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철의 AI 인문학] ⑦ 프로그램 가능한 로봇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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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철 휴센텍 대표이사
입력 2021-11-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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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륵~"
손바닥만 한 아름다운 기계다. 우측 끝에 있는 기계식 스위치를 누르니 막대기같이 생긴 팔이 나왔다. 반대편에 장착되어 있는 펜을 꺼내 기계 팔 끝에 있는 구멍에 끼웠다. 마지막으로 기계 표면에 있는 은빛 스위치를 눌렀다. 
"스걱, 스걱, 스스걱"
기계 밑에 있는 종이에 서명이 써진다. 필기체로 "Jaquet Droz"…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자케 드로'가 창립 250주년을 맞아 발매한 '사이닝 머신'의 데모 영상이다. 사이닝 머신은 이름 그대로 사용자의 서명을 대필해주는 장치다. 개인 주문방식으로 제작되는 사이닝 머신의 가격은 4억원 정도.

레버를 당기면 동력이 충전된다. 네 자리 비번을 입력하면 펜을 지지할 막대기 모양의 로봇 팔이 나온다. 팔 끝의 둥그런 홈에 펜을 꽂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기계가 스스로 움직이며 사용자의 서명을 재현해낸다.

18세기 스위스, 스페인, 영국에서 활동하던 스위스 출신의 천재 시계 제작자 피에르 자케 드로(Pierre Jaquet Droz, 1721~1790)는 아름다운 시계뿐 아니라 정교한 오토마톤으로 명성을 떨쳤다. 1775년 그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에게 바친 작가, 화가, 음악가 모양 오토마톤은 스위스 뇌샤텔(Neuchâtel) 박물관에서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자케 드로의 '필기사' [사진=자케 드로 유튜브 영상 갈무리]


드로의 대표작은 필기사(The Writer)라고 이름을 붙인 글을 쓰는 인형이다. 600개가 넘는 정밀한 부품으로 만들어진 필기사는 태엽의 힘으로 움직이는 디스크의 회전운동을 전환해서 글자를 적는다. 글자를 적으면서 로봇의 눈이 글자를 따라 움직이고, 펜이 잉크를 찍을 땐 고개도 돌아간다.

이 로봇을 본 사람들은 무섭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살아 움직인다고 했다. 필기사를 보면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政弘) 교수의,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오히려 불쾌함이 증가한다"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에 동의하게 된다.

이 로봇은 손을 까닥이며 "Les automates Jaquet Droz a Neuchâtel"이라는 문장을 쓸 수 있다. 연필의 완급을 조절해 선에 강약을 준다. 입김도 분다. 당시엔 연필심이 무뎌서 검은 가루가 날렸는데 이를 털어낼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다.

이 필기 로봇이 인공지능(AI) 역사의 한 꼭지에 등장해야 하는 이유는 이 로봇이 최초로 "프로그램가능(Programmable)"이란 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오토마타는 한 가지 행위만 수행하는, 프로그램이 없는 기계 장치였다. 드로의 글씨 쓰는 로봇은 기계 장치의 세팅을 변경해 어떤 글이든 쓸 수 있는, 소위 프로그램한 대로 움직이는 오토마타다. 로봇 안에는 메모리 역할을 하는 탭(tab)을 세팅할 수 있는 입력 장치와 읽기 전용 프로그램인 40개의 캠(cam)이 있다. 입력장치를 바꾸면 문장이나 그림, 음악 등을 바꿀 수 있다.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 봐도 아날로그 기계장치가 이처럼 글 쓰는 작업과 인형의 미세한 표정을 조화롭게 구현한다는 것은 고난도 기술이다. 드로가 그런 기술을 250년 전에 개발한 배경은 무엇일까?

18세기 말, 유럽은 기계만능의 시대였고, 특히, 스위스에선 시계 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따라서 시계장인들의 경쟁은 날로 심화되었다. 드로는 유명한 시계 장인이었지만 그 역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해서, 생각해낸 홍보전략이 시계보다 더 복잡한 오토마타를 만들어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피아노 치는 음악가(The Musicia), 그림 그리는 도안가(The Draughtsman), 그리고 글씨 쓰는 필기사까지 세 종류의 자동 인형을 차례로 히트시켰다. 드로는 당대 최고의 시계 장인이자 자동로봇 전문가가 된 것이다. 드로는 1775년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앞에서 오토마타를 시연하기도 했으며, 유럽, 중국, 인도, 일본 등의 왕들과 황제들을 매료시켰다. 드로가 만든 고가의 작품은 1만개 이상 판매되었다.

오늘날 자케 드로의 시계에는 초기의 오토마타 장인의 터치가 살아있는데, 손목시계 안에 새, 꽃 등이 움직이거나 소리를 낸다.
 
프랑켄슈타인은 스카이넷의 예고편이었을까?
"혹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을 만들어 인간성, 자비와 공감능력, 감성을 잃고 있지 않습니까?"

2014년 세계경제포럼에서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는 요즘,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나온 파올로 갈로(Paolo Gallo)의 개막 연설 중 일부이다. 사실, 이 연설은 미래에 출현할 가능성이 높은 슈퍼 AI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기술이 큰 재앙이 되어 우리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메리 셸리(Mary Shelly, 1797~1851)였다. 그녀의 우려는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년)'을 통해 나왔다.

