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금융 허브로 남을 수 있을까?...제로 코로나 정책에 글로벌 기업들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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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기자
입력 2022-02-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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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고수해 왔던 ‘제로 코로나’ 정책이 홍콩의 글로벌 금융 허브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홍콩 정부는 그간 중국 본토와 같이 코로나 확진자를 제로(0)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방역 대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가 글로벌 대기업들의 사업 운영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홍콩은 지난달 8일부터 코로나 신규 변이인 오미크론을 막기 위해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등 8개국에서 오는 항공편을 금지하고, 해외 입국자에 대해 2주 이상 격리를 요구하는 등 단호한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업체들은 홍콩의 강력한 제로 코로나 정책이 유지된다면 홍콩 외에 다른 국가에서 사업을 이어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이미 임직원 일부를 싱가포르로 재배치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싱가포르로 임직원을 재배치하는 계획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이라면서도 홍콩 정부가 계속해서 해외 입국자들에 대해 강력한 방역 대책을 유지한다면 일시적 재배치가 아닌 영구적 재배치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웰스파고 역시 아시아 내 지역본부를 홍콩 대신 싱가포르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지난해 알려졌다.
 
지난 2019년 홍콩 전역의 민주화 시위 이후 홍콩 내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며 홍콩이 앞으로도 자유로운 금융 허브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커져 왔다. 이후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홍콩이 강력한 방역 대책을 유지하자 아시아 지역 내 자유로운 해외 출장을 위해 홍콩에 본부를 두었던 글로벌 기업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에 외국인 노동자와 다국적 기업들이 창출했던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대체로 증가세를 보여 온 홍콩 인구는 △2018년 745만1000명 △2019년 750만7400명 △2020년 748만1800명으로 2019년 이후에는 오히려 감소했다. 홍콩에 위치한 글로벌 기업들의 지역본부 수 역시 줄어들고 있다. 홍콩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홍콩에 지역본부를 세운 미국 기업들의 숫자는 △2018년 290개 △2019년 278개 △2020년 282개 △2021년 254개를 기록했다.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에 본사를 두고 홍콩에 지사를 둔 기업들의 수 역시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전인 2019년에 비하면 2021년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기업들이 홍콩을 떠나며 인재 유출 역시 가속화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자문업체인 KPMG는 올해 1월 홍콩 은행업계 전망 보고서를 내놓으며 2021년 하반기부터 홍콩 내 금융 관련 인력이 큰 폭으로 줄었다고 언급했다. 폴 맥셔프리 KPMG 금융 서비스부문 파트너는 보고서 서문에서 고객사들이 금융 서비스 관련 전문 인력을 구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인력을 유치하고 유지하는 것이 홍콩 내 은행들에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21일 홍콩 정부 자료를 인용해 금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비자 발급 건수가 2018년에 비해 2020년에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홍콩에 지역본부를 둔 글로벌 기업들은 홍콩의 엄격한 코로나 제재가 사업에 지장을 미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홍콩 주재 미국 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2년 기업 심리 조사 보고서’에서 조사에 응답한 260여 명 중 60%는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느냐'(복수 응답)는 질문에 홍콩의 여행 제재가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 간 관계와 코로나 확산이 사업에 가장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고 응답한 조사 대상자 비율이 각각 44%와 40%를 기록해 20%포인트에 달하는 큰 격차를 보였다. 그러나 이번 조사는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제재가 강화되기 전인 지난해 9월 10일부터 10월 8일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해졌을 수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 조사에 참여한 기업들은 홍콩 내 코로나 확진자를 줄이기 위한 강력한 방역 대책 중에서도 특히 여행 제재가 신규 투자를 저해하는 등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코로나가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복수 응답)는 질문에서 전체의 44%는 '여행 제재로 홍콩 이외의 지역에 위치한 사업체들의 영업에 심각한 차질을 빚었다'고 답했다. '코로나로 인해 신규 투자를 미뤘다'는 비율도 32%에 달했으며, '기업 중역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 비율 역시 30% 수준이었다. 홍콩 정부가 강력한 코로나 방역 대책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홍콩을 떠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상당수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코로나 관련 제재가 홍콩에서의 사업 유지 계획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기업의 비율은 26%를, 개인의 비율은 44%를 기록했다.
 
이렇듯 홍콩이 전 세계 금융 허브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타라 조셉 홍콩 주재 미국 상공회의소 의장은 많은 기업들이 홍콩 정부가 금융 허브 자리가 위태로워지는 것에 대해 충분히 우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난달 19일 블룸버그TV와 인터뷰하면서 밝혔다. 그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언급했지만 정부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유럽 상공회의소 역시 홍콩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계속된다면 홍콩 내 외국인 노동자들과 기업들의 ‘대탈출’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상공회의소는 보고서 초안을 통해 중국의 14억 인구가 백신을 접종한 후에 홍콩이 현재의 강력한 제재 조치를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제재가 완화되려면 2023년 말이나 2024년 초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홍콩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외국인들의 ‘대탈출(exodus)’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는 홍콩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다국적 기업들에 홍콩을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 외신은 지난달 26일 유럽 상공회의소가 발표할 아직 공개되지 않은 보고서 초안을 입수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홍콩 정부는 이러한 발표가 이어지자 코로나 방역 대책을 완화하는 등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여론을 달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달 27일 브리핑을 통해 오는 15일부터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들에 대한 호텔 격리 기간을 기존의 21일에서 14일로 줄이고, 대신 7일간 입국자 스스로가 모니터링을 하도록 제재를 완화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등 8개국에 대해 입국을 제한하는 조치는 코로나 확산 상황을 고려해 적어도 18일까지는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람 장관은 이와 관련해 "격리 기간을 14일로 줄이는 것이 7일간 격리 또는 무격리를 원하는 홍콩 내 기업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1월 말부터 홍콩 내 오미크론 변이가 빠르게 퍼지고 있어 현재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어 시장은 향방을 주목하고 있다. 데이비드 오웬스 홍콩대학교 명예 조교수는 “이미 오미크론 변이라는 이름의 말은 날뛰고 있으며, 홍콩 정부는 말의 고삐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전염성이 너무 강하다”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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