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푸틴과 우크라이나, 시진핑과 한반도 : '동결된 충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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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고문
입력 2022-07-1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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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고문]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지난 13일 북한과 외교관계를 끊는다고 발표했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주 러시아 북한대사 신홍철은 13일 러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주 러시아 도네츠크 대표와 회담을 갖고 북한이 도네츠크의 독립을 승인한다는 외교메모(Diplomatic Note)를 전달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14일 외교문서를 통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며, 자주와 평화, 우의의 이념에 따라 이들 국가와의 관계가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올레그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교부 대변인은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오늘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Donetsk)와 루한스크(Luhansk) 지역에서 러시아가 일시적으로 점령한 영토의 이른바 ‘독립’을 인정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북한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고 밝혔다. 니콜렌코 대변인은 “북한의 시도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훼손하려는 행위이며, 이는 우크라이나 헌법과 유엔헌장, 국제법의 기본 규범과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분리주의 지역 인정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아울러 밝혔다.

북한에 앞서 시리아 아사드 정부도 지난달 말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대표들과 만나 이들 정부와 정치적 관계를 맺을 준비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에 대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시리아와 외교관계를 단절한다”고 선언하면서 “모든 수준에서 가혹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월 14일 ‘특별 군사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작전을 개시한 이래 친러시아 조직이 구성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에 수립된 정부를 승인한 나라는 러시아, 시리아, 북한 3개국이 됐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중국이 현재까지 이른바 DPR(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LPR(루한스크 인민공화국)으로 약칭되는 우크라이나 동부 두 지역에 대해 승인한다는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인 지난 2월 4일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 참석을 이유로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중·러관계를 “한계가 없고, 금지된 구역이 없는(沒有止境,沒有合作禁區ㆍWith no limits, with no restriction) 관계”로 설정했다고 발표했다. 당시의 흐름으로 본다면 중국정부가 우크라이나 동부 두 지역에 친러시아 정부가 수립된 데 대한 승인 발표를 하지 않고 있는 점은 중국과 러시아 외교의 기본 흐름에 무언가 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4일 정례 브리핑에 나와 우크라이나가 북한과 단교를 선언한 데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한 것이며, 중국의 주장은 유엔 헌장의 원칙에 따라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고, 담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서 긴장이 악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이 같은 태도는 5개월 전 푸틴이 베이징을 방문해서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질 당시와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5개월 넘게 계속되는 동안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중국 외교흐름의 변화는 중국 외교부 인사에도 나타났다. 시진핑의 러시아 외교를 지원하던 러위청(樂玉成) 외교부 부부장이 지난달 14일 외교부가 아닌 국가라디오TV총국의 부국장으로 전보되는 일이 벌어졌다. 주 인도 대사와 카자흐스탄 대사를 지낸 올해 59세의 러위청은, 대미 외교 전문가인 양제츠(楊潔篪) 정치국원과 아시아통인 왕이(王毅) 외교부장에 이어 중국 외교계 제3인자로 평가되다가 2월 4일 푸틴의 베이징 방문과 시진핑과의 정상회담 과정을 주도한 후 4개월 만에 외교부를 떠나 라디오TV총국의 국장도 아닌 부국장으로 좌천돼 베이징 외교가에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끄는 우크라이나의 항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의 친 러시아 정부 수립 움직임, 이에 대한 북한의 승인과 우크라이나의 북한과 단교 선언과 관련 국제사회에서 떠오른 말은 ‘동결된 충돌(Frozen Conflict)’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5월 7일 월스트리트 저널과 회견을 하면서 “우리는 러시아가 제시하는 ‘동결된 충돌’ 협의 제안에 결코 응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혀 주목받게 된 말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는 ‘동결된 충돌’에 결코 만족할 수 없으며, 명확한 반대를 밝힌다”고 말했다.

젤렌스키가 언급한 ‘동결된 충돌’이란 유엔 고위 관리를 지낸 이집트 외교관 람지(Ramsey)가 지난 3월 중동지역 신문 기고문에서 처음 사용한 국제정치 용어로 “국제적인 무장충돌의 결과 평화협정도 체결되지 않고, 분쟁 해결의 틀도 마련되지 않은 지역으로 갈등이 재발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람지가 말한 ‘동결된 충돌’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대표적인 곳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지역인 골란고원과 중국의 타이완 지역이 있고, 한반도의 남북한도 ‘동결된 충돌’ 지역으로 분류된다.
‘동결된 충돌’과 관련 우리가 주목해야 할 움직임은 북한이 러시아의 편을 들어 재빨리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LPR) 정부 수립을 승인하고 나섰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를 지지하던 중국이 5개월 만에 발을 빼고 두 지역 친러시아 정부의 수립 움직임에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미 스탠퍼드 대학이 운영하는 중국 관찰 웹 매거진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China Leadership Monitor) 여름호에서 인민일보 기자 출신의 중국 전문가 우궈광(吳國光)은 “중국공산당 내부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시진핑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외교정책을 취하는 데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진단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직후 미국으로 망명한 우궈광은 “이미 지난 3월 5일 상하이(上海) 자오퉁(交通) 대학 정치학 교수 후웨이(胡偉)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와 관련 ”중국 정부는 전쟁의 향방에 대해 정확히 분석하고 진단해서 중국의 장기적인 이익이 무엇인지 게산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적인 의견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우궈광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 참사(차관급) 왕후이야오(王輝耀)도 지난 3월 14일 뉴욕타임스 중국어판에 ”중국이 푸틴에 묶이면 안되며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도록 출구전략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우궈광의 판단은 앞으로 3~4개월 이내에 중국공산당 전당대회를 앞둔 중국 정치에서 적어도 외교 전략 면에서는 시진핑의 푸틴 전폭 지원에 대한 반대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우궈광은 주장한다. 중국의 외교전략에서 시진핑에 반대하는 흐름이 나타난 사실이 당총서기 3연임을 시도하고 있는 중국 내부 정치역학에 어떤 영향을 낳을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고도 했다.

푸틴의 베이징 방문과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1개월 후에 출범한 윤석열 대통령 정부도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워싱턴의 속마음 읽기에만 열심일 것이 아니라 이웃한 중국 베이징 내부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국제정치 수싸움도 면밀히 관찰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강국”임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한반도가 지난 세기의 냉전(Cold War) 당시 미국과 중국이 미해결의 상태로 내버려둔 ‘동결된 충돌(Frozen Conflict)'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국제사회가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인식해야 할 것이다. 북한 어민 송환 문제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 사이에 낀 한반도 국제정치의 흐름도 잘 관리해야 할 것이다. 

[미니 박스] 

위키피디아가 분류한 전 세계의 ‘동결된 충돌(Frozen Conflict)’ 지역

1.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2. 조지아와 압하스 사이 남오세티야와 압하스
3.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4.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 카슈미르
5. 중국 대륙과 대만
6. 남북한
7.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골란고원
8. 유고와 알바니아 사이 코소보 지역
9. 터키와 사이프러스 사이 북사이프러스
10. 모로코 왕국과 폴리사리오 전선 사이 서부 사하라 지역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현 최종현 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 호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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