤석남, 방혜자, 류민자 등 각각이 시대적 제약을 넘어 완성한 고유한 미학적 성취를 볼 수 있다. 아트큐브 2R2는 “이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여성 예술가에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며 “남성 중심의 화단, 사회적 편견, 그리고 전쟁과 가난이라는 시대적 제약 속에서 이들은 붓 하나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고 평했다.
이어 “그들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단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며 “그들의 캔버스에는 삶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낸 한 인간의 투쟁, 세상의 통념에 맞서 자신의 언어를 지켜낸 예술가의 자존심, 그리고 시대를 앞서 나간 혁신가의 고독과 환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천경자(1924~2015)는 화려한 색채로 자신의 꿈과 슬픔, 한(恨)을 뱀과 여인의 모습으로 노래하며 인습의 틀을 깼고, 방혜자(1937~2022)는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추상을 녹여낸 빛의 울림을 그렸다.
윤석남(1939~현재)은 미술이 어떻게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하고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지를 증명했고, 류민자(1942~)는 작은 색면들을 엮어 생명의 경이로움과 정토(淨土)의 세계를 만다라처럼 펼쳐냈다. 박래현(1920~1976)은 동양화의 경계를 넘어 판화와 태피스트리까지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한국화가 나아갈 새로운 가능성의 영토를 개척했다.
관람객들은 한 개인이자 예술가로서 견뎌온 삶의 무게 등 전시장 곳곳에 녹아든 작가들의 치열한 사유와 실험정신을 통해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다.
홍지숙 아트큐브 2R2 대표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여성 작가들의 성취를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며 “그들이 남긴 찬란한 흔적을 통해 예술적 유산이 다음 세대로 어떻게 계승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함께 사유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아트큐브 2R2는 프리즈서울 주간에 운영되는 청담 나잇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전 세계 미술 관계자와 컬렉터들에게 한국 여성 미술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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