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승 칼럼] 공무원을 복지부동하게 만드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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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승 변호사
입력 2021-06-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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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승 광복회 고문 변호사


2008년 2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려 5시간 동안이나 천천히 타들어가다가 끝내 잿더미가 되어버린 국보1호 숭례문의 화재사건을 잊지 못한다. 정신이상자라는 방화범의 범죄수법이 교묘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한 방화였고 게다가 초기에 발견됐었다.

신속하게 수십대의 소방차와 수백명의 소방관들이 몰려들어서 그야말로 홍수처럼 물과 약품들을 숭례문에 퍼부었지만 결국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다. 짐작하기에 불길이 기와지붕 아래 목재들 틈으로 번져가고 있는데도 소방관들은 부질없이 기와지붕 위에만 물을 뿌리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빨리 기와지붕을 허물든지 해서 안에서 타들어가고 있는 불길을 잡았어야 할 텐데, 누구도 감히 국보1호의 지붕을 허물라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것일 게다.

아마 숭례문의 지붕을 허물어서 화재를 진압했다면, 소방당국의 과잉 진화로 문화재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비판 여론이 일어나면서 책임자가 문책을 당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무려 5시간이나 기와지붕 위에 내내 물만 뿌려대면서 숭례문이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부질없는 짓만 한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탓하지 않았고 문책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백하게 잘못한 것은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책임에 죽고 사는 공무원들의 영혼이 없어지게 되는 이유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세월호 참사도 권한을 가진 누군가가 초기부터 과감한 구조 조치를 감행했다면 아마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살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단 몇 명이라도 사망자가 발생하면 이내 언론은 '정부의 미숙하고 무리한 구조조치로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떠들어대고, 이내 국민여론은 들끓게 되어 결국 과감한 구조조치를 결정하고 지휘한 누군가는 혹독한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 불이익을 모면할 방법은 오직 하나다. 무리 없는 구조 활동만을 계속하면서 자연스럽게 구조작업이 종료될 때까지 상황을 유지하는 것. 비록 수백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겠지만 공무원 누구도 그에 대해 책임을 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고를 내고 승객을 버린 선장과 선원들만 가혹하게 처벌하면 여론은 달래질 것이고. 실제로 세월호 구조 실패로 인해 형사 처벌을 받은 공무원은 현장에 처음으로 도착했던 해경선박의 정장이었던 경위 한 사람뿐이고 그 외에 해수부, 해경 및 청와대 등 관련부처의 어떤 공무원도 처벌받은 사실이 없다. 반면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무기징역을 비롯한 중형을 선고받았다.

근래에는 이에 더하여 검찰이 정부의 정책적 판단인 원자력발전소 폐쇄 결정에 관여된 공무원들에 대해 수사를 하는 등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더욱 조장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울고 싶은 사람의 따귀를 때려주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갈수록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들은 상부에서 시키지 않은 일이나, 상부에서 시키더라도 통상적이지 않은 일은 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심해질 것임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고대 로마는 패전했다는 이유로 장군을 처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경험을 살려서 다음번에는 적을 반드시 이기도록 독려했다. 그러나 로마의 적이었던 파르티아는 패전한 장군은 반드시 죽였고, 심지어 승전한 장군도 왕의 시기심 때문에 죽였고, 그 결과 매번 로마군을 경험한 적이 없는 장군이 군대를 지휘하게 되어 연전연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한국 사회가 고대 로마는 고사하고 파르티아보다 더 합리적이고 현명하다고 과연 자부할 수 있을지 극히 의문스럽다. 정말 부끄럽고 심각한 상황인데, 우리 대한민국호를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국회와 청와대에 소속된 리더들도 공무원이라서 같이 복지부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정철승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법학과 ▷법무법인 THE FIRM 대표변호사 ▷광복회 고문변호사 ▷한국입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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