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설주'를 보면 4대 세습 구도가 보인다?

[조윤영 전 뉴시스 도쿄특파원·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북한 김정은은 지난달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부인 리설주와 함께 나란히 등장했다. 게다가 열병식 행사 주석단에서 리설주가 김정은 바로 뒤 상단에 서 있는 모습이 포착돼 북한 관찰자들의 눈을 동그랗게 뜨게 만들었다. 북한에서는 그 누구든 어떤 경우든 ‘수령님’보다 높은 곳에 자리 잡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 안팎에서는 리설주의 우상화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다소 성급한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북한에서 ‘수령의 부인’은 공식 직함이 없지만 다른 보통국가의 ‘퍼스트레이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위상을 갖는다. 이는 물론 ‘수령’의 절대 권력에서 나오는 후광 효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 선에 머무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 정권은 3대에 걸친 세습 체제를 이어오면서 ‘혈통’을 매우 중요시하고 신성시하고 있다. 이른바 ‘백두혈통’이다. 김일성의 백두산 항일 투쟁을 이어받는 혈통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백두혈통을 이어가는 데 있어 수령의 부인은 필수적 존재이고, 그 부인의 출신이나 경력 등은 백두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핵심적 요소가 된다. 또한, 수령과 함께 그의 부인을 위대한 존재로 인민들에게 각인시키는 일은 정권을 공고화하고 다음 후계자를 준비하는 데도 꼭 필요한 과업이 되는 것이다.

북한에서 역대 ‘수령의 부인들’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당시 정권의 특성과 후계체제의 등장 과정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의 행동반경과 언행 속에도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이 반영돼 있음은 물론이고, 앞으로 리설주의 위상이 북한 주민들에게 어떻게 선전되는지에 따라 김정은 이후의 후계체제 구도와 준비 과정을 관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여성은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를 떠밀어나가는 역량’으로 표현된다. 여성도 인민 대중이 만드는 혁명의 역사에서 종속적이고 보조적인 역할이 아닌 주체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담론에 따라 북한은 3월 8일 국제부녀절 등을 크게 기념한다. 지난 3월 9일 노동신문은 “위대한 당이 펼친 새 승리의 진군로를 따라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를 억세게 떠밀어나가는 우리 여성들의 긍지와 자부심이 3.8 국제부녀절 112돌을 맞으며 더욱 세차게 분출했다”라면서 북한 전역의 국제부녀절 행사를 보도했다.

혁명 전략의 차원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할 뿐만 아니라 의무화하고 있는 북한이지만, 유력 여성 정치인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여성의 실질적인 정치·사회적 지위는 매우 낮은 형편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까닭은 아직 사회 전반에 봉건적 의식이 짙게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여성의 지위가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북한에서 ‘수령의 부인’을 특별한 존재로 부각하려면 우상화 작업이 불가피하다. 그 첫 대상은 김일성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었다. 1917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김정숙은 1935년쯤 항일운동을 하고 있던 김일성을 처음 만나 결혼했지만 1949년 출산 중에 사망했다.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의 존재 등의 이유로 20년 넘게 사실상 잊힌 존재였던 김정숙이 대대적인 우상화 대상이 된 것은 그의 아들 김정일이 1974년 공식 후계자가 되면서였다.

‘백두여장군’이라는 호칭을 받은 김정숙은 김일성·김정일과 함께 백두산 3대 장군으로 불리게 되었고, 양강도 신파군은 김정숙군으로 개명되었다. 김정숙의 생일(12월 24일) 역시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명절이고 사망일(9월 22일)에도 추모 행사를 한다.

