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선과 베트남의 마지막 교류 흔적, 232년간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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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베트남)=김태언 특파원
입력 2022-02-2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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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이선 왕조시절 조선 사신과의 '한시 2편' 발견

  • 청나라 방문 사절이었던 판후이익 문중집에 포함돼

  • 전 조선대 교수 안경환 KGS 이사장이 밝혀내

판(潘·Phan)씨 집안 문중(門中) 문고 5권 중 두 번째 문집의 115장에 '판후이익이 박제가 사신에게 화답한 시'가 적혀 있다. [사진=안경환 한국글로벌국제학교 이사장]

조선과 베트남 왕조의 마지막 교류 흔적을 담은 한시(漢詩) 2편의 필사본이 베트남에서 232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그동안 18세기 당시의 조선과 베트남의 교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박제가(朴齊家)의 '초정집(楚亭集)' 등 한국 쪽에서는 많이 나타났지만, 베트남에서 실제 기록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 조선대 교수이자 베트남 연구가인 안경환 한국글로벌국제학교(KGS) 이사장은 판후이익(Phan Huy Ích: 潘輝益) 선생의 문중(門中) 문고 등을 연구하면서 근현대 이전의 한민족과 베트남 민족의 교류역사를 잇는 새로운 사료 한시 2편을 찾았다고 최근 밝혔다. 안 이사장은 한시 2편의 필사본과 연구내용을 오는 3월 22일 베트남 하노이 판(潘)씨 종중 사당에서 열리는 판후이익 선생의 서거 2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에 발견한 한시 2편은 1790년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의 팔순 잔치 축하사절로 연경에 온 조선 사신과, 베트남 떠이선(西山) 왕조(1778~1802)에서 온 사신과의 만남에서 베트남의 사신 판후이익(1751~1822)이 조선 사신 박제가에게 준 한시의 필사본이다. 

안 이사장에 따르면 두 나라의 사신이 연경에서 만난 1790년은 청나라 중흥기를 이루면서 60년간 군림한 건륭제(1735~1796)의 팔순 잔치가 있는 해였다. 주변국은 건륭제의 팔순 잔치에  축하사절을 파견했고 조선에서는 정사(正使)로 황병례(黃秉禮), 부사(副使)에 이조판서 서호수(徐浩修), 서상굉문관교리(書狀宏文館校理) 이백형(李百亨), '북학의(北學議)'의 저자인 실학자 박제가가 수행원으로 갔다. 베트남은 당시 떠이선 왕조의 대표적 실학자인 레꾸이돈(黎貴惇, 1726~1784)을 필두로 판후이익 등이 사신으로 왔다. 

이때 판후이익이 조선 사신 박제가를 만나 서로 시를 주고받았는데, 판후이익이 썼던 한시 2편의 기록이 그가 쓴 '성사기행(星槎紀行)'과 판씨 문중집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다. 당시 판후이익은 떠이선 왕조를 세운 꽝쭝(光中) 황제가 직접 축하사절로 오라는 청나라의 요청을 거부하고, 꽝쭝 황제를 대신하여 파견된 가짜 왕을 수행해 연경에 온 사신이었다.

한시는 '판후이익 공(公)이 박제가 사신에게 화답한 시(侍 宴 西 苑, 朝 鮮 書 記 樸 齋 家 攜 扇 詩 就 呈, 即 席 和 贈)'와 '조선국 사신에게 보낸 시(柬朝鮮國使)' 총 2편이다. 특히 '조선국 사신에게 보낸 시'의 내용에는 풍칵콴(憑克寬, 레왕조 베트남 사신)과 이수광(李粹光, 조선의 사신)이 1597년 연경에서 만나 필담을 나누고 시를 주고받은 사실이 나오면서 사료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의 기록에 따르면 지금까지는 풍칵콴이 이수광을 만나 필담을 나눴다는 기록은 양국의 사료를 통해 검증이 됐지만, 베트남 떠이선 왕조에서 레꾸이돈 등이 청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1760년 12월 조선의 사신 홍계희, 조영진, 이휘중을 만나 화선지, 부채, 약재 등 특산물을 서로 주고받고 시를 지어 교환하였다는 것은 우리 측 자료로만 남아있었다. 

 

판후이익 선생의 초상화. 오른쪽 사진 하단에 판후이익의 출생연도가 1750년으로 잘못 표기돼 있다. 출생연도는 1751년이다. [사진=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

조선과 베트남 봉건 왕조에서 양국이 외교적 교류를 한 것은 사실상 떠이선 왕조가 근현대 이전 우리와 마지막으로 교류한 베트남 왕조로 인식되고 있다. 베트남은 18세기 이후 응우옌(阮) 왕조와 프랑스 영향과 식민지배기를 보내면서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이탈했고 인도차이나 전쟁 등을 통해 관련 자료가 상당히 소실됐다.

학계에서는 이번 판후이익 선생의 한시 발견이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사료의 발굴이라는 평가다. 박수밀 한양대 교수는 “그간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 선생이 연경에서 베트남 사신에게 준 한시 2편만 존재했지만, 이번 발견을 통해 이제야 함께 두 짝이 마치 젓가락처럼 맞추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권혁래 용인대 교수(열상고전연구회 회장)는 “한·베수교 30주년을 맞이해 기념비적 발견이 이뤄졌다”며 “이를 통해 같은 문화권이던 양국의 동등한 위치를 설명하고 양국 문화에 대해 이해하는 관점의 폭을 더욱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판후이익은 베트남 외교사에서 크게 추앙받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떠이선 왕조 시대 이른바 가짜왕을 이용한 뛰어난 외교술로 18세기 당시 일촉즉발로 치닫는 청나라와의 전쟁을 막았다. 또 수려한 문장으로 생애 740편이나 되는 문학작품을 남겨 베트남 문학사에서도 문필가로도 유명하다.

안경환 이사장은 “판후이익 선생은 우리의 서희와도 비견될 수 있는 베트남 외교의 보배로 통하는 인물”이라며 “그의 대(對)중국 외교 성과는 작금의 대중국 외교에 타산지석이 될 수 있고 또 지속적인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판후이익이 1790년 중국 청나라 연경을 방문하고 쓴 기행문 '성사기행(星槎紀行)'의 한 부분에 '조선국 사신에게 보내는 시'가 있다. 이 한시는 베트남 고문서연구원이 보유한 조선과의 필담 내용을 담은 기록물에 담겨 있다. [사진=안경환 이사장]

 

판후이익 선생이 조선국 사신에게 준 한시를 서예가 중허 홍동의 선생이 서예화했다. 한·베경제문화협회(코베카, KOVECA)는 오는 3월 22일 열리는 판후이익 선생 서거 2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이 판본을 판씨 종중에 기증할 예정이다. [사진=안경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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