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성공적 국제 통상협정? …내부 목소리부터 경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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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입력 2023-03-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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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지난주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한·일 정상회담으로 그동안 꽉 막혔던 한·일 양국의 관계가 새로운 협력의 전기를 맞았다.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통상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일본이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CPTPP 가입은 그동안 한·일 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과의 경제안보협력이 강화되면 CPTPP 가입 논의는 곧바로 다시 시작될 수 있다.
 
한편 지난주 내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제2차 협상이 계속되었다. 예상대로 노동, 환경, 디지털 무역과 기술지원 등에서 합의문 초안이 회람되었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있은 1차 협상에서 무역원활화와 농업, 서비스 국내 규제와 투명성, 모범규제관행 등에서 합의문안이 회람된 점을 감안하면, 이번 2차협상을 통해 무역 필라(pillar)의 핵심 의제 모두에서 합의문안이 회람된 상황이다.
 
CPTPP 가입과 IPEF 협상은 모두 정부의 신중한 접근과 치밀한 대외 협상전략이 요구되는 중요한 협상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내 이해관계자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구하는 대내 협상도 대외협상 못지않게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산업통상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CPTPP 가입을 주저해왔다. 그러다 정부 말기쯤 공급망 안정 등을 이유로 CPTPP 가입이 필요하다고 말을 바꾸면서 CPTPP 가입이 급물살을 탔다. 통상교섭본부장은 물론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기자회견을 하며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신청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어땠는가? 가입신청은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다. 왜 가입신청을 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남은 사람들의 설명도 없다. 이해관계자는 물론 국민이 보기에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지난 정부의 CPTPP 가입신청이 실패로 끝난 이유로 임기 말 정치적 추동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점을 든다. 그러나 정치적 추동력도 민심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결국 이해관계자의 설득에 실패한 것이 CPTPP 가입신청 실패의 핵심 이유로 볼 수 있다. 특히 CPTPP 가입을 반대하는 농수산업계의 설득이 중요한데 지난 정부는 이를 소홀히 했다. 통상협상을 책임진 산업통상부는 농어업인 설득을 농식품부나 해양수산부에 미루고, 소관 부처는 왜 갑자기 정부 입장이 바뀌었는지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나마 시간을 가지고 이해관계자를 만나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으면 나았을 것인데 갑자기 변경된 결정에 그마저도 할 겨를이 없었다.
 
따라서 향후 CPTPP 가입이 역내 안정적 공급망 구축과 수출시장의 확보에 도움이 되어 가입이 불가피하다면 정부는 사전에 이해관계자를 만나 지속적으로 가입의 불가피성과 그에 따른 보완대책을 설명하고, 그들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 즉 대내 협상을 해야 한다.
 
IPEF에 대한 정부의 대내 협상도 문제다. 제2차 협상이 끝난 IPEF는 4개의 필라(무역, 공급망, 청정경제, 공정경제) 대부분에서 합의문이 회람된 상태로 합의문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해당사자 대부분은 어떤 내용이 논의되고 있는지 모른다. 정부는 그동안 IPEF 민관전략회의를 수차례 개최해 경제단체, 업종별 협회, 분야별 연구기관 등과 IPEF 협상 동향을 공유하고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민관전략회의에 참석하는 단체나 협회는 대부분 IPEF를 지지하고 있어 반대 계층을 중심으로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대내 협상과는 거리가 있다.
 
농업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협상 내용이 비밀이라고 해도 미국은 협상의 큰 흐름과 핵심 내용은 대외 비공개를 전제로 관련 농업계와 협상 내용을 공유하고 그들의 의견을 구해 협상에 반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무역대표부의 농업기술정책위원회이다. 이 위원회는 품목 단체장들로 구성되어 수시로 협상 내용을 전달받고 또한 그들의 수출 관심을 무역대표부에 전달한다. 무역대표부가 위원회의 입장을 합의문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함은 물론이다. 우리도 대외 비밀유지 조건으로 농업계 관계자들에게 협상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의견과 입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협상 타결 이후 대내 반발에 따른 천문학적인 갈등비용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한편 농업 부문 합의 초안이 아무리 비공개라도 그 내용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기존에 미국이 주장해 온 요구와 미국의 무역장벽보고서, 특히 최근 미국이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 개정판(USMCA)과 미-중 1단계 합의의 농업분야 내용을 종합해 보면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시장개방이 없다면 결국 남은 것은 동식물 검역의 완화와 농업생명공학제품의 손쉬운 국내 인증, 그리고 이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분쟁해결뿐이다. 정치적 휘발성이 높은 유전자조작 농수식품이 손쉽게 국내에 들어온다면 해당 제품에 대한 시장개방 효과는 물론 그로 인한 건강이나 안전성 문제와 함께 생물다양성 문제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쉽게 지나칠 사안이 결코 아니다. 특히 협상 결과에 대한 국회 비준을 고려한다면 이해관계자에 대한 대내 협상은 필수다. 지금은 20년 전의 한·미 FTA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때가 아니다. 불편해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시간이 걸려도 이해관계자와 함께 어우러져 가야 하는 세상이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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