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習 테마주 추락]샤오미 레이쥔이 초래한 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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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0-10-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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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쉰레이, 전직 경영진 횡령죄 고소

  • 다운로드 가속기로 중국시장 제패

  • 대주주 레이쥔, 텐센트 출신 영입

  • 사업방향 놓고 내부암투 극심해져

  • 샤오미 손 떼자 수뇌부 또 바뀌어

지난 2014년 샤오미가 쉰레이에 2억 달러를 투자하는 협약이 체결된 뒤 저우성룽 쉰레이 창업자(오른쪽)와 레이쥔 샤오미 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바이두 ]


중국의 정보기술(IT) 기업 쉰레이(迅雷)가 최근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전임 수뇌부에 대한 사측의 고발 건 때문이다.

'국민 소프트웨어', '1호 블록체인 테마주' 등의 별칭으로 각광을 받았던 쉰레이는 전현직 경영진 간 암투 속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암투를 초래한 건 한때 대주주였던 샤오미(小米)의 레이쥔(雷軍) 회장이다. 그마저 슬그머니 떠난 쉰레이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우려가 크다.

◆다운로드 가속기로 나스닥 상장까지

지난 8일 쉰레이는 천레이(陳磊) 전 최고경영자(CEO)와 둥쉐(董鱈) 수석부사장 등을 업무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고소했다고 공시했다.

사측은 "지난 4월 이미 고소했고 현재 선전시 공안국이 수사 중"이라며 "천레이가 조기에 귀국해 수사에 협조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천레이는 내연 관계인 둥쉐와 함께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둥(嘉東)법률사무소의 쑨훙샤(孫紅霞) 변호사는 "용의자인 천레이가 끝까지 귀국하지 않으면 법원도 재판과 판결을 할 수 없다"며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국가라면 강제로 끌고 오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국 젊은이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쉰레이 내부 상황은 어쩌다 복마전으로 변했나.

쉰레이는 미국 듀크대 석사 과정 중 만난 저우성룽(鄒勝龍)과 청하오(程浩)가 창업했다.

두 사람은 2003년 첫 다운로드 가속기 프로그램을 개발했지만 속도가 느리고 버그도 많은 실패작이었다.

이듬해 내놓은 2세대 프로그램이 대박을 쳤다. 사용자가 20만명을 넘으면서 글로벌 벤처캐피탈 IDG 투자도 받게 됐다.

P2P 기술을 도입해 파일 공유 기능까지 추가한 쉰레이는 2006년 사용자 1억1000만명, 다운로드 수 8000만회로 시장의 50%를 점유했다.

이후 게임·검색·앱스토어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2011년 쉰레이는 나스닥 상장을 신청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당시 둥난룽퉁(東南融通)의 회계 조작 사건 등이 터지면서 중국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쳤던 탓이다.

자금난에 직면한 쉰레이에 손을 내민 건 레이쥔 샤오미 회장이었다. 2014년 샤오미와 진산소프트웨어가 각각 2억 달러와 9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그로부터 두 달 뒤 쉰레이는 꿈에 그리던 나스닥에 상륙했다.

◆레이쥔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천신만고 끝에 상장에 성공했지만 쉰레이의 지분 구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샤오미가 31.8%로 대주주가 됐고 진산소프트웨어는 13%를 가져갔다.

반면 창업 멤버인 저우성룽과 청하오의 지분율은 각각 9.5%와 3.8%로 쪼그라들었다. 레이쥔을 끌어들인게 내란의 시작이었다.

레이쥔은 텐센트에서 클라우드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던 천레이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천레이는 텐센트에서 데려온 인력들로 블록체인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왕신커지(網心科技)를 설립하며 기존 쉰레이 경영진과 선을 그었다.

궁지에 몰린 저우성룽은 경영자 인수(MBO·경영진과 임직원의 기업 전체 및 일부 사업부 인수)를 추진했지만 대주주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 사건으로 천레이가 쉰레이 CEO 자리를 꿰찼고, 저우성룽은 그룹 회장이 됐지만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대권을 쥔 천레이는 2017년 본격적으로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유사 가상화폐 완커비(玩客幣)를 채굴할 수 있는 프로그램 완커윈(玩客雲)을 출시했는데 가격이 당초 399위안에서 3000위안으로 급등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가상화폐 투자와 P2P 금융 시장 열풍에 편승한 결과였다. 쉰레이는 완커윈을 팔아 하루에 1억 위안(약 170억원) 이상씩 벌어들였다. 주가도 단기간 내에 3달러에서 27달러로 9배가 올랐다.

이 여파로 저우성룽 등 창업 멤버들은 속속 회사를 떠났다.

잘 나가던 쉰레이의 발목을 잡은 건 중국 당국이었다. 공업정보화부는 공식 승인을 받지 않았던 쉰레이의 파일 공유 서비스를 금지시켰다.

또 국가 차원에서 가상화폐 발행을 규제하면서 주력 사업이었던 완커윈과 완커비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부터 쉰레이의 실적과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경영난이 이어지자 주주들은 인내심을 잃었고 올해 4월 창업 멤버 중 한 명이었던 리진보(李金波)가 최대주주가 돼 돌아왔다. 레이쥔 회장은 손을 털고 떠났다.

리진보는 취임 직후 천레이를 해임한 뒤 고소했다. 천레이는 내연 관계로 발전한 둥쉐와 함께 도피했다.

리진보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성장동력을 잃은 쉰레이는 여전히 표류 중이다.

지난 2분기 매출은 4430만 달러로 전분기에 이어 감소세가 이어졌다. 유료 사용자 및 온라인 광고 매출이 전분기 대비 각각 11.4%와 30.4% 급감할 정도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 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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