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풀 수 있다 ...일본을 움직여라

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 2020-07-23 17:58
 

[주재우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곧 광복절이 다가온다. 그 이전인 8월 4일, 우리 대법원은 2018년 강제징용 배상 판결의 실행을 위해 일본제철의 국내자산 압류를 공시송달할 예정이다. 이후 법원은 일본 기업의 자산을 강제 매각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일본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이에 우리 정부는 한·일갈등을 다시 한번 정치화하여 추락한 지지율의 반등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죽창가’와 ‘토착왜구’라는 용어가 다시 신문지면에 자주 등장할 것이다. 청와대는 최근 외교안보라인을 교체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은 일본과 협조할 생각이 없다. 문제는 현 정부가 갈망하는 대북제재 완화와 관련, ‘쾌도난마’로 해결할 수 있는 조력자가 일본임을 모른 데 있다.

일본의 외교적 조력이 왜 필요한지를 논하기 전에 필자가 친일파가 아님을 우선 밝힌다. 나의 막내 증조할아버지는 주기철 목사님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하시다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대표적인 인물이며 독립운동가다. 나의 큰 증조부께서는 임진왜란 때 고향(창원 웅천)에서 일어난 학살과 같은 민족수난을 극복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 해서 1906년에 개통학교를 설립했다. 춘원 이광수가 와서 애국 강연을 한 인연으로 주기철 목사님은 그를 따라 평양으로 가셨다. 우리의 조상에는 임진왜란 때 왜장을 유인하여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한 논개도 있다.

일제는 우리 집안을 몰락시킨 장본인이다. 일제는 증조부의 사업체를 강탈했고 전 가족이 하루아침에 거지신세가 되었다. 이후 나의 아버지는 유년기를 할머니와 일본 시장 바닥에서 김치를 팔며 보내셨다. 춥고 배고플 때 두 모자는 시장바닥에서 함께 부른 일본노래가 있었다. 나는 그 노래를 모른다. 할머니의 빈소 앞에서 아버지는 그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셨다.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아마도 당신에게는 자장가였는지 모른다.

해방으로 귀국하신 아버지(주학중 전 KDI 수석연구원)는 유년기 때 배운 일본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다. 중학교에 진학하시면서 영어공부하실 때 일·영 영·일 사전을 고집하셨다. 일본어를 까먹지 않아야 훗날 일본을 알 수 있고 일본을 알아야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우리가 외교에서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일본의 외교를 알아야한다. 감성에 호소하는 민족주의적 접근은 백전백패가 자명하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주변국이 일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일본의 대항마로 그들을 활용할 수 있다. 역으로 그들을 상대할 때 일본을 또한 이용할 수 있다. 외교에서 일본을 이기는 것은 일본과 주변국을 이용하여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일본은 북한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장본인이다. 특히 현 정부가 원하는 유엔의 대북제재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결정적인 조력자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으로 UN이 처음으로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1718호)이 일본 주도 하에, 그리고 미국과의 공조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존 볼턴 전 미국 유엔대사의 2007년 회고록 <항복은 선택이 아니다 (Surrender is not an option)>에서 자세히 소개되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 소식을 접하자 즉각 일본과의 공조를 모색했다. 미국과 일본은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와 함께 이른바 “P3+1” 협상체계를 마련했다. 이후 작성된 결의안 초안을 나머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과 검토했다. 이 검토 체계를 볼턴은 “P-5+1”으로 소개했다. 이 둘 사이에서 결의안에 대한 협상은 23차례나 이뤄졌다. 정작 북핵 위협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협상에 초청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미국이 대북제재 결의안 작성 임무를 일본에 일임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일본을 제일 신뢰한다. 둘째, 이런 이유로 미국은 동아시아 안보문제에서 일본의 안보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미국이 일본을 가장 신뢰하게 된 연유는 일본 근대화의 성공에 있다. 일본 성공의 밑거름은 서구의 가치와 문명을 수용한 데 있다. 결과는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오른 사실이다. 서구 열강 중 후발주자였던 미국으로서 일본은 특히 동아시아에서 무시하지 못할 세력이었다. 그 결과 미국은 필리핀을 점령하기 위해 일본의 ‘재가’가 필요했다. 일본 또한 한반도에 대한 ‘보호령’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의 ‘인정’이 필요했다. 양국의 전략적 이익이 일치하면서 양산된 결과가 1905년의 '태프트-가쓰라 협정(밀약)'이다.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및 동북아 전략은 일본과 긴밀한 협의 하에 이뤄졌다. 미국 동아시아정책의 근거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만들어졌다. 하나는 중국의 국민당 정부였고 다른 하나는 일본이었다. 미국은 장개석 정권을 통해 중국의 정세를 판단했고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 판세를 이해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동아시아외교에서 매우 모순적인 정보라인에 의존한 셈이 되었다.

