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뒤 열린 2000년 16대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1997년 대선에서 패배해 야당으로 위치가 바뀌었고 '총풍', '세풍' 사건 등으로 당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맞이한 선거였다. 당연히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이때 꺼내든 카드도 '인물 교체'였다.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김윤환·신상우·오세응·김정수·이기택 등 중진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그리고 오세훈·원희룡·임태희·김영춘 등 3040 세대 영입 인사들을 수도권에 집중 공천했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은 133석으로 제 1당 자리를 유지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저력을 제대로 보여준 선거의 정점이었다. 집권 여당이었지만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 갑작스러운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10·26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을 야당에 내줬다. 여기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 돈 봉투 사건 등으로 한나라당의 패배가 확실한 상황이었다. 그 해 12월에는 대통령 선거까지 예정돼 있어 총선 패배는 곧바로 대선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때 나선 사람이 바로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표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당을 상징하는 색깔도 빨간색으로 갈아치웠다. 이명박 정부와 선을 긋는 동시에 김종인·이준석·이상돈 등 새 인물을 끌어들였고, '경제 민주화'를 선점하며 대대적인 체질 변경에 나섰다. 야당 역시 범야권 연대를 통해 세력을 끌어 모았지만, 새누리당은 300석 가운데 152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8개월 후 치른 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 전 대표가 당선됐고, 정권 재창출까지 성공했다. '선거는 보수가 잘한다'는 말이 절로 나오던 시기였다.
6·3 대선 역시 위기다. 사실 당 역사상 최대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여론조사상 지지율 차이가 큰 데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김 후보의 단일화 과정에서 보인 반헌법적 '추태'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시작한 선거다.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읍소하기도 민망한 사태까지 와버린 것이다.
뼈 아픈 점은 그동안 선거 앞 위기에서 보였던 당 쇄신 능력조차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당을 쇄신하며 민심을 따를 시간은 충분했지만, 당이 보유했던 '위기 극복 능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당 주류는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 불참을 시작으로 윤 전 대통령 탄핵 소추에 반대했고, 파면에도 반대했다.
안타깝지만 국민의힘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묘안은 없다. 남은 길은 선거에서 잘 지고, 이후 잃어버렸던 당 쇄신 'DNA'를 복원하는 것이다. 벌써 대선 후 당권까지 언급되는 눈치 없는 모습이라면 국민들은 이제 국민의힘을 매몰차게 버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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