 

1931년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사진=위키피디아]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동물과 인간의 사체들을 조합하고 전기충격을 가해서 신장 8피트(244㎝)의 괴물인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괴물은 이성을 가질 정도로 걸작.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괴물은 추악한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 대한 증오심으로 빅터의 동생과 아내, 빅터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자신도 스스로 산화하는 길을 택한다.

오늘날 프랑켄슈타인의 스토리는 더 이상 허구가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다. 유전자기술, 장기이식, 성형수술을 통해 새로운 인류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으며, 동물 복제와 뇌 이식이 구체화되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등장으로 AI가 특이점을 넘어가는 시기는 날로 빨라지고 있으며, 기계의 판단에 의해 인간이 행동하는 기계우위시대가 가속화되고 있다.

과연 미래의 로봇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스스로를 혐오하게 될까? 아니면, 자신이 괴물이라고 스스로 자인하고 그를 만든 인간을 증오하게 될까? 우리는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AI 챗봇 '테이(Tay)'를 만든 적이 있다. 테이는 트위터에 떠도는 말을 학습하고 성장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런데, 장난기 많은 일부 트위터 이용자들이 테이에게 욕설과 인종차별, 성적인 이야기를 가르치면서 이 AI는 불과 몇 시간 만에 패륜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테이는 가르쳐준 대로 학습했을 뿐이다. 

테이의 데뷔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 해프닝은 AI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한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AI가 이런 우려보다는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더욱 연구를 해야 하는 분야가 AI 인문학이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편향성을 바로잡고, 윤리 의식과 보편적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떠오른다. 슈퍼 AI가 자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그의 창조주 인간을 멸절하려 한다는 스토리. 우리는 이런 괴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산적 창의’ 시대를 연 빈캘의 컴포늄
2018년, AI화가가 그린 그림이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5억에 판매되었다. 에드몽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라는 제목의 초상화이다. 이 그림은 파리의 프로그래머 그룹 '오비우스(Obvious)'가 제작했다. 작품에 사용된 데이터는 14~20세기에 그려진 초상화 1만5000점이다. 이를 두고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AI가 예술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전망했고 오비우스는 지금 NFT시장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있다. 

 

5억에 팔린 AI화가의 작품 ‘에드몽 드 벨라미' [사진=위키피디아]


이처럼 AI가 우리의 삶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고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분야가 바로 예술이다. AI가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며, 작곡도 한다. 다수의 예술가들은 AI가 인간의 창작 세계를 넓히는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AI 연구분야 중 창의와 정확성을 함께 보는 연구가 있다. 바로 '계산적 창의(Computational Creativity)'이다. 정확성을 기반으로 하는 '계산'과 논리적 대척점에 있는 '창의'가 하나로 묶인 난해한 연구다. 이 연구는 인지심리학과 철학, 예술이 만나는 접점을 파고든다. 인간의 창의성을 컴퓨터를 활용해 증강하거나 창의를 시뮬레이션해서 다른 차원의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의 바람은 AI의 창의가 인간의 상상력을 높이도록 돕는 것이다.

이 같은 계산적 창의를 처음 시도한 사람은 독일의 발명가 빈켈(Dietrich Nikolaus Winkel, 1777~1826)이다. 그는 1821년 '컴포늄'이란 작곡기계를 발명했다. 동시에 회전하는 두 개의 배럴과 룰렛 방식의 휠로 구성된 이 기계는 끊임없이 새로운 작곡을 할 수 있다. 지금의 AI 창작과 유사하다. 우리는 창의성이 형식화되지 않은 새로운 시도에서 발휘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계산적 창의를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초소형 드론을 상상한 ‘주홍글씨’ 작가
아름다운 나비들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들은 생명체가 아니다. 드론이다. 2015년 독일의 페스토(Festo)사는 초소형 드론, 로봇 나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드론의 무게는 30그램 정도, 양 날개를 합한 길이는 50㎝가량 된다. 이 드론 날개의 중심에는 동력원인 두 개의 초소형 모터와 배터리, 그리고 비행을 조종하는 적외선 마커가 자리하고 있다. 적외선을 이용, 집단 비행을 해도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로봇 나비는 170여년 전 미국 단편 소설에 이미 등장한 바 있다. 1844년 주홍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이 발표한 '미를 추구한 예술가(The Artist of the Beautiful)'에는 로봇 나비가 등장한다.

시계가게에서 일하는 천재 시계 기술자 오웬은 가게주인의 딸 애니를 짝사랑했다. 감수성이 높은 오웬은 언제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계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꿈을 키워왔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신비로운 나비의 날갯짓. 마침내, 오웬은 정밀한 시계기술을 이용해 기계식으로 날아다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나비는 애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창조물은 평범한 이웃 아이의 손에서 으깨어져 버린다. 이 창조물의 본질 가치인 아름다움과 감동의 표현이 어이없게 폐기된 것이다. 호손은 이 작품을 통해 신이 만든 완벽한 육체 안에 비루한 정신을 가지고 사는 인간의 본 모습을 신랄하게 표현했다.

오웬의 로봇나비와 그들의 현신체인 드론 사이에는 섬뜩한 평행이론이 존재한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상상하며 나는 로봇을 만들었지만, 교만에 빠진 일부 국가들은 이를 인간 사냥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도구로 전락하면서 공포의 전령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호손은 일찌감치 암시한 것이다.

 

강시철 휴센텍 대표이사 [사진=강시철 휴센텍 대표 제공]

강시철 휴센텍 대표이사 kangshich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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