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제2 로톡' 사태 반복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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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중앙대 겸임교수
입력 2023-10-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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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DB
어린 시절 고급 코트는 부드러운 질감 외에도 소매에 ‘HAND MADE’라는 표식(標識:표지)이 붙어 있었다. 기계가 아닌 전문가의 손길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지난 수세기 동안 전문가의 업무는 대부분 수작업이었다. 기성복이기보다 반맞춤형이었던 것이다. 수요자 입장에서 전문서비스는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가 수작업으로 만든 일회용 제품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기계도 전문가만큼 할 수 있는 영역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가 급격히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법무부의 변호사 징계 취소로 사태가 일단락되고 법률 홍보 플랫폼이 정당성을 확보했듯 그 변화는 분명 시작됐다.

다른 전문서비스 분야에서 '제2의 로톡'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책임소재를 따져 묻기보다 변화의 배경에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전문서비스 분야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뀐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전문가 우회 현상'이다. 과거에는 전문적 도움이 필요하면 전문가에게 의지했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지식을 알았기에 문지기 역할을 하며 문제해결을 도왔다. 라이선스 기반으로 공급을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전문지식을 다양한 방면에서 얻을 수 있다. 플랫폼 기반의 인공지능(AI) 서비스가 그중 하나다. 법조인 주요 업무였던 판례검색은 AI를 활용하면 몇 초면 충분하다.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연결되면서 정보를 얻는 경우도 생겨났다. 페이션츠라이크미(Patientslikeme)가 대표적이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처방 그리고 그 효과에 대한 수기를 공유한다. 이는 전문가가 아닌 주체를 통해서도 전문지식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의사나 변호사, 회계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개발자, 시스템 공학자라는 사실이다. 문지기 역할의 주인공이 바뀔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디지털 시대에 전문서비스는 탈중개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반적으로 중개인은 경험이나 기술, 지식이 부족해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수요자에게 전문성을 제공하며 도움을 준다. 여행사는 여행객과 여행업체 사이에서, 보험중개인은 회사와 고객 사이에서 가장 적합한 조건의 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중개인들이 전통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과연 온라인 서비스보다 가치있는가에 대한 의문에 봉착했다. 가치가 없다면 중개인은 공급 가치 사슬상에 남아 있기 어렵다. 탈중개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문가라고 예외는 아니다. 세무사가 온라인 세무신고 소프트웨어 때문에, 변호사는 AI 문서 검색 시스템 때문에, 교수는 MOOC(온라인공개수업) 때문에, 건축가는 온라인 CAD 시스템 때문에, 언론인은 블로거 때문에 최소한 일정 부분 중개인 지위를 잃어왔다. 전문서비스는 라이선스가 없는 자에 의한 중개를 금지해왔다. 하지만 수요자가 보다 적은 대가로 더 나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면 라이선스를 가진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탈중개화 현상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의 전문서비스 진입이 시작된 이유다.

무엇보다 수요자의 기대가 달라지고 있다. 수요자는 전문서비스를 비싸게 느낀다. 산업 생태계는 갈수록 복잡해져 더 많은 세무·법률·컨설턴트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만, 높아진 난도 탓에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게다가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 수익은 낮아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한 방법은 '보다 저렴하게 더 많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으로 이를 가능케 할 방법은 없다.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혁신과 자동화는 다르다. 자동화는 전통적 모형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할 뿐이다. 50여 년 전 ATM기의 등장을 혁신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창구기능의 자동화가 아니라 업무 시간 외에, 지점이 없는 곳에서도 금융서비스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은행과의 소통 방식이 바뀐 것이다. 전문서비스업도 이러한 관점에서 디지털 플랫폼을 바라봐야 한다.

'제2의 로톡'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변화를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 공급자 중심의 소통 방식을 고수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발전했다. 과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수요자가 전문가에게 의존했듯, 이제는 스스로 변화하기 어려운 전문 자격사가 수요자에 의지해 문제를 해결할 차례다. 수요자 중심의 변화는 결국 경쟁 활성화로 이어진다. 경쟁은 남이 하면 아름답고, 내가 하면 힘든 일이지만, 디지털 플랫폼으로 인한 생산방식의 재분배 과정에서 완전히 피할 도리는 없다. 어쩔 수 없다. 경쟁력은 경쟁에서 나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되뇌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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