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썰물처럼 빠진 '자영업자' 밀물처럼 차오르는 '중고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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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1-02-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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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영업자 '불황'에 중고시장은 때아닌 '호황'

  • 노래방 기계, 스키 장비 등 폐업 물품 쏟아져

  • 폐업 소상공인 70% '코로나19'로 폐업 결심

  • 폐업 늘고 있지만, 영업 제한 조치는 당분간 계속

[사진=김한상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가운데,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이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이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다. 고가의 커피 추출기부터 노래방 반주기, 스키 장비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자영업자들의 '불황'으로 중고시장이 때아닌 '호황'을 맞이한 셈이다.

지난 6일 개인 간 중고거래 서비스 헬로마켓에는 강원 홍천군에서 스키 대여점을 하는 A 씨가 '코로나19 폐업'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그는 "물건값을 막기 위해 스키용품을 저렴한 가격에 다 털어버린다. 힘들고 정신없어 사진도 대충 찍었다..."고 말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을 줄임표로 대신한 그는 이날 보드 300개와 스키 200개, 의류 400벌 등을 1만~6만원에 내놓았다.

예비 창업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카페도 코로나19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카페 사장들이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폐업에 따른 판매 글이 성황이었다. 한 회원은 "코로나가 사람 잡는다. 카페 물품 팔아 전기세에 보태야겠다"며 각종 시럽과 커피 추출기 등을 판매했다.
 

[사진=중고거래 사이트 당근마켓에 올라온 노래방 반주기 판매 글]


중고거래 사이트 당근마켓에는 노래방 반주기를 올린 판매자도 등장했다. 지난달 15일 코인노래방 사장이라고 밝힌 그는 "지난여름 장기간 집합금지로 노래방 반주기를 업데이트조차 하지 못했다"며 "앞으로도 오후 9시까지 영업제한이 계속되면 하루 매출 6만원으로는 기계를 감당할 수 없어 내놓는다"고 말했다. 그는 업데이트 비용과 수리비 등으로 20만원이 들 것이라며 '단돈 100원'에 물건을 내놓았다. 영업을 할 수 없어 '돈먹는 하마'가 된 기기를 헐값에라도 처분하기 위한 조치다.

한 달 반 동안 집합금지로 손발이 묶인 '헬스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회원 수가 1800만여명인 중고거래 커뮤니티 중고나라에 '헬스장'을 검색하자 폐업으로 기구를 일괄 판매한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헬스장 업주는 480만원에 달하는 '트레드밀(러닝머신)'을 40만원에 올리는가 하면, 다른 업주는 "헬스장 폐업으로 눈물을 머금고 싸게 내놓는다"며 바벨 원판 판매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그래픽=김한상 기자]

실제로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달 21일 전국 일반 소상공인 및 폐업 소상공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소상공인 사업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업 소상공인 10명 중 7명은 코로나19 여파로 폐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폐업 원인으로는 '매출 부진'(70.3%)이 절대다수였다. 이같은 조사를 뒷받침하듯 자영업자 60만명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자영업자들의 매출 하락 '곡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내 회사 밀집 지역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회원은 지난 7일 "지난해 8월 코로나19가 확산될 때 하루 매출 40만원대를 찍어 충격이었는데, 이날 처음 30만원대를 기록했다"며 "매출이 3분의 1로 줄어 정신병이 올 거 같다"고 한숨 쉬었다. 그러면서 "오는 봄에 가게를 접는다면 절대 자영업은 하고 싶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 '무엇' 많이 올라왔을까

개인 간 중고거래 서비스 헬로마켓이 지난해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올라온 판매 글을 분석한 결과, '폐업'과 '가게정리'를 키워드로 한 제품은 한 해 전 같은 기간보다 115%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상품을 보면 집합금지 명령에 영향을 받은 업종이 눈에 띈다. 헬로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폐업 키워드로 가장 많이 등록된 물건은 △여성의류 △컴퓨터·노트북 △스포츠·레저용품 순이다. 이 중 스포츠·레저용품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1686%에 달했다.
 

[사진=개인 간 중고거래 서비스 헬로마켓]


PC·노트북과 여성의류는 각각 640%, 95%였다. 헬로마켓 측은 이런 증가세에 대해 "지난해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은 사실을 급증한 폐업 제품 등록 건수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량으로 쏟아지는 폐업 정리 물건이 새 주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자영업을 하는 건 폭탄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보통 가게가 폐업하면 업소 물건을 전문적으로 수거하는 업체에 넘기는데, 기존 처리 업체의 수용 범위를 넘어서면서 매물이 개인 간 중고거래 시장까지 넘어오는 모양새다.

폐업 물품 '고별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 닫는 자영업자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이를 막을 조치는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방역당국은 지난 6일 비수도권 지역에 1시간 더 문을 열 수 있도록 조치를 완화했지만, 수도권은 현행 밤 9시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수도권은 아직 지역사회 내 '잠복 감염'의 위험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자영업자들은 이번 조치를 두고 수도권 자영업자들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며 영업시간 제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자영업자의 목소리 (사진=연합뉴스)


폐업 처리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한 업체는 "자영업자들은 임대료만 한 달에 많게는 몇 천만원씩 나가는 실정"이라며 "이같은 상황이 계속 되면 (자영업자들은) 문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계약 기간이 남아 빼지도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많다"며 폐업 관련 문의가 밀려 있다는 말과 함께 급하게 전화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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