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올 노벨문학상 루이스 글릭의 대표시 4편 국내 첫 번역 소개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20-10-13 11:02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 시인.]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미국 여성시인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여성시인 루이즈 글릭(Louise Glück, 77세)은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시인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한 시집은 한 권도 없다. 1992년 '야생화 아이리스(The Wild Iris)'로 퓰리처상을 받은 적이 있다. 글릭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117명 가운데 16번째 여성 수상자다. 여성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1996년 이후 24년만의 일이라 눈길을 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눈풀꽃(snowdrops)'은 2019년 류시화 시인이 페이스북에 소개를 한 바 있다. 이 시는 올해 나온 '마음챙김의 시'(수오서재)에 실려 있다. 류시인은 이외에도 '개양귀비(red poppy)'와 '애도'라는 시를 번역해 소개한 바가 있다. 그녀의 시는 이 정도가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이례적인 수상인데다, 국내에선 이 시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기에 간결한 프로필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인간 억압과 고립을 표현한 기발한 문장들

루이스 글릭은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자랐다. 사라 로렌스 칼리지와 콜럼비아 대학을 다녔다. 25세에 낸 첫 시집 '맏이(Firstborn, 1968)'는 기계화된 세상을 비판하고 있었다. 인간의 억압이나 고립, 그리고 고통과 불만을 인상적인 언어들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70대 후반을 넘긴 그녀는 이제 미국에서 활동하는 걸출한 서정시인으로 손꼽힌다. 그녀는 Firstborn(맏이), The House on Marshland(마실랜드의 집), The Garden(정원)(1976), Descending Figure(내려오는 사람) (1980), The Triumph of Achilles(아킬레스의 승리) (1985), Ararat(아라라트 산) (1990), 퓰리처 상을 수상한 The Wild Iris(야생 아이리스) (1992) 등의 시집을 냈다.

깊고 친밀한 감정들을 탐구하는 내면 여행에 독자들을 끌어들인 작품들이다. 그녀의 시에는 고독과 죽음, 가족간의 불화나 이혼을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이 있다. 문제를 간명하게 드러내는 기법들과 공감을 붙잡아내는 통찰력, 마음을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가는 감수성의 힘이 있다. 때로는 신화적이고 때로는 동화적이다. 그녀의 초기 시는 가족문제의 고통과 실연(失戀)으로 인한 실존적 절망이 그림자처럼 서성거리고 후기로 갈수록 자아탐구와 실존의 본질에 파고든다.

국내 처음으로 4편의 시 번역 소개

그녀의 대표적인 시 중에서 4편을 골라, 필자가 우리 말로 번역해 단평(短評) 풀이와 함께 소개한다. 

* 매장의 공포

빈 들판
아침 나절
시신은 부름받기를
기다리네.
영혼은 그 옆에 앉았네
작은 바위 위에.
그것에 형체를 다시 만들어주려고
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네.

생각해보렴 그
시신의 외로움을.
밤에 삭막한 들판을
따라가는
그것의 그림자를.
꽁꽁 묶인
온몸을.
그토록 긴
여행을.

이미 아득하고 경련하는
마을의
불빛들
그 불빛들이 광선으로
훑어볼 때
시신을 위해 멈추진 않네.
얼마나 멀어졌는가.
그것들이 보이기에는.
목재로 된 문들,
빵과 우유
테이블 위에
묵직하니 놓인.


The Fear of Burial

In the empty field, in the morning,
the body waits to be claimed.
The spirit sits beside it, on a small rock--
nothing comes to give it form again.

Think of the body's loneliness.
At night pacing the sheared field,
its shadow buckled tightly around.
Such a long journey.

And already the remote, trembling lights of the village
not pausing for it as they scan the rows.
How far away they seem,
the wooden doors, the bread and milk
laid like weights on the table.

