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사고 후 찾아 온 첫 평일... 이어지는 추모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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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송하준 임종현 김서현 수습기자
입력 2022-10-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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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를 위한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헌화를 마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31일 서울시청 앞 광장,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 제단 위에 올려진 국화에는 햇빛이 닿지 않았다. 조문객 마음에 드리운 슬픔의 그늘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한 조문객은 헌화를 한 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겨우 일어서서 두 번 절을 했지만 터져버린 울음에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다. 조문객 정원우씨(26)다.
 
정씨는 "(경기도) 광주에서 통학을 하는데 친구의 지인이 이번 참사의 피해자"라며 "조문을 하기 위해 아침 6시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했다. 이후 일정을 묻는 질문에 "오늘은 낮 12시에 수업이 있다"면서도 "국가애도기간인 11월 5일까지 매일 조문을 하기 위해 분향소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조문객 이인숙씨(63)는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었다. 그가 손에 든 ‘애들아 미안하다’가 적힌 피켓 내용에서 ‘석고대죄’를 연상할 수 있었다. 그녀는 울컥하며 “이 시대의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애들은 죄가 없다, 그저 축제에 놀러간 것일 뿐”이라며 “우리가 왜 진작 이런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바꾸지 못했는지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경기 의정부에서 온 최모씨(70)는 "저도 사상자들 또래 손녀가 있어 더 안타깝다"며 "손이 떨려 방명록에 글도 못 쓰겠다"고 했다. 최씨는 양팔을 하늘로 들며 "꿈을 못다 펼친 젊은 아이들이 하늘에서라도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그곳에선 행복하길"···발길 이어지는 합동분향소
사건 현장에서 400m 떨어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도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기 위한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사무치게 따스한 햇살이 분향소를 감쌌고 제단 위에 마련된 하얀 국화꽃이 검은 옷을 입은 조문객을 맞이했다. 조문객들은 제단 위에 하얗게 적힌 ‘이태원 사고 사망자’를 가운데에 두고 서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내려가는 머리는 빨랐지만 쉽게 들어올려지지는 않았다. 분향소 내부에 ‘검은 침묵’이 감돌았다.
 
분향을 마치고 나오는 한 조문객의 입은 무거웠다.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말 대신 눈물로 답했다. 떨어지는 눈물을 연신 훔쳐냈지만 두 눈에 고인 슬픔은 그보다 커 보였고, 하염없었다. 

참사가 발생했던 당일 이태원 일대를 지나쳤던 변모씨(66) 심경은 남달랐다. 변씨는 “그 애들이 즐겁게 지나다니는 모습이 계속 눈에 보인다. 가슴이 아프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변씨는 “사고 당일 오후 9시 조금 넘어서 참사가 발생한 골목을 지나갔고 그 부근에 특히 사람이 많아서 사고가 날 것 같아 빨리 지나쳤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젊은 친구들을 욕하지만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젊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없다”며 “놀 공간을 찾아 더 몰린 게 사고의 큰 이유”라고 말했다. 
 
회사 점심시간을 활용해 분향소로 찾아온 시민도 있었다. 이날 강남에서 찾아온 곽모씨(27)는 "즐거운 마음으로 축제에 놀러간 친구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 마음이 괴로워 이곳을 찾아왔다"며 "꽃피우지 못한 친구들도 그렇지만 남겨진 부모님들 마음이 얼마나 사무치겠냐"고 심경을 전했다.
 
이날 경기도 포천에서 녹사평역 광장 합동분향소까지 찾아온 송모씨(55)도 "제 딸아이가 20대라서 남 일 같지가 않았다"며 "많은 사람이 인명사고를 당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소감을 전했다. 송씨는 이어 “참사 현장 골목길이 너무 좁다”며 참사 현장의 도로 확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사고 현장과 바로 맞닿아 있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도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녹사평역 광장 분향소가 마련되기 전인 8시 10분께 이미 국화꽃이 누워 있었고 사이사이 술이 담긴 종이컵과 담배가 놓여 있었다.
 
근처 학교에 가기 전 잠시 들렸다는 시민 오모씨(22)는 “코로나로 2년 동안 놀고 싶은 욕구를 참았다가 이제야 놀러 나왔을 텐데 그러다가 참변을 당해 많이 안타까웠다”고 심경을 전했다. 그가 포스트잇에 적은 추모 메시지엔 사망자들 명복을 비는 내용과 다친 이들의 신체적·정신적 회복을 바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다른 추모 시민 정모씨(42)도 “너무 미안해서 왔다”고 추모 이유를 밝혔다. 그는 “처음 뉴스 속보를 접하고는 ‘사람이 많은데 왜 갔냐’고 생각했지만 자세한 기사를 보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참사인 것을 알았다”며 “섣부르게 판단한 것이 미안해 부산에서 첫차를 타고 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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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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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이 길어지긴 했지만, 아무튼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좀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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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가족도 그곳에 갔다가 피해자들 옮기고 CPR 하다 왔습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가는데, 셀카찍고 영상찍으셨던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CPR할 줄 몰라도 와서 다리라도 주무르고, 옮기는 거 도와주는 정도는 할 수 있었을텐데 구경거리로 삼으셨던 분들은 인간의 도리를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골든타임이 한참 지나서 CPR이 소용없었다고 해도, 거기 계시던 의사분들이 사망자의 시신의 손을 가운데로 모아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굳어버리면 모으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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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달려고 아주경제 가입하고 로그인했습니다.
    정말 그곳에 놀러간 아이들 욕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그만한 또래의 아이가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축제가 많지 않다보니 한 곳에 몰린 것 같다는 그 말에 공감합니다.

    솔직히 국내에 여러 축제가 있지만,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축제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젊으니까, 그 동안 고생했으니까 유흥을 즐겨보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정말 질나빠보였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고, 애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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