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48) 아첨의 끝판왕 - 연옹지치(吮癰舐痔)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갑질 논란에도 꿋꿋하게 버티던 강선우 여가부장관 후보자가 결국 낙마했다. 국회의원 현역불패 신화가 깨진 첫 사례라는 불명예까지 안게 되어서였을까, 갑질에 시달리던 보좌진에 대한 사과는 끝내 하지 않는 뒤끝을 보였다. 강선우 낙마의 여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강력한 낙마 후보가 또 등장했다. 최동석 인사혁신처장 이야기다. 최동석 처장이 야인 시절 쏟아낸 발언들이 일으키는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연일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는 최 처장의 어록은 전방위적이다. 그의 안테나에 잡히면 누구도 예외없이 막말 세례를 비껴가지 못한다. 최 처장의 저격은 피아 구분도 없고 진영과 세대, 직군을 가리지도 않는다. 특히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독설은 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도가 세다.  여권의 속앓이가 클 것이다. 

도처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와중에 예외적 존재가 있으니 바로 이재명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에 대한 최 처장의 평가는 평가라기보다는 '묻지마 극찬'에 가까워 다른 사람들에게 퍼붓는 독설과 극한 대비를 이룬다. 양산에서 한가로이 독서 문화 창달에 매진하고 있다가 속절없이 '의문의 1패'를 당한 문 전 대통령과의 비교를 통해 최 처장의 용비어천가를 감상해 보자.

"문재인이 오늘날 우리 국민이 겪는 모든 고통의 원천이다." "문재인은 완전 멍청한 인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족의 커다란 축복이고 하늘이 낸 사람이다."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들에게 이재명과 관련한 '메타노이아(회개)'가 일어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인격모독에 가깝다면 이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종교적 찬양이요 북한식 최고존엄급 헌사다. 

최동석 처장의 독한 혀가 이 대통령 앞에서만 솜사탕처럼 부드러워지니 기묘한 일이다. 최 처장은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보은 인사로 비판받자 코드 인사가 당연한 거라며 두둔했다. 이 대통령 본인도 사과한 '형수 욕설'을 변호하면서 하이데거의 '존재론'까지 동원한 게 압권이다. 김혜경 여사가 법카 유용 의혹을 사과한 것을 두고는 '공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경종을 울려주는 사과'라며 대한민국 문명을 한 차원 높였다고 예찬했다.  증거인멸을 증거보존이라고 둘러댄 유시민도 울고 갈 요설의 향연이다. 최동석 처장은 지식인의 '곡학아세'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확실히 보여준다. 


최동석 처장은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그런 인사가 80만 공무원 인사의 기준을 정하고 윤리ㆍ복무를 관장하는 인사혁신처장에 깜짝 발탁되자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비로소 궁금증이 풀렸다. 권력자를 향한 아첨에는 인간 본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하지만 최 처장처럼 실소를 자아낼 만큼 대놓고 노골적인 경우는 흔치 않다.

전국시대 송(宋)나라 사람 조상(曹商)이 왕명을 받아 강대국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떠날 때에는 송나라 왕에게서 몇 대의 수레를 얻었을 뿐이었는데, 진나라 왕의 환심을 사 수레 100대를 하사받았다. 귀국 후 장자(莊子)를 만나 자랑스레 말했다. "(선생처럼) 저 옹색한 동네 누추한 골목에 살면서 곤궁하게 짚신을 삼고, 목은 마르고 누렇게 뜬 얼굴로 지내는 것은 제가 잘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천하를 다스리는 만승(萬乘)의 군주를 한 번에 사로잡고 백 대의 수레를 거느리고 귀국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가 잘하는 일입니다.”

조상의 도발에 장자가 이렇게 응수했다. “진나라 왕이 병이 나자 의원들을 불렀다지요. 종기를 째고 고름을 짜낸 자는 수레 한 대를 받았고, 치질을 핥은 자는 수레 다섯 대를 받았답니다. 치료 부위가 밑으로 내려갈수록 수레를 더 많이 받는 법이오. 그대는 혹시 왕의 치질을 치료한 것이오? 수레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이 받은 것이오? 어서 물러가시오! (秦王有病, 召醫, 破癰潰痤者得車一乘, 舐痔者得車五乘. 所治愈下, 得車愈多. 子豈治其痔邪? 奚多車為?子趣去矣!)"

​<장자> '열어구(列御寇)편'에 나오는 일화다. 입신을 탐한 당대의 지식인들과 달리 뭇 제후들의 러브콜을 단박에 거절하고 자신의 길을 초연히 걸어간 장자답게 권력자에 아부하여 많은 재물을 얻고 마치 능력인 양 으스대는 조상을 통렬하게 비꼰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 연옹지치(吮癰舐痔)는 ‘고름을 입으로 빨고 항문을 혀로 핥다’라는 뜻으로, 더럽고 역겨운 일을 하면서까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첨하는 것을 비유한다. 중국인들도 입에 담기 거북해 할 만큼 표현의 강도가 센 성어다. 

낙마한 강선우와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최동석의 공통점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한 맹목적 배타적 충성심이다. 이런 류의 충성심은 권력자의 눈과 귀를 가리는 아첨과 아부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권력자를 비호하면서 현학적인 수사를 동원할수록 거짓말이거나 아첨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고금의 진리다. 

어찌 보면 이 대통령이 최동석에게 자리 하나 주는 게 딱히 별난 일도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할 수 있는 공무원 자리가 7천~8천 개에 이른다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대통령의 인사는 보은 인사라는 뒷말이 무성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에게 준 자리가 왜 하필 인사혁신처장일까? 

우리는 최동석 처장이 문재인 정부가 내걸었던 '고위공직자 인사 배제 7대 기준'에 대해서 '멍청한 기준'이라고 매도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기준은 문재인 정부가 말만 앞세우고 실천을 못해서 문제였을 뿐 고위공직자를 검증하는 원칙으로 흠잡을 데 없는 모범답안이다. 최 처장은 오광수 민정수석이 낙마하자 도덕성은 검증하면 안된다고 주장한 바도 있다. 독특함을 넘어 비상식적이다. 이런 인물을 인사혁신처장에 앉힌 이재명 정부의 인사 기준은 무엇인가? 

장자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해야겠다. <장자> '천지(天地)편'에 있는 말이다. "효자는 부모에게 아부하지 않고 충신은 임금에게 아첨하지 않으니, 이것이 신하와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와 충성이다. 부모가 말한 것이면 무조건 옳다 하고 행한 일이면 무조건 훌륭하다고 인정한다면, 세상은 그를 못난 자식이라고 말한다. 임금이 말한 것이면 무조건 옳다 하고 행한 일이면 무조건 훌륭하다고 인정한다면, 세상은 그를 못난 신하라고 말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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