▶ 보이지 않는 것, 가려진 것, 감춰진 것을 깊이 바라봄으로써 그것의 진상에 닿는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면서, 우리는 그제서야 감정이입이 가능하게 된다. 죽어서 꽁꽁 싸맨 시신으로 있는 '자아'를 발견하면서, 지금 처한 세상이 얼마나 낯선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산 자의 눈으로 보는 죽음이란, 혹은 주검이란, 대개 얼른 눈을 돌리고 싶은 '외면의 대상'이다. 이 외면은, 시신이 되어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시는 차가운 손을 잡고 독자를 이끌어 시신으로 드러누워 이제 무엇 하나 자신의 존재감으로 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린, '얼마 전의 인간'이 느끼는 완벽한 무기력감과 절대적인 고독과 공포를 체감하게 한다. 지금의 실존을 반성하는 방식에 이보다 더 격한 '앵글'을 들이댈 수는 없을 것이다.  '매장의 공포'는 루이스 글릭이 오랫 동안 깊이 질문해온 '죽음' 속으로 간결하면서도 나즉한 말투로 초대한다. '공포'라는 감정은, 죽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바라본 풍경들 전체의 환(幻)이 만들어내는 것 같다. 



* 고광나무(가짜 오렌지)

달이 아니야, 내가 말하노니.
뜨락을 밝히는 꽃들이야.

난 그 꽃들을 혐오해.
난 그 꽃들을 혐오해
섹스를 혐오하는 것만큼이나.
내 입을 봉하는
그 남자의 입.
그 남자의 경직된 몸

그리고 비명
항상 도망치는,
그 낮고
굴욕적인
하나됨의 조건

내 마음 속에
오늘밤
나는 듣네 그
질문과 그리고
재촉하는 대답을
하나의 소리에
연결된
올라가고
올라가고 난 뒤
옛 자아들로 쪼개지는,
피곤한 길항작용들. 그대는
보는가?
우리는 이렇게 바보가 된 거야.
고광나무 향기는
창문을 넘네.

어떻게 내가 쉴 수 있지?
어떻게 내가
만족할 수 있냐고
세상 속에 그 냄새가
여전히 있을 때?

Mock Orange

It is not the moon, I tell you.
It is these flowers
lighting the yard.

I hate them.
I hate them as I hate sex,
the man’s mouth
sealing my mouth, the man’s
paralyzing body—

and the cry that always escapes,
the low, humiliating
premise of union—

In my mind tonight
I hear the question and pursuing answer
fused in one sound
that mounts and mounts and then
is split into the old selves,
the tired antagonisms. Do you see?
We were made fools of.
And the scent of mock orange
drifts through the window.

How can I rest?
How can I be content
when there is still
that odor in the world?

▶ 고광나무는 우리나라 산골짜기에도 잘 자라는 낙엽관목이다. 이른 봄에 아름다운 흰 꽃이 피어 정원수로도 심는다. 향기가 아주 좋다. 모크 오렌지(mock orange)는 오렌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담은 듯 하지만 이 꽃 또한 '사랑'의 상징화이다. 달이 아니라, 꽃이라고 밝힌 첫 구절은 그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을 담은 게 아닐까 싶다. 뜨락을 밝히는 꽃은, '달'처럼 진짜 환할 순 없다. 시인은 이 꽃을 혐오한다고 말하면서 섹스에 대한 혐오감과 병치시킨다.

아니 병치시키는 게 아니라 이 꽃을 기화로 자신의 섹스의 기억들이 담은 이미지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입을 봉하는 입은, 키스가 되었다가 섹스로 전이되면서 그 행위들의 질식할 듯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고광나무 꽃 봉오리가 터질 듯 안을 감추는 것처럼 말이다. 경직된 몸, 비명, 도망, 굴욕, 하나됨. 그 뻔하고 지긋지긋한 코스를 지나가며 다시 진저리를 친다. 그리고, 질문과 재촉받는 대답들. 사랑과 소유와 영원과 영혼을 담보하려는, 공허한 심문과 약속들. 절정을 지나며 다시 옛 자아로 돌아와 앉는 움츠림들.

그 허탈의 한가운데 창문을 통해 정원에 심은 고광나무 향기가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혐오감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마치, 그 배경음악처럼 젖어오는 꽃향기. 사랑에 대한, 섹스에 대한, 심연의 침 뱉기를 저 꽃에게 하고 있는 셈이다. 아, 봄날이여. 저 향기는 우리를 쉴 수도 없게 한다. 바보같은 경직과 경련 속으로 아무 의미없이 밀어넣고 있는, 이 행위야 말로 오렌지를 모독하는 짝퉁의 실존이 아닌가.



