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출신 길종갑 화가 개인전 ‘이상한 풍경’ 화제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화천)박종석 기자
입력 2021-12-27 15:59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박응주 미술비평가 “시공간의 차이를 뛰어넘는 작가 특유의 세태 비판” 절묘

  • 관람객 “생명력 있는 풍경과 병든 풍경의 공존을 그림으로 써 내린 대서사시”

 

길종갑 화가[사진=박종석 기자]

지난 24일부터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화천 출신 길종갑 화가의 개인전 ‘이상한 풍경(strange landscape)’이 관심을 끌고 있다.
 
길 화가는 고향인 강원 화천군 사내면에 터를 잡고 특유의 강렬한 붉은 빛의 색채로 주변 풍경을 부감법으로 묘사하며 곡운구곡(谷雲九曲) 작가로 불린다. 2011년 이후 10년 만에 열린 이번 개인전은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길 화가는 4.3 미술제, 평화미술제, 광주 40주기 기념전 등에 꾸준히 작품을 전시하며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 왔다. 이번 전시의 화두는 ‘환경’이다. 90년대 초창기 작업으로부터 9m가 넘는 2021년 신작 ‘이상한 풍경’에 이르기까지 자연 풍경이 공존하는 현실을 대서사시로 써 내려갔다.
 
전시장에서 만난 길 화가는 “인간의 과도한 개발 욕망은 삶의 양과 질을 무한대로 만들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했다”며 전시회를 통해 “우리의 자연이 무섭도록 또 끝없는 팽창으로 곧 사라질 수 있다는 진실을 화면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언뜻 보면 ‘이발소 그림’인 듯, 찬란한 색조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채색된 관념산수인 양 고즈넉해지는 순간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런데 잘 보면 그것은 원래의 곡운구곡의 전설이기도 한 1668년의 김수증(강원도 평강 감사)이 당시 화가 조세걸에게 그리게 한 ‘곡운구곡도’처럼 설경 산수이다. 대서사시는 실경일 뿐만 아니라 갓을 쓴 선비가 길을 지나가며 현대의 관광객이 관광투어를 하고 있다.
 
또한 쓱 보면 지나치기 쉬운 화면 한쪽에는 산을 파헤치는 공사가 벌어지거나 이미 완공된 터널과 고가도로를 통해 승용차가 질주한다. 이는 현대의 과도한 개발 욕망을 무섭도록 질타하는 고발이 깔려있다. 그렇지만 화면 속의 대자연에 홀린 관람객은 이를 ‘환경 포스터’로 여기지 않는다.
 
길 화가의 곡운구곡도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만추의 강원도 가을 산악의 아름다운 실경과 거의 눈에 띄지 않아 감당할 만한 화면 귀퉁이의 약간 불편한 장면들 그 사이에 있다.
 

풍속도[사진=춘천문화예술회관]

실경에서 보일 리가 없는 강 물줄기를 끌어온 ‘풍속도’와 시선의 장소로부터 최소한 30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음 직한 먼 거리의 원경에 보이는 가로와 건물을 그려낸 ‘수피령’이 그러하다. 아예 ‘청옥협’은 흡사 푸른 계곡의 청옥빛 물속에서는 노니는 물고기라도 그릴 양이다. 왜 길 화가는 그토록 ‘과도한 촉수’를 온 세상에 대해 들이댈까?
 
박응주 미술비평가는 이를 두고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을 인용하여 길 작가의 작품을 해석하고 있다. 시공간의 차이를 뛰어넘는 작가 특유의 배체방식과 환상이면서도 현실적인 묘사를 통한 절묘한 세태 비판적인 요소 때문이다.
 
박 비평가는 “길 화가는 우선, 시간의 흐름을 인정치 않겠다는 듯, 또한 공간적 구분도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다는 듯 그만의 법칙성 위에 대상을 재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환상이면서도 현실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어 “현실이 꿈처럼 묘사되거나 꿈과 환상이 현실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사실이 아닌 세상을 휘감는 어떤 이치나 영성을 그리려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라며 “그의 그림 안에서 사람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의 신분과 연령대의 고만한 삶을 열심히 충실하게 수행하여 살아나가고 자연 또한 자신의 생을 살아가느라 바쁘다”고 설명했다.
 
박 비평가의 해석처럼 길 화가의 소재인 산세와 수목은 웅성거리며 서로를 반조하며 인간의 세계와 ‘맞는 짝’처럼 조응한다. 그의 수목이 유난히 밝은 원색으로 반짝이는 이유다. 이토록 무심하고 덧없는 소재라는 것. 그에게 있어 이 덧없는 소재는 ‘결정적인 미’나 ‘결정적 사건’이다.
 
길 화가는 ‘개발예정지의 봄’을 올올이 그리면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산은 봄을 맞아 새싹을 움 틔우기 시작하지만 가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큰 화폭을 이토록 아름다운 폐허로 채워나갔을 심정이 미술의 운명적 역설일지도 모른다.
 
길 화가는 지난해부터 대폭 그림을 시작했다. ‘이상한 풍경’ 연작들이다. 뭔가 미학적 목표를 크고 막대하게 가져가 통증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음 직하다. 그것이 환기하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했던 자연의 ‘통증’이다.
 
‘이상한 풍경5 청옥협’을 보면 여전히 고대인이 등장해 바위에 글씨를 쓰고 현대인은 사진을 찍는다. 또 산을 파헤치는 공사는 진행되고 산을 뚫은 터널로 차들은 내달리지만 수영을 즐긴다. 결국 그 고혹적인 색채로 빛나던 산들은 어느 날 폐허지, 민둥산으로 일변했고 아홉 곡의 아름답던 풍광들은 ‘이상한 풍경1’처럼 상처로 찢겨나가고야 말았다.
 
그림은 재난을 직시해야겠다는 어떤 조바심까지도 느끼고 있다. ‘산불’ 화면이 산불의 폐허지에서 폭력적으로 일변한 이유다. 또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이 한눈에 보이는 ‘이상한 풍경2’의 산하도 병들어 있다. ‘이상한 풍경3’의 산하는 더욱 암울하다. 옛사람들이 싱싱한 물고기를 잡아 포구로 운반하던 때를 떠올리듯 화면 중앙에 등장해 있지만, 강은 폐수와 쓰레기로 죽어가는 모양을 물새의 혼령이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다. 여기에 공장의 매연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도시를 암흑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박 비평가는 “길 화가는 현재 그림의 역설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고 단정을 지었다. 화폭은 상처로 마음껏 유린되어 있지만 이를 묘사하는 색채와 붓질의 조화, 경쾌하리만치 기민한 속도감은 ‘미적 쾌’를 충분히 유발하고 있어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박 비평가는 “그는 당분간 이 역설과 함께 뒹굴며 장편 소설을 써나갈 듯하다”면서 “그가 사는 강원 땅의 신화와 민담, 무의식, 상징과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