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의 아주경제적 시선] 성장률 0%대 추락 목전..한국 경제 '중대고비' 잘 넘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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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자유시장연구원장
입력 2022-11-2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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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지난 11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한국 경제 장기 성장률 전망 보고서는 한국 경제가 위기의 목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경제 성장률은 장기간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한 1962년부터 1991년까지 30년간 연평균 9.7%라는 고성장을 지속해 왔다. 이 기간 동안 연평균 증가율 17.8%라는 왕성한 투자가 고성장의 원천이었다. 정부가 금융·세제 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그러한 지원에 힘입어 월남의 전선과 중동의 열사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를 누비던 기업가들의 왕성한 기업가 정신과 가난을 벗어나고자 했던 근로자들의 피땀이 어우러져서 연평균 17.8%라는 높은 투자를 이어가며 세계 경제 발전사에 최초로 30년간 9.7%라는 최장 고성장을 달성하면서 한 세대 안에 최빈국에서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는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세계은행이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명명하였듯이 세계사적인 위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던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992년 들어 하락하기 시작했다. 중성장기에 들어간 것이다. 1992년부터 2011년 20년간 한국은 연평균 5.4%의 중성장으로 주저앉았다. 투자증가율 하락이 주된 원인이다. 1992~2011년 중 연평균 투자증가율은 3.9%로 고성장기 30년간 연평균 투자증가율 17.8%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1990년대 이후 투자증가율이 급속하게 하락하기 시작한 데는 1987년 체제 이후 노조 강성화, 임금 급등, 토지가격 급등, 원화 가치 절상 등으로 기업 경영 여건이 악화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해외 탈출 러시가 이어진 반면 국내 투자는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88년부터 1993년까지 6년간 연평균 임금 상승률이 20%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1986년에 경상수지가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면서 미국의 원화 절상 압력도 증가해 원화 절상도 가속화되었다. 임금이 급등하고 원화는 절상되니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으로서는 한국에서 생산해서는 도저히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탈출구는 해외 탈출이었다.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는 1990년에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돌파한 후 급증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는 엑소더스, 대탈출 수준이다. 해외 투자 규모는 2006년에 120억 달러로 올라선 후 2007년에는 231억 달러로 200억 달러대에 진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침체한 2009년에 다소 줄어들었으나 지난해에는 296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연평균 성장률이 2.9%로 하락했다.

그런데 KDI 보고서는 내년부터는 1%대로 하락하고 2040년부터는 0%대로 추락해 2041~2050년 평균 0.7%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관적인 시나리오로는 2030년대부터 0%대로 추락해 2031~2040년 평균 0.9% 성장률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의 일본’과 같은 상황에 이르면 2030년대부터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대라고 해서 0%나 마이너스 성장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간 성장률이 연평균 0.77% 인플레이션율이 연평균 0.11%를 지속하면서 일본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가라앉힌 현상을 말한다. 즉 0%대 성장률은 대체투자 정도가 일어나는 수준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규 투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아서 새로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젊은 세대는 갈 곳이 없게 된다. 일본에서 장성한 자녀들이 부모 집을 떠나지 못한다고 하여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유행한 배경이다. 그러한 현상이 머지않은 2030년대 한국에서 발생한다는 전망이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추락하는 성장률로는 안정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하기 힘들다. 대체로 2021년 기준 1인당 소득이 4만 달러 이상은 되어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3만4983달러로 선진중진국에 진입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범주에 속해 있는 나라들이 이탈리아, 한국, 대만, 스페인 등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2011년 재정위기를 겪었던 바와 같이 분배 욕구가 비등하면서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단계다. 이 단계를 넘어 1인당 소득이 4만~5만 달러 이상은 되어야 안정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하게 된다. 이러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는 성장률이 더욱 반등해야 한다. KDI 전망처럼 성장률이 0%대로 추락하면 한국 경제의 선진국 진입은 요원해 지고 계속 지금처럼 좌우로 나뉘어 혼돈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 경제는 중대한 분수령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추락하기 시작한 잠재성장률과 성장동력을 다시 반등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규제 혁파, 법인세 인하, 리쇼어링 정책 등으로 1인당 소득 6만 달러대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반등한 적도 있다. 성장률은 흔히 생산함수가 말해 주듯이 자본 증가율, 노동 증가율, 생산성 증가율의 합이다. 그렇다면 성장률을 올리려면 자본 증가율, 노동 증가율, 생산성 증가율을 올리면 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이 세 가지 모두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 증가율 하락은 곧 투자 증가율 하락이다. 그렇다면 투자 환경을 개선해서 투자가 증가하도록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공무원이나 기득권 그룹 등 규제의 이익을 향유하는 집단들의 이기주의로 존속되고 있는 각종 규제들을 혁파하고 과도한 재정지출 재원 마련을 위해 올리고 있는 법인세를 낮추는 등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일이 급선무다. 한때 한국과 더불어 네 마리 용으로 지칭되던 싱가포르가 1인당 소득 7만 달러대 선진국으로 멀찌감치 앞서 가고 있는 것도 싱가포르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 1~2위로 연이어 선정되고 있을 정도로 규제가 없고 법인세가 낮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 교육, 의료, 관광, 사업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에 대한 획기적인 규제 혁파가 긴요하다. 현재 대졸 초임이 월 400만~500만원 수준이다. 1인당 소득이 5만~6만 달러라는 것은 대졸 초임을 두 배 주고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려면 첨단산업이나 지식 기반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 아니고는 안 된다. 싱가포르나 스위스 등이 예다.

노동 증가율 하락은 경제활동인구 감소를 의미한다. 한국도 고령화·저출산으로 인해 2020년부터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산 가정의 양육 보육 지원 등 실효성 있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저출산을 초래하고 있는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을 해소할 지역균형발전도 중요하다. 생산성 증가율은 우수 인력과 연구개발이 핵심이다. 그런데 교육은 40년 넘게 평준화 정책을 지속하고 14년째 대학 반값 등록금으로 우수 인력 공급과 배치되는 면이 적지 않다. 고급 인력과 기능 인력 양성 중심으로 교육제도도 개편되어야 한다.

이처럼 자본 증가율, 노동 증가율, 생산성 증가율을 제고하는 일은 자유와 형평 같은 가치관 문제, 의식 변화, 문화사회적 문제와도 관련이 있어 쉽지는 않은 과제지만 한국은 반드시 이 중진국 고비를 넘어 안정되고 번영된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 지금처럼 국회는 진영논리에 매몰된 정쟁만 일삼고 귀족 노조의 파업이 일상화되어서는 안 된다.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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