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지역의 좌파 강세가 더욱 뚜렷해졌다. 최근 멕시코, 아르헨티나, 페루 등에 이어 칠레에서도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특히, '반(反) 신자유주의'를 외치는 학생운동 지도자 출신의 35세 대통령이 탄생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칠레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좌파연합 정당 '존엄성을 지지하다(Apruebo Dignidad·AD)'의 가브리엘 보리치 후보가 56%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 역시 약 56% 수준으로 2012년 칠레에서 투표 의무화가 취소된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우파 성향의 현 정권은 이번 결선 투표율을 낮추기 위해 암묵적으로 시민들의 투표를 방해하는 공작을 진행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앞서 지난달 치러진 1차 투표에선 경쟁 후보인 우파 성향의 공화당 소속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와 보리치는 각각 27.9%와 25.8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다만, 과반 이상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 투표로 이어졌다. 이번 결선 투표에서 카스트 후보는 44%의 지지를 얻어 10%p(포인트) 이상 격차가 났다. 일찌감치 승패가 갈리자 카스트 후보는 패배를 인정하고, 보리치 후보에게 당선 축하 전화를 건넸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 당선자. [사진=AP·연합뉴스]


1986년생인 보리치 후보는 내년 3월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취임해 4년간 집권한다. 크로아티아계 아버지와 스페인 카탈루냐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보리치 후보는 칠레 남단 푼타아레나스 출신이다. 

2004년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로 상경했고, 칠레대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2011년 무상 교육 확대 등 교육개혁을 요구한 대규모 학생시위에서 정치에 두각을 드러냈다. 시위가 장기간 이어짐에도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며 학생운동 세력을 주도했던 탓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3년에는 자신의 고향을 지역구 연방 하원의원 선거(임기 2014년 3월~2018년 3월)에 당선했고, 2017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야권이었던 좌파 정당 세력은 연합 경선을 치렀는데, 보리치는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였던 칠레공산당 소속 다니엘 하두에 칠레 산티아고 레콜레타 구청장을 꺾었다.

지난 7월 당시 경선 승리 후 보리치 후보는 "(과거) 칠레가 신자유주의의 요람이었다면 이젠 신자유주의의 무덤이 될 것"이라면서 "칠레를 변화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연설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과거 1975년 칠레 정부가 '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을 잡기 위해 세계 최초로 공공지출을 축소하고 소비재의 가격을 규제하는 신자유주의 방침을 채택했던 역사를 겨냥한 것이다. 

특히, 1차 투표까지도 열세였던 보리치 후보가 결선에서 역전승을 거둔 것은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에서 불고 있는 좌파 정치의 부활 조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쟁 후보인 카스트 후보가 극우 성향으로 과거 칠레의 독재 정권이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정권(1973∼1990년) 시절을 옹호한 데다, 2019년 칠레의 대규모 시위 이후 시민사회에는 우파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이 커진 상태다. 

당시 칠레 경제가 경기 침체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와중에 세바스티안 피녜라 현 칠레 정권은 각종 복지 정책을 삭감했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2019년 산티아고시의 지하철 요금 인상과 맞물리며 교육·의료·연금 등 사회 시스템 전반의 불평등·양극화 해결 촉구 시위로 번졌다. 

이에 따라, 내년 3월 들어서는 보리치 신임 정권은 칠레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 요구에 부응할 것으로 보인다. 보리치 정권이 가장 최우선으로 맞을 일은 피노체트 군부정권 시절 제정된 현행 헌법의 폐기와 새 헌법 제정이다. 현재 연방의회는 새 헌법 초안을 작성 중이며, 새 정권은 이에 대한 승인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치러야 한다. 아울러, 보리치 후보는 공약으로 민영화한 연금 제도(AFP) 폐지와 부자 증세 등을 통한 보편적 기초연금(Pension Basica Universal), 보편적 건강보험(Sistema Universal de salud) 등의 도입도 내건 상태다. 

다만, 보리치 후보의 정치·국정 경험 부족과 좌파연합의 분열 등은 향후 위험 요소로 꼽힌다. 현재 칠레 연방의원에는 뚜렷한 단일 과반 정당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보리치 후보는 기존의 정치권과 차별화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좌파연합에서도 최대 좌파 정당인 칠레공산당과도 일부 거리를 두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밤 가브리엘 보리치의 대통령 당선을 기념하기 위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중심가에 나온 시민들. 약 20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이날 밤 거리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AP·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실시간 인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페이지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