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대학 – 새 정부의 교육개혁은 이렇게" (4)

[안상준 교수]


기온이 오르고 만물이 생장한다. 꽃이 피어 향기가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 마침내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시점이 다가온 듯하다. 그러나 5월의 생장 기운도, 코로나 종식의 기대감도 지역 대학에 생기를 불어넣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금 지역 대학은 다이어트 중이다. 얼마나 다이어트를 하고, 어떻게 체질을 개선해야 할지 보고서에 담아 교육부에 제출하는 과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육부의 요구는 ‘적정 규모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결국 교육부는 정원 조정 정책을 유일하게 실효적인 대책으로 판단하고, 대학에 과제를 부여한 셈이다. 다만 예전처럼 교육부가 목표를 정하여 강제적으로 감축하는 방식이 아니라 파산 직전인 대학이 구성원의 동의를 거쳐 자율적으로 감축 규모를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정원 감축으로 지역 대학은 생존을 확보할 수 있을까? 과연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연명한 대학은 대학으로서 설립 목적을 달성하고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2021년 입시 결과는 지역 대학을 충격에 빠뜨렸다.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들이 속출했고, 국립대마저 적잖은 규모의 미충원이 발생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 청년의 수도권 유출 현상이 극적인 효과를 발휘한 미충원 사태는 한 세대 전부터 예상했던, 이른바 ‘벚꽃엔딩’의 현실을 연출하는 듯했다. 총장이 사퇴하는 사립대학이 나왔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자발적인 학생 정원 감축과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국립대학도 있었다.

이제 실제로 지역 대학이 파산선고를 받을 위기에 이르자 비로소 정치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치인 주도로 다양한 토론회와 공청회가 열렸고, 국가교육회의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 교육 관련 기구들이 연합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대책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고등교육 개혁을 위한 토론회’가 마련되었다. 연일 언론은 교육당국에 묘책을 주문하는 기사를 쏟아냈고, 한편으로 지역 대학 총장들은 현재의 위기가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부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다. 서로 위기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자세가 분명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필자가 주목한 사안은 2021년 11월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립대학법’ 제정이었다. 의정 기간 내내 교육위에서 활동한 유기홍 의원은 지역 대학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특히 대학 간 균형 발전이 갖는 의미를 간파하고 다양한 대책을 내놓는 행보를 보였다. 그래서 유 의원은 국립대학법 제정과 함께 ‘대학균형발전특별회계법’과 ‘조세특례제한법’을 제안하며,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 대학을 살리고자 했다.

국립대학법은 간단히 말해서 지역에 소재한 국립대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국립법인대학 서울대에 버금가는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지원하자는 내용이다. 현재 국립대 학생 1인당 평균 교육비(1670만원)는 서울대 학생 교육비(4860만원) 대비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교육비는 교육 환경에 투자한 비용으로서 대학의 우열을 가리는 결정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학의 서열은 이 교육비 규모와 거의 일치한다. 연세대가 3000만원대를 넘고,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서울의 주요 사립대가 2000만원대를 유지하는 반면에 하위권 대학과 지역의 사립대학은 15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국립대학법 제정을 통한 국립대 정상화는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그러나 국립대학법은 발의된 지 6개월이 되었지만 해당 소위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발의자와 더불어민주당의 법안 통과 의지가 의심된다. 국민의힘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며 관망하고 있다. 지역 대학을 살리는 묘책을 왜 수수방관하고 있을까? 국립대 구성원들조차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하여 적극적인 요구와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이 법은 두 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먼저, 법안 자체의 미흡한 내용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국립대의 지위 향상과 발전 전략에 관한 철학이 부족하다. '자율성을 보장하고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성을 높여, 학문을 발전시키고 인재를 양성하며, 국가 균형 발전에 기여함'이라고 법안 제정의 목적을 밝히지만 국립대의 명확한 상(像)을 정립하지 않고 또 숭고한 목적들을 실현하려는 의지와 방안도 보여주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국립대학을 '국가기관으로 규정하며, 대학 운영에 관한 독립된 권리와 권한을 행사하고 의무를 부담하는 공법인'으로 규정함으로써 교육부 통제가 아닌 자치적 운영 원리를 구현하려는 요구가 반영되지 못했다. 나아가 국립대학법은 총장독임제의 폐해를 막을 장치도 없고 민주적 대학 운영을 위한 제도와 규정도 없다. 구체적으로 ‘대학평의(원)회’의 의결기구화, 교육부가 파견하는 사무국장 제도의 변경, 국립대 교원 확보 기준의 정립(인문사회 20명, 자연과학·공학·예술 15명, 의학 5명), 한국국립대학교육협의회의 설치 또는 사립대가 할 수 없는 기초·보호학문 분야 수호와 대규모 예산 소요 분야를 이끌어가는 역할 등 다양한 요소들이 빠짐으로써 국립대 본연의 목적과 역할을 구현할 토대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나라 대학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전략의 부재다. 앞서 연재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 대학생 중 약 80%가 사립대에 다닌다. 즉 ‘사립대 비중 80%’라는 고등교육 체제의 왜곡을 극복하면서 국립대학법을 제정하려는 뚝심과 슬기의 부재가 아쉽게 다가온다. 우리 국민은 왜곡된 교육 체제에 적응하였다. 당장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선이기에 지방 국립대 육성보다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또 대학 서열화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좋은 대학’이 많이 있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보낼 뿐이다. 이 법안이 여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국립대학 구성원의 문제와 희망으로 머무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사립대와 공통분모에 해당하는 부분들을 반영하면서 국립대 발전을 도모하는 법안을 제시할 때 비로소 이 법안에 대한 여론의 관심과 국민의 지지가 생기리라 믿는다.