북한에서 김정숙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김일성의 가장 가까운 혁명 동지다. 북한의 대성산혁명렬사릉의 최정상에는 김정숙의 묘와 동상이 있다. 동상에는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를 일컫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지휘관이라고 쓰여 있다. 혁명렬사릉은 대부분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 대원들의 묘인데 이 공간 중앙에 김정숙이 있다는 것은 그녀가 빨치산 부대의 중요한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김정숙은 김일성의 후계자 김정일, 즉 수령님의 어머니이다. 북한 주민에게 김정숙은 김일성의 혁명 동지이며 혁명의 대업을 이어간 김정일을 낳고 기른 ‘수령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수령의 부인’으로서 ‘혁명의 동지’이며 ‘수령의 어머니’이기도 한 김정숙은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위대한 여성으로 비치는 데 손색이 없었고, 그것은 김정일의 권력 강화에도 적잖은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 북한에서는 군에서부터 김정일의 부인 고영희를 ‘평양의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우상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북한 주민들은 ‘평양 어머니’라는 말에서 “후계자가 등장하겠구나”라고 짐작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김정은의 존재는 북한 주민들에게 거의 알려있지 않았다. 김정은은 2010년 26세 나이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오르면서 그의 후계작업이 공식화되었고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으로 절대 권력을 이어받았다. 그의 권력 승계는 김정일의 건강 악화로 예상보다 급속히 이루어졌고, 때문에,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도 급박하게 진행된 느낌이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어머니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이는 집권 초반의 김정은 권력을 정착시키는 작업과 맥을 같이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4년 사망한 고영희의 생전 역할을 조명한 기록영화가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님’이라는 제목으로 나와 2012년 5월 간부들을 대상으로 처음 상영됐다. 하지만 고영희의 우상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북송 재일교포 출신인 고영희의 신분과 경력의 약점을 전면에 내세우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군부가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 나섰을 때도 경력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부각하려고 나름 애를 쓰는 듯했다. 그의 노력은 할아버지 김일성을 모방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김정은은 머리 스타일이나 연설하는 제스처까지 모두 김일성의 이미지를 모델로 삼았다. 이번 열병식에도 김일성을 연상하는 하얀 군복을 입었다.

김정은은 또 집권 초반부터 부인 리설주를 공개석상에 등장시켰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2012년 7월에 처음 등장한 리설주는 북한 주민들에게 큰 화제였다. 김정숙은 1949년에 죽었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만 등장했고 김정일의 부인들도 북한 인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리설주는 북한 주민들이 직접 보는 살아있는 첫 수령의 부인이었다. 김정은으로서는 부인을 공개함으로써 정상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이려는 의도가 컸겠지만, 이와 함께 리설주에게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의 이미지를 씌우려는 의도도 읽힌다. 이는 부인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던 아버지 김정일과는 다른 면모다. 지난 2월 1일 음력 설날을 맞아 평양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열린 경축 공연에 리설주가 붉은색 한복 저고리에 검은색 한복 치마를 입고 나왔는데, 북한에서 이 차림은 김정숙을 상징하는 패션으로 여겨진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리설주의 우상화가 본격화되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아직은 그렇게까지 보기는 성급한 시점으로 여겨진다. 리설주가 우상화되는 시점은 아마도 4대 세습이 가시화될 때가 아닐까 싶다. 북한에서는 수령과 수령의 어머니 김정숙 외에는 개인 우상화가 허용되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의 절대 규범인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도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리설주가 아무리 현재 수령의 부인이라 하더라도 우상화 작업은 후계자 추대와 연관되지 않고서는 어려운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권력자 주변의 여인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북한처럼 절대 독재국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고 권력자의 여인에 관한 정보는 대중에게 엄격하게 통제될 뿐만 아니라 적절히 가공되기도 한다. 북한의 ‘1호 여성’은 대중의 호기심을 적당히 채워주면서 한편으로는 최고 권력자의 통치를 보완해주는 권력의 한 장치라는 성격도 갖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령의 여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북한의 권력 내부를 탐지해 볼 수 있는 한 창구가 될 수 있다.

앞으로 리설주가 어떤 모습으로 대중에게 나타나는지, 또 북한 당국이 그녀의 위상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예의주시해보면 북한 권력 내부의 미묘한 변화, 특히 4대 세습의 구도를 감지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김정은의 건강 문제 등과 관련해 그의 후계체제 논의가 조기에 부상할지 여부는 리설주의 위상 변화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다.

[미니 박스] 

북한에서 여성의 지위는? 

북한은 여성을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를 떠밀어나가는 역량’이라고 강조하며 국가의 당당한 주인이라고 선전한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지난해 7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처음 제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위한 ‘자발적 국가평가(VNR)’ 보고서에서 북한은 남녀평등권 법령 공포로 이미 오래전에 성 평등을 달성했고, 유엔이 제시한 지속가능발전목표도 대부분 성취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2019년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 여성이 17.6%를 차지한다는 통계 자료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북한 여성의 실질적인 사회적 지위는 매우 낮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5월 발간한 ‘북한인권백서2021’에서 “북한 여성은 정형화된 성 역할과 제한된 사회 진출, 가사노동과 사회노동의 이중 부담으로 여전히 직간접적인 차별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평가했다. 미국 민간단체인 미국외교협회(CFR)가 2020년에 발간한 '여성파워지수' 보고서에서 정치 분야에 진출한 여성 비율을 따져 정치적 평등성을 점수로 환산했는데, 북한은 100점 만점에 14점으로 조사 대상 193개국 중 137위였다.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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