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자 칼럼] 여성 대법관을 더 늘려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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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자 한국 여성변호사회 회장
입력 2023-12-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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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자 한국 여성변호사회 회장
[김학자 한국 여성변호사회 회장]


재벌총수도 어김 없이 고개를 숙이고, 거대 야당의 대표도 매주 출석하게 만드는 곳, 때론 수십년간 피해를 당하다고도 이제사 피해를 인정받는 수많은 피해자들이 결국 눈물과 환호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만든 곳, 그 곳이 바로 사법부이고 그 정점에 있는 곳이 바로 대법원이다. 우리 국민 개개인의 삶 그리고 우리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내년 1월 1일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이 퇴임한다. 앞선 지난 7월 박정화 대법관 퇴임하였기 때문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관여하는 13인 대법관 중 여성대법관의 수는 기존 4인(약 30%)에서 3인(약 21%) 그리고 내년 1월 1일 깃점으로 2인(약 15%)으로 줄어들게 된다.
 
얼마전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여성대법관이 나오길 희망한다"는 성명서를 내었다. 그리고 난 모 일간지 인터뷰 등을 통해 적어도 여성대법관이 30% 이상 되어야 성별 다양성에 대한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옳은 판단이었을까?
 
지난 8월 기준 전국 법관 수는 3,117명이고 이중 여성 법관은 1,097명으로 전체 법관의 35%를 차지하고 있고 이제 여성법관 없이 재판을 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2004년 8월 김영란 대법관이 최초 여성대법관으로 탄생된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이제까지 여성대법관은 8명 뿐이었다. 고위직인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법관 중 여성법관은 4명 밖에 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여성 고위법관이 적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면, 수십년간 여성법조인의 수가 많이 있지 않았던 탓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오늘 민유숙 대법관의 퇴임사 속에서, "…6년전 여성법관으로서의 정체성으로 대법관의 새로운 소명을 받아…제가 그 동안 대법원에서 수행한 역할로써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이 실제적으로 확인되었기를 바랍니다. 또한 저희 후임 대법관을 포함하여 앞으로 성별과 나이, 경력에서 다양한 삶의 환경과 궤적을 가진 대법관들이 상고심을 구성함으로써 대법원이 시대의 흐림을 판결에 반영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류로 더욱 확고하게 자리를 잡길 바랍니다.…" 라는 문구를 통해서 민 대법관은 여성법관의 정체성으로 대법관이 되었고, 지난 6년간 우리 사회에 형성된 성적, 계층적, 차별적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여성대법관으로 얼마나 고되게 싸워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민유숙 대법관의 퇴임사를 읽으면서 2020년 87세 나이로 작고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여성대법관이 떠올랐다. 린즈버그 대법관은 "사람들은 가끔 내게 언제 법정에 충분한 여성이 나올 지를 묻는다. 나는 9명이 있을 떄라고 답한다. 이에 사람들은 놀란다. 하지만 9명의 남성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훨씬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 할 2023년을 살고 있으면서 부끄럽게도 여성대법관 수에 대해 최저 30%는 사수해야 한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스스로 성적 고정관념을 드러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남성 대법관 수를 최대 70%까지 인정하겠다는 뜻과도 같기 때문이다.
 
여성법조인인 내 주변엔 정말 뛰어난 여성법조인이 많다. 법관 중에서 있고, 변호사 세계에서도 있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여성들이 대법관으로 진입할 때에는 보이지 않는 여성 할당제 와 같은 한계가 느껴진다.
 
한번더 민유숙 대법관의 퇴임사를 보면, "…입법 공백이 발생하였음에도 명문의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법적 접근을 부정하거나 형식적으로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모든 영역에서 해석원칙을 선언하였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린즈버그 대법관이 여성의 평등권을 부인하던 시절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을 놓고 여성도 진정한 의미에서 평등권의 주체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해석하는 주장을 내놓은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즉,법문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법의 한계를 넘지 않은 채 여성을 비롯한 약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5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두 여성 대법관들이 같은 뜻을 이어간 것이다.
 
민유숙 대법관이나 린즈버그 대법관이 왜 이런 해석과 행보를 하였을까? 남성 법관은 할 수 없었을까? 여성 법관들은 여성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그리고 학교를 다니면서 차별과 불합리성을 느끼고 직장에 들어간 다음 가정을 꾸리면서는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가진 한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런 경험과 다름의 자각이 우리 사회의 불합리와 불평등, 부조리에 대해 반응할 수 있고 여성 대법관에게는 성문법의 적용과 해석에서 합리와 평등, 정의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전문성을 넘어신 대법관의 다양성이 여성, 아동 그리고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법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퇴임하는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의 모습을 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여성 대법관이 더욱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남성 대법관과 여성대법관 양분하여 할당하는 모양새가 아닌 다양성을 진정으로 반영할 수 있는 약자로의 경험과 남다른 지식을 가진 법조인들이 많이 대법관으로 임명되길 기대해본다.
 


 김학자 필자 주요 이력 

△한국여성변호사 회장 △대한변협 부협회장 △전 대한변협 인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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