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개설 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에 이용할 목적으로 예금거래신청서를 허위로 작성했더라도 은행 업무 담당자가 추가적인 확인 조치 없이 계좌를 개설해줬다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허위계좌 개설의 원인이 금융기관 업무 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있다는 취지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업무방해·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인천지법에 돌려보냈다.
2020년 8월 유령회사를 설립한 A씨는 은행에서 법인 명의 계좌를 허위로 개설해 담당 직원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도 계좌에 연결된 현금카드, OTP 기기 등을 빌려주거나 타인의 부탁을 받고 카드를 보관해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2월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업무방해 등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는 전자금융거래에 쓰이는 체크카드 등 접근매체를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대여·보관·전달했을 때 성립한다"며 "하지만 A씨가 대여한 접근매체가 어떤 범죄에 이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검사가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못했고 A씨가 보관한 카드는 경찰의 수사협조자가 검거 목적으로 준비한 것이어서 범행에 쓰일 가능성도 없었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 중 업무방해를 무죄로 본 부분은 타당하지만,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본 것은 잘못됐다며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A씨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금융기관 업무 담당자가 답변 내용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 요구 등 추가 확인 조치 없이 계좌를 개설해준 것은 금융기관 업무 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 때문"이라며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는지는 행위 당시 피고인이 가지고 있던 주관적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되고 실제 피고인이 인식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며 "범죄의 유형이나 종류가 개괄적으로라도 특정돼야 하지만 실행하려는 범죄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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