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잊은 中]백두산 정상서 목격한 저급한 우월감

베이징=이재호 특파원입력 : 2021-07-28 06:00
코로나 탈출 믿음에 마스크 벗어던져 델타변이 확산 속 휴가지는 인산인해 수백명 엉킨 파도풀, 방역의식 저멀리 위기극복 자부심, 체제 충성으로 변질 방역준수 비아냥, 주변국 혐오 발언도

북·중 접경인 창바이산 정상 천지에 설치된 표지석. 조선(북한)이라고 쓰인 쪽을 배경으로 많은 중국인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이재호 기자]


지난 21일 중국 지린성의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의 중국식 명칭) 정상으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섰다.

오전 9시를 갓 넘은 시간이었지만 이미 수백명의 입산객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였다. 산기슭인데도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돌았다. 마스크 안으로 땀이 계속 흘러들었다.

뜻밖에도 주위의 중국인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벗은 채였다. 방역과 개인 안전을 위한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안내 방송만 공허하게 반복됐다.

앞에 선 남성이 맨 얼굴로 쉼 없이 떠들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주변 사람들을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기자를 흘깃 쳐다보는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던 한 여성이 끼어들었다.

외국인이냐고 묻기에 한국인이라고 답했더니 그럴 줄 알았다며 "중국에는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린성 퉁화시 창바이산 시찰단'이라고 적힌 붉은색 조끼를 입고 뒤에 서 있던 또 다른 남성이 기자를 툭툭 쳤다.

그는 "지난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 행사를 봤는가. 4만명이 모였는데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며 "중국이 코로나19를 완전히 극복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의 훈계가 끝나자 긴 줄의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최근 중국에는 이 같은 모습은 그다지 낯선 광경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났다는 인식이 일상생활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린성 창바이산 인근 완다리조트 내의 대형 워터파크. 수백명의 인파가 별다른 방역 조치 없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이재호 기자]


◆"이 넓은 땅에 코로나가 퍼져 봤자"

최근 중국에서도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 중이다.

장쑤성 난징의 루커우공항을 통해 유입된 바이러스가 지역사회 감염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일주일 새 난징에서는 80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왔고 25~26일에는 이틀 연속 30명 이상의 확진자가 보고됐다.

난징에서 퍼져 나간 바이러스가 가깝게는 동북 지역의 랴오닝성에서 멀게는 1500㎞ 이상 떨어진 서부의 쓰촨성까지 도달했다.

인구 930만명이 넘는 난징의 모든 주택 단지가 봉쇄됐고, 외부와 연결된 대중교통까지 멈춰 섰다.

코로나19 재확산을 염려할 만한 상황이지만 긴장하고 있는 건 현지 방역 당국과 주민들뿐이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장쑤성의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안다 해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지난달 서남부 윈난성에서 확진자가 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자와 만난 한 대학 교수는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 문제와 관련해 '국부적'이라는 표현을 수차례 반복했다.

교수는 "한국에서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넘는다는데 중국은 아무리 많아야 60~70명"이라며 "이렇게 넓은 나라에서 그 정도의 감염은 국부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경제학자인 그는 "중국의 상반기 경제 성장률이 12.7%에 달했다는 건 코로나19를 거의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앞으로도 발병과 진화가 지속되겠지만 경제·사회적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워터파크 '인산인해'…무뎌진 방역의식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중국에서는 대형 빌딩이나 공항, 기차역, 관광지 등 대중이 밀집하는 장소에 출입할 때 건강 코드를 제시해야 한다.

안전지역에서 최소 2주 이상 머물렀기에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없다는 증빙이다.

거주지를 벗어나 다른 곳을 방문하면 그 지역의 건강 코드를 새로 발급 받아야 했는데, 올 들어 이 조치가 완화됐다.

기자가 지난 20일 산둥성 칭다오의 류팅공항과 21일 창바이산공항에 내렸을 때도 베이징 건강 코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공항이나 기차역에서 해당지역의 건강 코드를 발급 받기 위해 줄을 서던 불편은 더 이상 없다.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돼 있던 건강 코드를 내보이면 방역 요원들도 별말 없이 '통과'를 외친다.

그나마 다중 밀집시설에서는 규정상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벗어 버린다.

칭다오의 해변이나 창바이산 인근 완다리조트 단지 내 대형 워터파크에서 중국인들의 무뎌진 방역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쓴 채 워터파크에 입장한 기자의 지인에게 주변의 시선이 집중될 정도였다.

수백명이 한 데 엉켜 파도풀을 즐길 때나, 틈틈이 햄버거·소시지 등 간식을 먹을 때, 물놀이를 마치고 샤워를 할 때까지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워터파크 내 매점에서 마주친 한 중국인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영을 하러 오는 건 무슨 경우인가. 무서우면 오지 말든지"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평일이었던 지난 21일 중국인들이 여름 휴가철을 맞아 유명 관광지인 지린성 창바이산에 오르고 있다. [사진=이재호 기자]
 

◆코로나 계기로 드높아진 자부심·우월감

지난 26일 톈진에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셰펑(謝鋒) 중국 외교부 부부장 간의 회담이 열렸다.

말로 난타전을 벌이던 와중에 셰 부부장은 "현실적으로 볼 때 소극적인 방역 조치로 62만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며 "미국이 민주와 인권의 대변인을 자처할 수 있는가"라고 공격했다.

이어 "서방의 여론 조사를 살펴보면 중국인의 정부에 대한 만족도는 90%를 넘는다"며 "이는 어떤 국가에서나 놀랄 만한 일"이라고 자평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수뇌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국식 방역과 제도의 우수성이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다수의 중국인들은 이에 동의한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는 코로나19 대처에 미흡했던 서방 진영을 향해 "'민주'라는 아름다운 구호도 인민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지 못한다면 그저 이데올로기적 간판에 불과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탈출했다는 중국인들의 안도감은 곧 자부심과 우월감으로 바뀌어 분출되고 있다.

창바이산 정상의 천지(天池)는 북·중 접경으로, 양면에 각각 '중국'과 '조선(북한)'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천지에 도착한 관광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중국인 중 아버지가 셀카 봉을 길게 뻗어 북한 쪽의 비석을 촬영한 뒤 아들에게 보여주며 "중국에서 태어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조선이었다면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혹은 굶어서 죽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주위의 중국인들도 "조선은 어쩌나"라고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중국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한 3년 중 가장 속이 상하고 불쾌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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