과연 국립대학법 제정은 이대로 무산되고 말 것인가? 그렇다면 국립대학은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 과격한 결론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국립대는 망한다고 본다. 국립대 지원을 위한 확고한 근거가 없는 한 국립대는 회생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 일자리가 없고 정주 인프라가 빈약한 도시에서 어느 청년이 일생을 보내려고 하겠는가? 인구 소멸 도시에 대학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난센스 아닌가? 그래서 발상을 전환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대학이 도시를 살리는 중핵이 되어야 한다.’ 대학의 부흥을 통해 도시가 생기를 찾고 지역사회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방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존립의 확고한 초석으로서 국립대학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1편 관리의 위기에서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지역 대학에 관한 여러 가지 대책이 시행되었다. ‘대학설립준칙주의’라는 해괴한 명칭의 대학 경쟁 체제가 도입되거나, 넘쳐나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빌미로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적용해 대학 간 경쟁을 유도하기도 했고, 정부의 행정적·재정적 권한으로 강제적인 통폐합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실험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러나 지역 대학은 ‘좋은 대학’으로 거듭나지 못했고, 오히려 지역의 쇠락과 함께 지역 대학은 끝을 모르고 추락 중이다.

모든 조직의 생존은 두 가지 요소로 진행된다. 생존의 명분과 조직 구성원의 열정. 우리는 이렇게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국립대학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혹은 지역에 왜 그렇게 많은 대학이 존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국립대학의 존재를 위하여 구성원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가? 교수는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고 학생의 교육과 지도에 열정을 기울였는가? 사회의 변화와 기술 발전에 조응하여 교육 과정과 교육 환경을 개선하거나 개혁하는 작업에 충실했는가?

먼저, 국립대학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살펴보자.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국민을 노동력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국가는 양질의 노동력을 양성하는 중요한 책무를 이행하고, 그 비용을 부담한다. 그래서 모든 국민에게 의무교육을 이수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대학교육의 비용까지 국가가 부담하는 나라도 많다. 그런 맥락에서 고등교육의 공공성은 선진국의 지표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우 국립대학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우리 정부는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한 전략이자 해당 지역 주민에게 경제성장의 결실을 분배하는 차원에서 국립대학을 설치했다. 지역의 국립대는 해당 지역의 인재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대학 생태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비록 국립대가 전체 고등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았지만, 국가 고등교육 체계에서나 지역사회와 지역경제에서나 국립대의 존재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울 일극화 현상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면서 국립대의 위상과 비중은 추락하기 시작했고, 시장주의와 경쟁 체제 속에서 국립대는 존재조차 희미해졌다. 국립대의 위축과 소멸은 해당 지역사회의 소멸로 직결하고 그것은 국가 균형 발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 본다.

최근 수도권에 상응하는 메가시티 발전 전략이나 특정 지역에 서울대와 유사한 대학 만들기 프로젝트가 제시되고 있다. 어느 것이든 규모의 경쟁만이 살길이라는 성장주의 이념에 사로잡힌 전략들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독일 모델에 주목한다. 독일에서는 대학이 도시를 이끄는 핵심 기관의 역할을 맡는다. 대학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관으로서 시민의 자부심이 되고 ‘대학도시’를 간판으로 내건다.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성장을 거치는 동안 독일 전역에는 수많은 신생 대학이 생겨났다. 학생 수 4만명이 넘는 대규모 대학부터 1만명 정도인 소규모 대학까지 전국 중소 도시에 대학이 퍼져 있다. 필자가 연구년을 보냈던 밤베르크 사례를 살펴보면, 인구 7만명이 조금 넘는 세계유산 도시 밤베르크와 재학생 1만2000명이 다니는 밤베르크 대학은 이상적인 조합이다. 고풍스러운 중세도시답게 대학에는 인문학부, 사회과학부, 교육학부와 정보과학부가 설치되어 있다. 도시에 적합한 특성화 학과로 편제되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모델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국립대학법이 필요하다.

두 번째 질문, ‘대학 구성원은 혁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의문이 든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혁신이 없다면 그냥 자멸의 길을 선택했다고 봐야 할 지경이다. 이제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이 지역 대학의 모든 구성원은 사회 변화에 적응하고 변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제시된 무수히 많은 정책과 프로젝트는 강제성이 없었다. 그것이 지역 대학이 밀려나는 원인이었고, 한편으로는 경쟁력을 의심받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지역 대학이 없으면 지역사회가 공멸하는 오늘에 이르러 강제력이 동원되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국립대학법이 맡을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립대학을 규율하고 관리하는 사립대학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이 둘을 아우르는 대학법이 제정되는 날이 올 때, 한국의 대학 체제는 정상화에 이르리라고 전망한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 학위 취득 △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회장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 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해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2022) 공저 △교수신문 논설위원,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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