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해인사 팔만대장경' 600년만의 봉인해제…선조의 지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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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합천(경남)=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2-08-1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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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애장왕때 창건된 합천 해인사

  • '고려대장경'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 계곡 바람·창호 이용 환기·습도조절

  • 장경판전 과학적 설계로 목판 보존

해인사 팔만대장경 내부 탐방 사전 예약을 하면 법보전 내 팔만대장경(대장경판)을 지척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금단의 공간이 열렸다. '글'로 마주해온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몸소 마주할 수 있다는 소식은 마음을 퍽 설레게 했다. 600년 동안 굳게 닫혔던 해인사 법보전 문이 활짝 열렸으니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합천 여행이었다. 

◆천년 고찰 해인사로 향한 이유 

팔만대장경을 지척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꽤 오래전 일이었지만 이제야 팔만대장경과 인연이 닿았다. 주저없이 ​해인사로 향했다.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때(802년) 창건된 고찰로 맨 위쪽 장경판전 아래로 대적광전, 구광루를 비롯해 크고 작은 전각 20여 채가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불교적 의의와 역사적 가치를 되새겨야 할 천년 고찰 '해인사'. '해인(海印)'은 번뇌 속에 가려진 우주의 참 진리, 맑고 청아한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인간의 깨달음을 의미한다. 

불보사찰인 양산 통도사, 승보사찰인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삼보사찰로 꼽히는 해인사에 바로 국보32호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다.

팔만대장경 정식 명칭은 '고려대장경'이다. 

고려 시대는 몽골과 전쟁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불안했던 시기다. 몽골군의 침략을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부처의 일생과 가르침을 새긴 대장경을 제작했다. 

현존하는 대장경 중 가장 방대하고 오래된 팔만대장경은 마치 한 사람이 새긴 듯 동일하고 아름다운 글자체, 정교함, 완벽한 내용 등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대장경을 봉안한 장경판전(국보52호)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조선 성종 때(1488년) 완공됐다. 

장경판전은 수다라장, 법보전, 동사간판전, 서사간판전 등 네 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천천히 오르면 수다라장 연화문이 등장하는데 1년에 두 차례 춘분과 추분 오후 2시께 문 안으로 햇살이 비칠 때 그림자 문양이 마치 연꽃과 같다고 해서 연화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날 안내를 맡은 팔만대장경 연구원 보존국장인 일한 스님은 "운이 좋으면 연꽃 모양 그림자를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우리도 연꽃 문양을 마주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웃음을 지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사진=기수정 기자]

◆금단의 공간, 600년 만에 봉인 해제되다 

국보32호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을 드디어 눈에 담았다. 한 사람이 새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글씨체가 일정하고, 정교했다. 

팔만대장경은 8만4000 번뇌를 의미하는 8만4000 법문을 실은 목판 8만1000여 장이다. 이 목판에 새겨진 글자 수만 5200만자에 이른다고 한다.

목판 한 장 크기는 70×24㎝ 내외며, 높이 쌓으면 3.2㎞, 길게 연결하면 약 60㎞에 달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목판마다 양 끝에 각목을 붙여 뒤틀리지 않게 했고, 네 귀퉁이에는 금속 장식을 해서 목판이 서로 붙는 것을 방지했다. 전면에는 옻칠도 했다.

구양순체로 새겨진 글자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오·탈자 또한 없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놀랍다. 

법보전 내부와 팔만대장경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셌던 2021년 6월이다. 600여 년 만이다. 

일한 스님은 "그동안 일반 스님들도 장경판전 안으로 들어가 팔만대장경을 마주할 기회가 적었다"며 "주지스님(현응)이 팔만대장경을 국민과 함께 향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공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목판이 오롯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

유구한 역사를 품은 팔만대장경. 이 목판 대장경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이유는 대장경판이 보관된 '장경판전'의 과학적 설계 덕분이었다.

목판은 나무 특성상 습도나 온도가 조금만 높아도 뒤틀리거나 곰팡이가 슬어 보관하기 힘들다고 한다. 목판 보존에 적합한 환경은 온도 20도 내외, 습도 60~70%다. 하지만 해인사는 목판을 보존하기에 불리한 조건을 갖췄다. 인근 지역에 비해 연중 6~10%가량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백 년간 대장경판이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장경판전'의 과학적 구조에 있었다. 

장경판전은 해인사 내에서도 가장 높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산 아래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해 자연 적으로 환기가 가능하다.

창호 설계도 과학적으로 이뤄졌다. 조금이라도 눈썰미가 있다면 수다라장과 법보전 벽면 위아래 살창(나무 창살이 여러 개 달린 창)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로 흘러 들어간 바람이 위쪽 창문을 통해 나오면서 통풍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는 목판이 썩거나 틀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위아래 크기를 달리한 살창에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경판 보존에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바닥을 깊게 파고, 바닥에 소금과 숯, 횟가루, 마사토를 차례로 깔아 습도를 조절했다. 

일한 스님은 "20여 년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도 거미줄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쾌적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15세기 건축물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고, 또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장경판전. 21세기 건축 기술을 뛰어넘는 선조들의 지혜를 품은 이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해인사 법보전[사진=기수정 기자]

◆주말마다 공개하는 팔만대장경···복장 등 예 갖춰야 

해인사는 팔만대장경 내부 사전 예약 탐방제를 운영한다. 이를 통해 예약한 소수 인원에 한해 매주 주말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법보전을 개방하고 있다. 금단의 땅 '청와대'가 74년 만에 국민에게 공개됐을 때도 이토록 설레진 않았으리라. 

주말(토·일요일) 관람 인원 80명. 국보 팔만대장경을 지척에서 마주하는 것을 허락받은 인원은 일주일에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다만 석가고행도, 고승들 문집 등을 새겼다는 고려목판과 소승불교 경판이 보관된 수다라장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한편 팔만대장경을 마주하기 위해선 유의 사항을 지켜야 한다. 법보전 안에는 물병 등 액체류와 라이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사진 촬영도 금지된다. 대장경판은 물론 벽과 경판이 보관된 책장을 만지는 행위도 금지된다.

복장도 주의해야 한다. 슬리퍼나 하이힐, 반바지와 민소매 티셔츠, 레깅스 등을 입은 사람은 법보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수다라장 연화문[사진=기수정 기자]

합천 해인사 [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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