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HW 30년, SW 30년 …굴뚝만 세운 껍데기 제국

  • 소프트웨어는 기계 덩어리를 움직이는 육법전서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컴퓨터는 시스템 관점에서 볼 때 국가라는 조직만큼 매우 복잡하다. 컴퓨터를 하나의 국가 조직에 비유한다면 국토, 건물, 도로, 자동차 같은 것이 하드웨어(HW)에 해당한다. 국가를 운영하려면 법 체계가 필요하듯이 컴퓨터에서도 그렇다. 컴퓨터 구성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구동 시키는 법전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소프트웨어(SW)에 해당한다. 즉 SW란 HW를 구동하는 육법전서와 같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엔진 변속기 운전대 바퀴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HW다. 반면 운전자의 운전법은 실물의 형태를 갖지 않는 SW다. 그래서 SW는 눈에 보이지 않고 머리 속에 혹은 컴퓨터 속에 숨어 있는 존재다. 따라서 HW란 기계 덩어리 혹은 실리콘 덩어리인 반면 SW는 질서 정연하고도 유연한 법의 체계를 갖고 있다. 법을 영어로는 프로토콜(규범) 혹은 알고리즘(해법)이라고 부른다. 컴퓨터의 HW에는 기억용 메모리 칩과 계산용 비베모리 칩, 이 두 가지가 있다. 따라서 기억칩과 계산칩을 유기적으로 작동 관리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SW다. 즉 SW란 기억칩(메모리)에 저장돼 있는 데이터(숫자 문자 등)를 계산칩(비메모리)으로 가져와 계산(더하기 빼기)을 한 다음 계산된 결과를 다시 기억칩에 저장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메모리도 누군가 만들어야 하고 비메모리도 누군가 만들어야 한다. 또한 SW도 누군가 제작해야 한다. 이런 메모리 제작 업체로는 삼성이 있고 비메모리 제작 업체로는 인텔과 엔비디아가 있다. 비메모리에는 계산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계산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SW가 필요하다. 따라서 메모리 업체는 삼성처럼 SW가 필요 없으나 비메모리 업체는 인텔이나 엔비디아처럼 SW를 필요로 한다. SW 업체의 대표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SW가 윈도고 구글이 만든 SW가 안드로이드, 애플이 만든 SW가 iOS 같은 것이다. 메모리에 비해 비메모리가 부가가치가 높고 또 비메모리에 비해 SW가 부가가치가 높다. 삼성은 메모리 설계 및 제작에 주력하는 업체이다. 비메모리는 삼성이 제작은 하지만 주력 제품이 아니다. SW는 삼성이 아예 제작조차 하지 않는다. 즉 삼성은 부가가치가 가장 낮은 제품에 주력해 왔다. AI 반도체(AI 칩)는 기억칩이 아니라 계산칩에 속한다. 즉 삼성은 비메모리를 주력해 오지 않았기에 역시 AI 칩에도 주력해 오지 않았다. 그래서 AI에 관심이 많은 이 시기에 삼성은 AI 칩을 생산 조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반면 엔비디아는 AI칩 설계에 가장 앞서 있는 업체다. 엔비디아가 설계한 AI칩을 생산해주는 업체가 대만의 TSMC다. TSMC는 칩을 설계하지는 않으며 남(고객사)이 설계도를 넘겨주면 그 설계도에 충실하게 칩을 불량률 최소화하여 제작 생산해준다.

