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사실 보고받은 적 없다" 거짓 해명...대법 "명예훼손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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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지 기자
입력 2022-05-1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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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22.05.11[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직장 내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부하 직원의 보고를 받아놓고서는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상급자에게 '보고받은 적 없다'고 거짓 해명한 행위는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부하 직원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고의를 갖고 발언한 게 아니라 단순 확인 취지의 답변이었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법 강릉지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2018년 10월 강원도 동해시의 작업장에서 한 장애인이 인지가 낮은 여성 동료를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A씨는 부하 직원 B씨에게서 성추행 피해 보고를 받았고, A씨는 가해자의 모친을 불러 추행 사실이 적힌 확인서에 서명하게 했다.

그러나 성추행 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으면서 해당 시설은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됐다. 이에 상급자가 직원 5명이 참석한 회의 석상에서 과태료 처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자 A씨는 "애초 B씨로부터 성추행 사실 보고받은 적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A씨는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해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은 A씨가 B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회의실에서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또 직원 5명이 듣고 있는 가운데 허위 사실을 말했으므로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범행이 명확한 데도 범행을 부인하며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법원은 A씨의 발언에 명예훼손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놨다. 경과보고를 요구하는 상급자에게 단순 확인 취지의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A씨가 상급자로부터 과태료 처분 책임을 추궁받자 대답 과정에서 B씨와 관련된 언급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명예를 훼손하려는 고의를 가지고 발언을 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책임에 변명을 겸해 단순한 확인 취지의 답변을 소극적으로 하면서 주관적 심경과 감정을 표출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고의를 갖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데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며 "회의 자리에서 상급자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하자 대답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듯한 사실을 발설하게 된 것이라면 내용과 경위, 동기, 상황 등에 비춰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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