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날 풀리면 늘었던 건설현장 일감 '제자리'...새벽 인력시장 한파 여전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민영 수습기자
입력 2023-02-27 10:34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건설경기 바로미터 남구로역 새벽인력시장..."일이 없어요"

  • 계절적 요인 감안해도..."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어렵다"

27일 오전 5시 30분께 남구로역 3번 출구 맞은편 인도에 건설 현장 일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사진=김민영 기자]

“날씨를 감안해도 지난해보다 올해 특히 일이 적어요. 지난주엔 딱 하루 일했네요.”
 
27일 이른 새벽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새벽 인력시장을 찾았지만 결국 일을 구하지 못한 채 집으로 향하던 남모씨(55) 말이다. 남씨는 “보통 3월 중순은 돼야 날이 풀려 본격적으로 일이 많아진다”면서도 “일을 구하기가 지난해보다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날 일을 구하지 못한 것은 남씨뿐만이 아니었다. 공사 현장에서 청소를 하는 등 잡부로 일하는 40대 여성 A씨도 일을 구하지 못했다. 그도 “지난주에 5일 중 3일밖에 일을 못했다”며 난감해했다.
 
남구로역 새벽 인력시장은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 채용이 이뤄지는 현장이다. 몰려 있는 사람들 근처로 승합차를 타고 온 인력사무소(하청업체) 관계자가 내려 단가(노임)를 말하고 일할 의사를 묻는다. 이에 동의하는 건설 현장 ‘취준생’들은 차에 탑승해 현장으로 직행한다.
 
건설경기가 좋으면 그만큼 건설 현장에 필요한 인력이 많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지만 불황일 때는 일을 구하지 못해 남아 있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건설 일용직 노동시장 수요와 공급을 파악할 수 있어 새벽 인력시장은 건설경기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이날 건설 현장 노동 공급은 ‘포화’였다. 오전 5시께 남구로역 3번 출구 맞은편 인도로 안전화를 신고 방한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오전 5시 30분께 비슷한 차림을 한 구직자 300명가량이 인도를 가득 메웠다. 경찰관이 교통을 정리하는가 하면 형광 조끼를 입은 안전순찰원은 인파가 차도로 내려서지 못하도록 관리했다. 
 
다만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적은 수였다. 비교적 한산한 3번 출구 근처에서 만난 양모씨(35)는 “700~800명 정도 모였던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지금 인파는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설 현장이 많이 쪼그라들어 지금 모인 사람 중 절반이나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안전순찰원 박모씨(67)는 오전 6시를 현장 노동자 일과가 결정되는 분수령으로 꼽았다. 박씨는 “오전 7시에 현장에서 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오전 6시까지 일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포기하고 집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통 월요일에 사람이 제일 많긴 하지만 지난주 금요일에는 오전 5시 30분쯤 다 나갔다. 오늘은 정말 많이 남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양씨와 박씨 말대로 이날 새벽 인력시장 마감 결과를 통해 극심한 건설경기 ‘한파’를 체감할 수 있었다. 공급은 충분했지만 노동자를 구하는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전 5시부터 오전 6시 10분까지 인력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인력사무소 승합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일부는 직접 전화를 돌려 일을 구했지만 상당수는 오전 6시를 넘으면서 하나둘 발걸음을 돌렸다.

비단 현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건설경기 불황은 지난 1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행정 통계로 본 2023년 1월 노동시장 동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일용직 근로자를 포함한 건설업종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 수는 1만9300명으로 전년 동기(1만7600명) 대비 1700명 늘었다. 지난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4분기 및 연간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건설 수주액이 전년 동기 대비 15.8% 줄어들기도 했다. 9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수치다.
 
자료 속 수치는 증가와 감소로 진단을 끝냈지만 새벽 인력시장을 찾은 구직자들은 단념하지 못했다. 오전 6시 20분께 여전히 50명 남짓한 사람들은 밥벌이 걱정에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김모씨(67)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간혹 오전 9시에 일을 시작하는 곳도 있다”며 희망을 놓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