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음 커지는 '역전세 대란']일자리 수요도, 신축도 예외 없다…전국 곳곳서 커지는 역전세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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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23-06-0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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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아주경제]

# 오는 8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임차인 김모씨(40)는 전세보증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세보증금 5억원 가운데 1억원을 먼저 돌려받아 새 집을 구하기로 임대인과 구두로 합의를 했는데 최근 임대인이 "추가 대출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새 세입자를 들이기 전에는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 임대인은 김씨가 거주하는 아파트 외에도 빌라 2~3채를 추가로 보유하고 있지만 고령이고 직장도 없어 금융권 추가 대출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마음에 드는 이사갈 집을 발견해 가계약을 해야 하는데 신용대출을 추가로 받아서 해야 할지 포기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계약을 한다고 해도 집주인이 보증금 전액을 날짜에 맞춰 돌려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이사 생각만 하면 밤잠을 설칠 정도"라고 말했다. 
 
역전세 대란이 부동산 시장에서 전통적 강자로 군림해온 서울 강남 3구 등 상급지·신축·역세권 아파트 등을 가리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전세보증금을 둘러싼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도 늘어나고 있다. 김씨 사례처럼 임대인이 수십억 원대 자산가라 하더라도 연금생활자나 보유 주택에 대출이 잡혀 있으면 임차인들에게 되돌려줄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높은 전셋값을 레버리지로 활용해 갭투자를 했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2년 전 전셋값 급등으로 무리하게 대출을 받거나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실수요자들은 이제 역전세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문제로 시름하고 있다.  
 
7일 부동산 정보업체 호갱노노에 따르면 최근 3개월 사이에 서울에서 발생한 역전세 건수는 4851건이었다. 역전세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송파구로 500건에 달했고 이어 강남구 462건, 강동구 444건, 서초구 348건 등으로 강남 4구(1754건) 역전세 건수가 전체 중 36%를 차지했다.
 
역전세 건수는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동작구(340건), 강서구(315건), 노원구(197건), 영등포구(175건). 성동구(171건). 은평구(169건), 구로구(167건), 동대문구(166건), 양천구(165건), 마포구(146건), 서대문구(131건), 용산구(126건), 도봉구(114건), 광진구(111건) 등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최근 3개월 사이에 역전세 발생 건수가 100건을 웃돌았다. 100건 미만 지역은 중랑구(88건), 강북구(82건), 중구(55건), 금천구(42건), 종로구(34건) 등 5곳에 불과했다.

서울 전역에서는 전셋값이 고점을 찍었던 2021년 하반기보다 보증금이 수억 원씩 하락한 계약이 속출하고 있다. 기존에 계약한 전세보증금을 고스란히 손에 들고 있지 않는 이상 일반 가정에서 일시에 반환하기 힘든 수준이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84㎡ 전세계약은 이달 9억1500만원에 체결됐는데 이는 2021년 10월 체결된 16억원보다 보증금이 6억8500만원 떨어졌다. 이 단지 2021년 하반기 전세시세(14억~16억원)와 현 시세(8억~12억원)를 고려하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현금을 최대 8억원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인근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전용 84㎡도 상황은 비슷하다. 전세계약이 2021년 7월 12억8000만원에서 지난달 8억9000만원에 체결돼 2년 전과 비교해 3억9000만원 하락했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 84㎡ 역시 지난달 전세계약이 6억5000만원에 체결돼 2021년 12월 고점 가격인 9억원보다 27.8%(2억5000만원) 하락했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 전셋값은 2021년 9월 9억~11억3000만원에서 지난달 7억~9억5000만원으로 2년 전보다 최대 2억원 하락했다.
 
삼성전자 본사, 판교 IT밸리 등 일자리 수요가 있어 사람들이 몰렸던 수도권 신도시도 역전세난을 피해가지 못하는 분위기다. 호갱노노 역전세 집계 결과에 따르면 판교 IT밸리 배후 주거지로 평가받는 성남시 분당구에서 최근 3개월간 역전세가 332건 발생했고 과천시는 71건, 용인시 수지구는 277건 등이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과 대형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수원시 영통구와 권선구도 역전세가 각각 250건, 178건, 동탄신도시가 있는 화성시도 1214건 등으로 집계됐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부동산 경기 침체, 고금리로 인한 금융 비용 증가에 더해 전세사기 사건으로 전세 기피 현상까지 맞물리면서 전세시장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면서 "지방은 물론이고 서울 강남 3구에서도 역전세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입주 물량이 늘어나는 것도 역전세 문제를 가중시키는 요소다. 직방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예정된 전국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6만5887가구로 올 상반기(14만3351가구)보다 16%, 지난해 하반기(14만4886가구)보다 14% 각각 늘어날 예정이다. 6월에만 전월보다 45% 늘어난 3만1417가구가 입주해 전세 매물 소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전셋값 약세도 이어지고 있다. KB부동산 월간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억8742만원으로 지난해 5월(3억4144만원)과 비교해 15.8%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서울 평균 전세가격은 6억7709만원에서 5억7094만원으로 15.7% 하락했다. 인천은 2억1595만원에서 1억9479만원, 경기는 3억9159만원에서 3억1956만원으로 각각 9.8%, 18.4%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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