* '사이렌'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범죄자가 되었죠.
그 전에는 웨이트리스였고요.

당신과 함께 시카고로 가고싶지 않았어요.
당신과 결혼하고 싶었고
당신의 아내가 괴로워하도록 하고 싶었어요.

난 그녀의 인생이 연극같은 것이길 바랬어요.
모든 장면들이 슬픈 장면만으로 채워져 있는.

좋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까?
나는 내 용기에 대한 대가로 이럴 자격이 있어.

난 당신 집 현관 어둠 속에 앉아있었죠.
모든 일이 내겐 분명해 보였죠.
당신의 아내가 당신을 보내주지 않는다면
그건 그녀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증거라고.
그녀가 당신을 사랑했다면
그녀는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나는 내가 실제로 좋은 사람인 것보다
덜 좋은 사람으로 느끼고 있는 게 아니었는지
지금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좋은 웨이트리스였죠.
난 여덟 잔을 마실 수 있었으니까.

난 당신에게 나의 꿈들을 말하곤 했죠.
지난밤 나는 컴컴한 버스에서
한 여자가 앉아있는 걸 봤어요.
꿈 속에서 그녀는 울고 있었죠,
버스는 그녀를 태운 채 떠나가고 있었어요.
그녀는 한 손을 흔들고 있었고
다른 손은 후려치고 있었어요
아이들로 가득찬 달걀상자를.

그 꿈은 그 아가씨를
구하지 않는군요.

Siren

I became a criminal when I fell in love.
Before that I was a waitress.

I didn't want to go to Chicago with you.
I wanted to marry you, I wanted
Your wife to suffer.

I wanted her life to be like a play
In which all the parts are sad parts.

Does a good person
Think this way? I deserve

Credit for my courage--

I sat in the dark on your front porch.
Everything was clear to me:
If your wife wouldn't let you go
That proved she didn't love you.
If she loved you
Wouldn't she want you to be happy?

I think now
If I felt less I would be
A better person. I was
A good waitress.
I could carry eight drinks.

I used to tell you my dreams.
Last night I saw a woman sitting in a dark bus--
In the dream, she's weeping, the bus she's on
Is moving away. With one hand
She's waving; the other strokes
An egg carton full of babies.

The dream doesn't rescue the maiden.


▶ 이 작품도 '문제작'이다. 선원을 유혹하는 '사이렌'은, 유부남을 유혹하는 웨이트레스로 바뀌었다. 그 유부남의 아내를 대하는 자기의 내면에 든 '악마'와 '천사'들. 그 갈등하는 '사이렌'의 마음이 묻는다. '좋음'은 어디에 있는가. 이 불쾌하고 억울하고 답답한 '위치'에서, 시(詩)는 어디에 있는가. '나쁜 인간'을 끊임없이 심문받아야 하는 내게, 저 꿈은 무엇인가. 



* 천상의 음악

아직 천국을 믿는 친구가 있어요.
어리석은 이는 아니지만, 그녀는 요즘도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그야말로 신에게 꼬박꼬박 얘기합니다.
그녀는 하늘에서 누군가가 듣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상에서 그녀는 예사롭지 않게 유능합니다.
불쾌함을 직면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흙 속에서 죽어가는 애벌레를 봤죠.
탐욕스런 개미가 그 위로 기어올라가고 있었죠.
난 항상 어떤 곤경에 빨리 움직이고
항상 사나운 것에 제동거는 데에 열정적입니다.
하지만 소심함이 또한 내 눈을 재빨리 감게 합니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그 일이 진행되도록 놔두면서
내 친구는 지켜볼 수 있었지만
나를 위해 그는 끼어들었죠.
몇 마리의 개미를 털어내어 그 찢어진 녀석에게서
떼어냈죠. 그리고 그 애벌레 녀석을
길 저편에 내려놓았죠.

내 친구는 말합니다. 내가 신을 향한 눈을 감았다고.
다름이 아니라 진실을 직면하는 것에 대한
나의 반감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녀는 말합니다. 저 빛은 슬픔을 불러일으킨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보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처럼
베개에 자기 머리를 파묻는 어린 아이 같다고.
내 친구는 엄마 같아요.
용기있는 사람인 그녀 자신과 같은
어른을 깨어나게 하라고
내게 요구하는 환자 같아요.

