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대출 규제 조치에 기본 이주비 대출도 포함되면서 서울 강남권 재건축 조합원들에게 직격탄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강남 지역 특성상 10억원을 웃도는 전세가 많은데 이주에 필요한 자금 확보에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8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28일부터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정부의 초고강도 대출 규제가 시행되면서 정비사업과 관련한 이주비와 중도금, 잔금 대출도 모두 규제 적용 대상이 됐다.
강남 재건축 조합으로서는 정비사업의 첫 단추인 이주비 대출이 제한되면서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어 전체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조합원 가운데 실거주 비율이 68%에 달하는데 강남권 대부분 단지가 이와 비슷하거나 더 높다"면서 “재건축 추진 시 현재 거주지를 비우고 임시로 전셋집을 구하려 해도 6억원으로는 강남권에 이주할 곳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조합원들은 시공사를 통한 추가 이주비 대출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강남 재건축 수주를 위해 일부 시공사들은 LTV(주택담보대출비율) 100% 이상의 이주비 조달을 약속하고 있지만, 조합원 1인당 최대 15억원까지 가능했던 기본 이주비 대출이 6억원까지 제한되면서 시공사가 가구당 9억원을 지원해줘야 한다. 2000가구 규모의 재건축 단지라고 하면 시공사가 조달해야 할 이주비만 1조8000억원이 되는 셈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번 대출 규제 발표 이후 재건축 시장에서 혼란이 급속도로 심화하고 있다"며 "이주가 원활하지 못하게 되면 공사 지연과 공사비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다주택자의 경우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않으면 이주비 대출이 전면 금지돼 타격이 더욱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입자 보증금 반환은 물론이고 자발적 이주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재건축·재개발 이주자 대출에서 예외적으로 규제를 적용하는 ‘핀셋 규제’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이주자 대출까지 6억원 대출 제한을 두면 결국 이사를 갈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사업이 지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급 억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주비 대출을 규제 대상에 넣을 명분이 없다. 재건축·재개발은 서울 공급 물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획일적 규제보다 핀셋 규제로 정책을 다듬어 부작용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강남권과 인근 지역은) 6억 이상 대출을 받아야 근처 전세로 갈 수 있는데 현 대출 규제로는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이번 부동산 정책이 대출을 크게 발생시켜서 집을 구매하겠다는 수요층을 타깃으로 한 만큼, 이주자 대출에 대한 예외 조치가 나오거나 보완책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도 획일적인 대출 규제가 정비사업지에 동일하게 적용되면 잔금과 이주비 등 자금 조달 계획 등에 차질이 발생하고 공급 지연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규제 발표 전 관계 부처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번 대출 규제가 정비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며 "주택 공급 우려는 없는지 모니터링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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