반도체 HW(메모리 및 비메모리)는 제철소와 같은 거대한 생산 공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첨단산업이기는 하나 굴뚝산업이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SW는 공장 시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첨단 두뇌산업으로 분류한다. SW는 HW보다 부가가치가 1.5배 이상 높다. 크든 작든 어느 IT제품도 그 구성에 있어서 HW 대 SW는 80대 20이다. 이는 작은 IT 제품인 스마트폰에서부터 큰 IT 제품인 슈퍼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동일하다. 산업매출 순익 시장규모로 보면 SW산업 대 HW산업은 60 대 40이다. 그만큼 SW가 HW에 비해 비중이 높다. 메모리반도체는 SW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비메모리반도체 (AI 반도체 포함)는 SW 없이는 설계/제작/생산이 불가능하다. 삼성은 잘 알고 있듯이 종합 기업이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병풍 식으로 혹은 문어발 식으로 다방면에 사업을 펼쳐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존 '굴뚝산업' 중심의 삼성은 어떤 기준으로 리소스를 분배해야 할까. 삼성은 한 우물을 파는 기업이 아니다. 그런 삼성이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선언을 한 것이 있다. 메모리 강자인 삼성이 2030년이 되면 비메모리 분야에서 TSMC를 추월하겠다는 전략 계획이다. 그게 ‘삼성 2030비전’의 골자다. 그런 비전을 실현하려면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비메모리 분야에서 SW 없이는 강자가 될 수 없으므로 삼성이 SW를 자체 개발하든 아니면 인수합병하든 어떻게 해서든 SW 쪽 실천 로드맵을 작성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 후 삼성의 투자나 행보는 그에 부합되지 않았고 엉뚱하게도 다른 분야인 바이오 쪽에 거대한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져 왔다. 삼성의 리소스 배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SW를 하겠다고 한다면 다른 SW 기업들을 보고 배울 점이 있다. SW 기업의 대표 주자는 마이크로소프트다. 그 다음에 애플 구글이 바짝 뒤쫓고 있다. 재계 시가총액 규모에서 전 세계 1, 2, 3위 기업이다. 정유산업 분야의 세계 최대 기업인 사우디아람코는 재계 7위로서 이들 3개 기업을 넘어설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들은 SW 한 우물 파기로 늘 그런 위상을 지켜왔다. SW 이외에는 다른 어떤 사업도 벌이지 않는 기업들이다. SW는 다른 제품과 달리 주기적 업그레이드가 필수다. 보통 18개월 주기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는데 이런 주기를 맞추지 않고는 SW 기업은 존속하지 못한다. 그게 그들의 생리다. 따라서 다른 걸 할 여력도 없고 또한 곁눈질해서도 안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삼성은 팔방미인 격으로 다양한 업종에 걸쳐 사업을 전개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SW를 할 체질이 아니다. 20년 전 일화가 있다. 안드로이드란 SW 기업이 자신의 제품을 들고 와서 삼성에게 인수 의향을 물은 일이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삼성은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그 안드로이드를 그 인수거절 사건이 있은 지 단 2주 만에 인수한 곳은 다름아닌 구글이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업그레이드시켜 우리가 잘 아는 알파고(AI 바둑)라는 검색엔진 개발에 성공한다. 검색엔진은 100% SW다. 그 여파를 몰아 그 안드로이드 바탕으로 알파폴드라는 단백질 구조 분석/예측 검색엔진을 개발하여 2024년 노벨화학상을 휩쓸기에 이르렀다. 이게 바로 SW의 위력이다. SW란 이런 것이다. 부가가치가 1차 창출되고 또다시 2차 창출되는 구조를 갖는 것이 SW인 것이다. 물론 3차 창출도 가능하다. HW는 유형의 존재다. SW라는 무형의 존재가 이런 기적을 연출하는 마술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반도체가 과거 메모리 중심에서 비메모리, 특히 AI 반도체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가면서 삼성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메모리 강자의 면모를 지키기 위해서도 SW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만일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삼성이 SW를 안 한다면 삼성은 IT 기업으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저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이것이 현재 삼성 앞에 던져진 과제다.

그렇다면 삼성을 비롯해 한국 기업에서 SW 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SW는 양파 구조처럼 되어 있다. 반도체는 그렇지 않다. 반도체는 접시 쌓기 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반도체 구조를 스택(stack; 그릇 쌓기)이라고 부르는 반면 SW 구조는 양파 껍질(onion ring)처럼 완벽하게 내포되는 구조를 갖는다. 우리나라가 SW를 하기는 하지만 바깥 껍질 쪽 SW에만 치중하는 게 문제이자 한계다. 맨 안쪽 SW를 SW 엔진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바로 윈도 운영체계와 안드로이드 운영체계 같은 것이다. 그 위에서 돌아가는 SW는 데이터베이스 엔진 SW가 있으며, 이 둘 위에서 돌아가는 SW는 모두 응용 SW라고 총칭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운영체계와 데이터베이스엔진은 미국 제품을 다 들여다 쓰고 있으며 그 둘 위에서 돌아가는 응용 SW를 만드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기초가 약하듯이 IT에서도 기초가 약한 이유는 안쪽에 약하고 바깥 쪽에만 신경을 쓰는 까닭이다. 안쪽 SW를 첨단 SW라고 부르며 그것이 두뇌산업의 총아로 불리고 있다. 부가가치 면에서 첨단SW는 응용SW의 몇 천배가 될 정도로 크다. 첨단SW는 자동차의 엔진이라고 보면 되고 응용SW는 자동차의 바퀴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두뇌산업을 해본 적이 없다. 한국이 세계 속에 제조업 강국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공장형 굴뚝산업 일변도로 치우쳐 왔다 이는 마치 신체의 균형에 비유하면 좌우 대칭이 안된 채 한쪽만 발달해 온 꼴이다. 이런 기형적 절름발이 상태를 고쳐야 하는데 기업이나 정부는 두뇌산업을 해본 경험이 없어 이런 국가적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여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21세기는 4차산업혁명 시대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은 HW가 아니라 SW다. 즉 SW의 시대인 것이다. 이 물결에 합류하지 못한다면 HW 일변도 굴뚝산업만으로는 우리의 미래는 어둡고 불안하다. SW가 두뇌산업인 만큼 중요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을 잘 써야 한다. 기업이든 정부든 HW 전문가만 등용해서는 SW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내각 구성을 보면 SW의 비중과 중요성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미국 행정부처에는 15개 부가 있다. 그런데 트럼프 2기에서는 국가효율부라는 부처를 신설하고 장관에 테슬라의 머스크를 앉혔다. 또한 15개 부처 중 무려 절반 이상에 SW 전문가를 임명했다. 혁신도 사람의 몫이다. 이렇듯 다른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텔 경영실적이 하락하자 인텔 지분을 정부가 직접 인수하며 경영개입에 나섰다. 우리는 어떤가. 무려 지난 30년간 HW 전문가만 줄기차게 등용하여 과학기술정통부 수장에 앉혀 왔다. SW 관련 전문가가 등용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몇 차례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현 정부가 AI 전문가를 등용했으나 결코 AI가 다가 아니다. SW 분야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SW 전문가를 써야 한다. 고질적 인선 병폐가 바뀌지 않고는 이 땅에서 미국 같은 SW 입국은 요원하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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