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예상치 못한 종목에서 메달을 선사하며 무더위에 지친 우리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었던 올림픽이 끝났다. 1년이 미루어지며 컨디션 조절도 쉽지 않았을 텐데, 더군다나 역대급 무더위 속에 관중의 응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싸워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올림픽이라는 스포츠가 주는 기쁨과 감동도 잠시, 입국 기자회견에서부터 갑질로 논란을 빚고, 이들의 땀과 노력보다는 결과에만 집중하는 우리의 변화하지 않는 행태가 조금은 아쉽다.

지금도 기억나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역사시간에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십간(十干)이라는 연도별 순서를 위한 것이었는데, 커서 보니 이는 계약관계에 있어 힘의 우열에 대한 부분이더라. 갑과 을, 물론 사람의 위치에 따라 병, 정 아니면 더 아래에 위치할 수 있지만, 갑을 제외하고는 이들은 모두 약자의 이미지이다. 계약의 수행자, 또는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 속에 사회는 이러한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물론 이에 동의한다. 갑(甲)은 자신의 생각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생각대로 계약이나 절대적 지위 등을 통해 나의 목줄을 쥐고 있는 그런 존재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기에 갑질 논란 속에서 언제나 을의 편에서 사건을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경영학은 일반적으로 갑인 회사의 논리에 집중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올림픽 기간 이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있었다.

응원의 원조는 치맥이 아니겠는가? 자주 주문하던 치킨집에 배달을 요청하니 "많이 밀려 포장만 가능해 미안하다"는 사장님 말씀에 가게로 갔다. 열심히 닭을 튀기고 계신 사장님께 올림픽이라 바쁘신가 했더니 알바가 자기 놀러간다고 그만두었단다. 코로나 시국인데, 그리고 아르바이트도 엄연한 계약인데, 오늘 갑자기 연락을 받아 다른 사람을 구하지도 못하고 일손이 달려 미안하다는데, 사장님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 그동안 일한 것을 계산해 달라는 알바생의 문자였다.

통보한 시간까지 안 보내주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한단다. 듣고 있던 내가 더 황당해 하고 있는데,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다는 사장님 말씀에 '이건 갑질이 아닌 을(乙)질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관계가 형성되면서 돈을 지불하며 일을 시키는 갑이 아무래도 을보다 힘이 있으니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또한, 드라마 속에서도 고등학생들이 알바하면서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고 결국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들을 봐왔기에 이들을 방어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의 행태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의 시선이 을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게 된다면, 결국 갑의 위치에 있는 선량한 피해자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지금껏 피해자는 언제나 을이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에 큰 변화가 생겼다.
솔직히 '라떼는 말이야~'라는 것도 보는 시선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워라밸은커녕 회사에 충성하며 휴가도 없이 가족보다 회사를 우선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다. 과거 너무 일에 눌려 살아왔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시대가 더욱 바람직한 면도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우리가 소위 꼰대나 갑과 을이라는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본원적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는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꼰대에 대한 내용이 세대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나타난다. 한번은 수업 중, 개인주의와 사생활을 중시하는 소위 90년대생 신입들에 대한 하소연이 줄지어 나왔던 적이 있다. 조금이라도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소리라도 지르면 감사실에 이야기하거나 SNS를 통해 이를 실어나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50~60대도 아닌 80년대생들이라는 데 웃음이 난다.

또 하나, SNS에 올려 이야기를 하더라도 주작은 하지 말자. 주작의 문제는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감추고 SNS에 올린 내용이 익명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으면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 일이라 착각하게 되는 인지부조화 현상을 야기한다. 내용의 본질을 알게 되는 순간 자신에게 동조하던 시선이 악몽으로 바뀔 것을 알지 못한 채 피해자인 척 행동하며 주변 사람들을 부추기게 된다. 이들의 문제는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SNS를 통해 아니라고 하여도 이미 상황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그제서야 가해자가 되어 후회하고 반성해도 소용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갑이 될 수도 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나? 분명 학교 다니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를 들어봤을 텐데, 본인 역시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꼰대라서 그렇다고 이야기하실 분들도 계실 것이라 항상 조심스럽다.

최근 일이 많아 머리 정리를 못하다 오랜만에 자주 다니던 미용실을 찾았더니 원장님 혼자 일을 하고 계셨다. 원래 함께 일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원장님 혼자 머리 손질하랴, 머리 감기랴, 계산하랴, 전화에 예약받는 모습이 너무도 바빠 보이셨다. 같이 일하던 분은 휴가갔냐 물으니 코로나로 상황이 좋지 않아 혼자 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동안 어떻게든 버텨보았는데 더 이상은 유지하기 힘들다면서···. 사실 두 명이서 일하던 이 미용실은 갑과 을이라는 분위기보다는, 물론 제3자의 입장이지만, 동료와 같은 느낌이었기에 원장님의 말씀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있을 때는 모르지만 없으면 아쉬움이 더욱 커진다는 뜻의 속담이다. 더운 여름 추운 겨울이 더욱 그립듯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알고 찾게 된다는 것이다. 본인을 꼰대라 느끼는 이들이여, 자신의 신입 시절은 기억나는가?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때 선배들이 했던 잔소리와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 서로를 갑과 을로 구분을 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로 생각한다면 이러한 갈등은 조금은 덜할 수 있지 않을까?

말복이 끝나고 광복절이 지나면 이제 가을의 문턱으로 넘어서는 시점이라 조금은 냉정한 시선에서 갑과 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우리네 사회가 갑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용납되기 어렵지만, 혹시라도 갑의 위치에 있는 선량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서로를 구분짓기보다는 우리 모두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아름다운 동행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영정보학과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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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2 JAN 5-8 LAS VEG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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