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한전 대책] 직원들 "15년 무임금 노동할까요"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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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락·조아라 기자
입력 2023-05-0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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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금으로 32조원 적자 메꿔 '어불성설'…대책 없는 사장 교체 '블랙아웃' 우려

한국전력 서울본부

한국전력 서울본부[사진=연합뉴스]

여당인 국민의힘이 한국전력공사에 대규모 인원 감축과 임금 절감 등을 포함한 자구책 마련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가스공사와 함께 20조원 규모의 자구책을 수립 중인 한전은 갑작스러운 인원 감축 등 요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발생한 수십조원 규모의 적자는 글로벌 연료비 급등 요인을 적기에 요금에 반영하지 못한 탓이다. 이런 데도 정치권이 그 책임을 한전에만 전가하는 데 대해 임직원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3일 직장인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 등에 따르면 한 한전 직원은 "한전 인건비가 연간 2조원 규모인데 지난해 32조원이 넘는 적자를 해소하려면 15년 넘게 월급을 안 받고 일하면 되는 것인가"라며  자조 섞인 글을 올렸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자구책을 재차 촉구하며 "수십조원 적자가 누적되는 일반 민간 회사라면 대규모 인원 감축과 임금 절감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박 의장의 발언은 민간 기업을 전제로 했지만 사실상 한전 측에 대규모 인원 감축을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2분기 전기요금 발표가 한 달 넘게 지연되면서 국민의힘은 한전,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에 요금 인상의 선결 과제로 자구책 마련을 강요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정승일 한전 사장에 대한 사퇴 압박 역시 같은 결로 읽힌다. 

박 의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정 사장이)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 바란다"며 직접적으로 사퇴를 언급했다. 

하지만 지난해 32조원 규모의 적자가 발생한 데 이어 올해도 10조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뚜렷한 대안 없이 수장을 교체하는 게 한전의 경영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후임 사장 선임까지 적어도 수 개월이 걸리는 만큼 경영 공백이 더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의 경영난으로 주요 신규 사업이 지연되면서 민영화 논란도 재부상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와 첨단산업 등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를 명분으로 송배전 보강 사업의 민간 참여를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수십조원의 추가 투자가 불가피한 만큼 공공 전력망 투자에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으로, 일각에서는 한전 민영화를 위한 포석 중 하나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 필수 기반 서비스 공기업은 민영화 하지 않는다는 방침에 변화가 없다"며 일축했다. 다만 야당을 중심으로 '위장된 민영화'라며 공공 영역을 민간 자본에 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거듭된 정치권의 자구책 요구에 한전 임직원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고임금과 과도한 성과급 등을 지적하는 한전 때리기가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 게시판에 한전 직원이라고 밝힌 한 글쓴이는 "한전 직원 급여는 전체 지출의 3%도 되지 않아 직원 90%를 해고하더라도 2.7%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뿐"이라며 "현재 적자의 원인은 수입하는 발전 연료의 가격 상승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한전 직원은 "(전기요금 인상 지연으로) 매년 30조원 이상 적자가 나면 수년 내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며 "파산 직전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한전을) 자본에 헐값으로 매각해 민영화에 따른 요금 상승으로 한국 기업들 역시 파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전의 1kWh당 전기 구입 단가는 155.5원이었지만, 판매 단가는 120.51원이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요금에 반영되지 못하면서 1kWh당 35원 가까이 손해를 보고 판매한 셈이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중순 2분기 전기요금을 결정한다. 전기요금 인상폭은 kWh당 10원 안팎 수준이 예상되며 이 경우 4인 가족 기준으로 월별 전기요금이 3000원가량 오르게 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한전 적자의 근본적인 원인은 천연가스, 석탄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이 크게 오른 탓"이라며 "지금 정치권에서 한전 사장을 쫓아내다시피 하며 사표를 받는 건 올여름 (전력 수요 증가로) 정전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앞두고 적절한 조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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