꿈 속에서 내 친구가 나를 비난합니다.
우리는 같은 길 위를 걷고 있었지요.
지금인 겨울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그녀는 내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사랑할 때 천상의 음악을 듣는다고.
위를 쳐다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내가 위를 쳐다보니,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구름들이 있고, 아주 높이 뛰어오른 신부들 같은
나무들을 하얗게 물들인 백설이 있을 뿐.
그러면 나는 그녀가 걱정스럽습니다.
그녀가 대지 위에 촘촘하게 깔린 그물망에
걸린 그녀를 보게 될까봐 말입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길섶에 앉아
노을을 바라봅니다. 때때로
침묵이 새들의 지저귐에 뚫리지요.
바로 이 순간입니다.
우리가 죽음과 함께 고독과 함께
편안하게 같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고 하는 때죠.
내 친구는 흙먼지에 둥근 원을 그립니다.
그 안에 그 애벌레가 꼼짝 않고 있습니다.
그녀는 항상 전체적인 어떤 것,
아름다운 어떤 것,
그녀와 별개의 삶일 수 있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는 아주 고요히 있었습니다.
여기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평화로웠습니다. 그 풍경이
들어와 앉았습니다. 길은 갑작스레 어두워지고
공기는 차가워지고 여기 저기 바위들이
빛나고 반짝거렸지요.
우리 둘 다 사랑하는 것은
이 적막이었습니다.
형체를 사랑하는 것은
그것의 죽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Celestial Music

I have a friend who still believes in heaven.
Not a stupid person, yet with all she knows, she literally talks to God.
She thinks someone listens in heaven.
On earth she's unusually competent.
Brave too, able to face unpleasantness.

We found a caterpillar dying in the dirt, greedy ants crawling over it.
I'm always moved by disaster, always eager to oppose vitality
But timid also, quick to shut my eyes.
Whereas my friend was able to watch, to let events play out
According to nature. For my sake she intervened
Brushing a few ants off the torn thing, and set it down
Across the road.

My friend says I shut my eyes to God, that nothing else explains
My aversion to reality. She says I'm like the child who
Buries her head in the pillow
So as not to see, the child who tells herself
That light causes sadness-
My friend is like the mother. Patient, urging me
To wake up an adult like herself, a courageous person-

In my dreams, my friend reproaches me. We're walking
On the same road, except it's winter now;
She's telling me that when you love the world you hear celestial music:
Look up, she says. When I look up, nothing.
Only clouds, snow, a white business in the trees
Like brides leaping to a great height-
Then I'm afraid for her; I see her
Caught in a net deliberately cast over the earth-

In reality, we sit by the side of the road, watching the sun set;
From time to time, the silence pierced by a birdcall.
It's this moment we're trying to explain, the fact
That we're at ease with death, with solitude.
My friend draws a circle in the dirt; inside, the caterpillar doesn't move.
She's always trying to make something whole, something beautiful, an image
Capable of life apart from her.
We're very quiet. It's peaceful sitting here, not speaking, The composition
Fixed, the road turning suddenly dark, the air
Going cool, here and there the rocks shining and glittering-
It's this stillness we both love.
The love of form is a love of endings.

▶ 애벌레의 주검에 관한 에피소드가,  '내 친구'의 스토리로 펼쳐지면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질문을 듣는다. 애벌레에 달려드는 개미를 털어내고, 애벌레를 길섶에 따로 '피신'시켜 죽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친구는 천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천상의 음악이란 신의 목소리로도 읽히고 성령(聖靈)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자주 죽음이란 무엇이냐 묻고, 영원은 또한 무엇이냐고 묻는다. 우리가 죽은 뒤에는 무엇이 있으며, 이 삶 전체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글릭은, 그런 공허한 질문들을 가만히 시 속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표정 속에, 혹은 행위 속에, 혹은 그 태도 속에 흐르도록 해놓았다. 저 노을이 내리는 적막 속에서 죽은 애벌레 하나가 더욱 꾸둑꾸둑해지는 시간.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 빛과 바람이 스며드는 그곳에 잠깐 실존과 그 이후의 비밀이 숨어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 시는 참으로 사랑스럽고 기이하다. 

                                          이상국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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