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기획칼럼] 3. 광주와 미얀마…5월 가족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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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1-05-1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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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사건,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할 때 그 일이 더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저들의 가족과 내 가족이 중첩된다. 국가적, 역사적 참극은 더 그렇다.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역시 남은 가족들은 저마다 그 슬픔과 짐을 짊어지고 남은 생을 살아간다. 가족과 역사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

2021년 5월 가정의 달, 41년 전 광주와 현재 미얀마의 가족을 들여다본다.

5월 광주, 군부 반대 시위
올 들어 매주 토요일 광주광역시 종합터미널 인근 광장에선 군부 반대 촛불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오늘 41주년을 맞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한국에 사는 미얀마 사람들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는 모습이다.

2월 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서는 80년 광주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80년 광주에서는 직접 사망자 193명, 후유증 사망자 376명, 행방불명자 65명이 발생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 100일이 지난 5월12일 기준 사망자는 785명이다. 이는 AAPP가 확인한 숫자로 실제 사망자 숫자는 훨씬 더 많을 터, 심지어 이 중 아동 사망자만 최소 60명을 넘는다.

군의 총탄에 스러진 자식이 누운 관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어머니, 41년 전 광주의 모습이 지금 미얀마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무차별 연행과 체포, 테러, 군인의 총격,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희생자들까지 데칼코마니 같다.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전야제 1부 중 미얀마 참사를 담은 연극 공연. 사진=연합뉴스 참사를 가 ]

지난 3월말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미얀마 국적 외국인은 약 2만5000명인데, 호남 지역에 거주하는 노동자, 유학생 300여명이 ‘광주미얀마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들 중 50명 안팎이 매주 토요일 미얀마 저항 세력을 대표하는 국민통합정부(NUG)를 지지하는 팻말과 촛불을 들고 모인다. 이들은 하나 같이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의 무사안위를 빈다.

2021년 5월 광주는 미얀마와 여러 지점에서 만난다. 17일 광주 5·18 전야제에서는 미얀마 저항을 주제로 공연이 펼쳐졌다. 40년 동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싸움에 앞장섰던 ‘오월어머니회’는 미얀마인들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전한다. 80년 광주의 주먹밥은 ‘연대와 나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참상과 저항을 표현한 국내외 작가들 작품이 내걸린  ‘위드 미얀마’ 전시회도 전남대에서 열리고 있다.

18일 오전 미얀마인들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했고, 공식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은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며 세 손가락을 폈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포스터]

아들의 이름으로…가족의 복수
요즘 극장가에는 묵직한 울림을 주는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감독 이정국)가 상영 중이다. 5·18을 주제로 한, 주인공 안성기 배우가 ‘노 개런티’, 출연료를 안 받는 대신 투자자로 나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그 영화다.

“국민배우 안성기, 반성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 복수를 시작하다”라는 광고문구가 날카롭다.

지난 12일 개봉한 이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오채근’(안성기)이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성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학살의 책임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스토리다.

영화에서 광주의 복수는 40년이 지난,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를 직접 겨냥한다. 그러나 현재 미얀마에서는 무력진압과 학살의 책임자인 군 수뇌부 가족들이 실시간으로 복수를 당하고 있다.

이른바 ‘사회적 처벌’(Social Punishment)운동인데 미얀마 군 지도부 가족 회사, 자녀들을 국제적 ‘블랙리스트’에 올린 뒤 SNS 등을 통해 '화살'을 퍼붓는다. 군 장성 가족과 친인척 얼굴 사진과 직장, 유학간 외국 대학 등 개인정보를 찾아내 온라인 상에 공개하고, 외국 정부와 대학에 그들을 퇴출시키라고 압력을 가하는 방식이다.

이는 온라인 상에서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몇몇 국가는 실행에 들어가기도 했다. 외신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미얀마 최고사령관의 아들과 딸이 하는 사업을 제재하는 등 미국에 있는 군부 가족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내무부는 자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군부 친인척 22명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왜 미얀마 사람들의 저항과 복수는 가해자 가족을 향할까 궁금했는데, 며칠 전 만난 지인 C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됐다.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은 18일 오전 재한 미얀마인들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족=인생’인 미얀마 사람들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2011년부터 10년 동안 일하고 4월말 귀국한 C는 “미얀마인들에게 가족은 가장 소중한 최고의 가치”라고 했다.

C는 대표적인 예로 회사 이력서 등 모든 서류에 부모의 이름을 적는 점을 들었다. C는 “미얀마에서는 본인의 이름만큼 부모의 이름을 적을 일이 많다. 미얀마 불교는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강조하는데, 동양 유교문화의 효(孝)와 결합한 것 마냥 정말 부모 봉양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정된 직장, 높은 연봉도 부모와 자식을 위해서는 과감히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C는 직접 겪은 일을 전했다. “미얀마에서 공무원, 교사 등 안정적인 직장 월급이 한화 25~30만원인데, 외국계 대기업은 네다섯 배 이상 많다. 몇 년 전 월급 150만원 받는 미얀마 현지 직원이 부모님이 아프다며 회사를 그만 두더라. 결혼 안 한 30대 남성이었는데 사표를 내면서 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직접 모시고, 그 다음에는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겠다고 하더라.”

40여 년 전 5월 광주의 시대와 2021년 5월 미얀마를 둘러싼 세계는 여러 모로 겹친다. 때마침 전두환 부자가 대를 이어 축적한 재산이 3대인 장손에게까지 세습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가족과 부모에 대한 애틋함과, 복수가 오버랩되는 묘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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