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둘다 비호감인데"…'정치 1번가' 서울 민심, 싸늘하게 식었다

  • 계엄·탄핵 등 진흙탕 싸움에

  • 청년층서 金·李 양비론 커져

  • 소상공인 "25만원이라도…"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벽보가 지난 19일 서울 용산역 앞 도보에 설치돼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벽보가 지난 21일 서울 용산역 앞 도보에 설치돼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6·3 대선이 초읽기에 접어든 가운데 인구 약 930만명을 보유한 서울 민심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지난해 4·10 총선에서 48석 중 37석을 획득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세가 높은 지역이긴 하나, 되풀이되는 양당의 진흙탕 싸움과 역대 최악의 경제난이 겹치자 시민들의 참정 의지는 이미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양비론(兩非論)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아주경제가 지난 21일 서울 용산·종로·중구·강서구에서 만난 시민들은 구태 정치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착잡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각 대선주자들이 연일 수도권 스킨십에 나서며 표심 설득에 공을 들이고 있음에도 시민들은 새 정치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한강벨트 중 하나인 용산구에서는 대체로 국민의힘에 대한 부정적 기류를 엿볼 수 있었다. 용산에서 나고 자랐다는 장모씨(29세·여)는 "원래도 삼각지로 넘어가는 고가도로 교통정체가 심했는데 대통령실이 들어오고 난 이후 더 심해져서 절대 가지 않는다"며 "내 동네가 정치 1번지가 아닌 기존처럼 평온한 동네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용산에서 13년째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심모씨(72)는 "지역구 의원인 권영세가 계엄 날 국회에 있었어도 계엄 해제안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발언 이후 용산 여론이 안 좋다"며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는 다음 총선에서 낙선 운동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지난 대선과 총선 모두 국민의힘 후보에게 표를 준 이촌 2동에서도 민주당으로의 민심 변화 기류가 감지됐다. 한강 라인에 있는 A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모씨(80대·여)는 "이 후보와 김 후보 모두 경기도지사를 지냈기 때문에 능력에 대한 의심은 하지 않는다"며 "상속세 완화를 확실하게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모씨는 "상속세 일괄공제액이 5억원인데 언제 적 기준인지 모르겠다"며 "1997년부터 열심히 피땀 흘려가며 산 아파트인데 죽고 나서 자식한테 주려고 해도 세금을 엄청 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오히려 진짜 부자들은 집값이 8억~10억일 때 다 팔고 떠났다. 부동산에 관심 없이 한평생을 착실히 살아왔는데 세금을 어마무시하게 내야 한다"며 "상속세 완화를 공약으로 낸 후보가 있다면 뽑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가 문재인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엿보였다. 이른 아침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안모씨(47세)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은 비전문가가 시행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며 "이재명은 그래도 성남시장 때 이력도 있으니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 이후 영등포구에 거주하고 있는 한모씨(20대·여)도 "이재명은 문재인보다는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을 존중하는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 관세 사래를 보면 시장에 정부가 억지로 개입하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차기 정부는 시장 시그널을 잘 보면서 장기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정책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구동현 기자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구동현 기자]
20~40대 남성층에서는 국민의힘 선호도가 다소 강했으나, 이것 역시 "최악보단 차악"이라며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종로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배모씨(27)는 "어떻게 생각해도 이재명에게는 손이 가지 않는다"면서도 "솔직히 윤석열을 왜 비호하는지 모르겠다. 극우가 활개치는 것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꼈다"고 했다. 청계천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도 "국힘을 지지하는 것보다는 민주당을 견제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 다양한 논란이나 주변 의문사 같은 걸 보면 자질이 의심된다"고 했다.

극심한 양당 대립에 피로감을 느끼며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를 대안으로 고려하는 시민들도 포착됐다. 광화문에서 만난 직장인 한모씨(42)는 "특별히 이준석이 좋은 건 아니다"면서도 "원래 보수 성향이지만 이번에 국힘은 아닌 거 같다. 너무 올드한 느낌도 있고 계엄을 사과도 안 하고 있잖나"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종로구 동대문역 인근에 거주하는 30대 김모씨도 "이준석이 말하는 정책들이 청년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그나마 울림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연금만 해도 청년 입장을 대변해주는 정치인을 찾기가 힘들지 않나"라고 했다.

서울 중구와 강서구에서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씁쓸한 아우성이 유독 크게 맴돌았다. "최악도 이런 최악은 없다", "생계가 아니라 생존이라도 보장해달라"는 자조 섞인 푸념까지 나왔다. 계엄과 탄핵 공방 등 정치공학으로 뒤덮인 현 상황이 지역 경제인들에게는 치명타로 다가온 셈이다.

중구 세운상가에서 전구 가게를 20년째 운영 중인 이모씨(63)는 "IMF 때도, 코로나19 때도, 어느 정권에서도 장사하면서 이렇게까지 힘들어본 적은 처음"이라며 "예전엔 아무리 힘들어도 경기 순환은 됐는데 지금은 그것 자체가 안 된다. 워낙 경기가 어렵고 장사가 안 돼 임대료를 못 내니까 점점 포기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널렸다"고 말했다.

세운상가에서 2000년대 초부터 문구 업체를 운영해 온 이모씨(50대·여)도 마찬가지로 "IMF 이후에 이걸 인수하게 됐는데 지금이 제일 힘들다"며 "우리 아이들은 다 컸지만 요즘엔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도록 제가 열심히 기도를 한다"고 했다. 강서구 남부골목시장에서 35년 동안 생계를 이어온 김모씨(60대)는 '다음 정권에 특별히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장사 좀 잘 되게 해 달라는 것, 그거밖에 없다"고 했다.

영세 업자들은 이재명 후보의 대표 공약인 민생회복지원금이 '포퓰리즘'이 아닌 '즉약처방'이 될 수 있다며 반겼다. 이모씨(63)는 "돈을 일단 25만원씩 풀어준다면 완전히 죽어가는 사람이 그걸로 인해 살 수도 있다"고 했고, 이모씨(58·여)는 "그게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잠시만이라도 자영업자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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