일본의 패전으로 ‘평화헌법’이 제정되었다. 더 이상 일본이 군사적으로 성장할 수 없게 미국이 족쇄를 채웠다. 이를 이유로 미국은 일본의 국가 방위를 전적으로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동아시아전략에서 일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을 생성하는 데 있어 일본의 입장과 국익이 반드시 고려되어야만했다. 그리고 둘 간의 관계는 일본이 그려준 밑그림에 미국이 마지막으로 ‘점’을 하나 찍어주면서 그림을 완성시키는 ‘화룡점정’과 같은 것이 되었다.

일본은 현재 북핵 위협을 최고의 안보위협으로 정의한다. 이에 미국도 의식을 같이한다. 그 결과 미국은 북핵문제에서 우리보다 일본의 안보이익을 더 우선한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전략에서 일본의 입장은 핵심이다. 때로는 미국이 일본의 입장을 대변할 정도로 비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이 강경한 대북 조치를 고려할 때도 최우선적인 협상 대상은 우리가 아닌 일본이다. 선제타격이거나 2006년 이전에 제재를 검토할 때도 미국은 일본과 제일 먼저 상의했다. 대부분의 경우 일본의 만류가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유보시키는 데 주력했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의미가 이렇다보니 북한 핵실험 이후 UN 제재 결의안 또한 일본과의 철저한 공조로 이뤄졌다.

북한은 UN 제재의 완화를 요구하고 있고 현 정부는 이에 동조한다. 가령, 2018년 하반기에 대통령과 외교장관은 방문하는 국가에 대북제재 완화에 협조할 것을 호소했다.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시기상조를 이유로 우리 측의 요청을 거절했다. 정부가 잘못된 당위성을 가지고 잘못된 행위자를 찾아간 결과였다. 북한이 핵위협을 제거할 의사와 의지가 추호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측은 북에게 보증을 서려했다. 그러나 이들은 북한의 담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우리 측도 북한의 담보를 확인시켜 줄 수 없었다. 우리 수중에는 북한의 ‘공수표’ 밖에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이 문제를 지극히 단순하게 생각한 데 있다. 방문국이 모두 UN 회원국이기 때문에 총회에서 이들의 지지를 확보하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가 배경에 깔렸다. 그러나 결의안은 그렇게 채택되고 해제되는 것이 아니다. 주도자가 있고 그 지지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채택된다. 주도자를 설득하는 것이 해제의 관건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결국 주도자를 물색하고 협상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면서 그를 지지하는 국가와 협의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대북제재에 있어 우리는 미국이 주도했고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실은 아니다. 일본과 미국이 주도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지원사격을 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결의안의 제재 수위를 조정하는 검토자 역할을 한 것이지 기본적으로 결의안 채택에 동의한 나라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피상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은 ‘나쁜 경찰’, 중국과 러시아는 ‘좋은 경찰’로 각인되어 있다.

정부가 원하는 UN 대북제재의 해결 실마리는 불행히도 정부가 가장 혐오하는 일본에 있다. 북한 주민이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든 우리는 어쨌든 일본과의 외교를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근대 식민주의 사관(史觀)을 비판한 나머지 민족주의적 감성팔이에 빠져든 정부의 일본 외교는 한반도 평화에 백해무익하다. 한반도 평화의 중재자로서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북한과 일본의 외교관계 개선을 중재하는 데 있다. 북·일관계의 개선이야말로 일본이 UN 대북제재 해제의 당위성을 미국에 설득할 수 있는 최고의 명분이며 실제로 해제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쾌도난마와 같은 신의 한수이기 때문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   jwc@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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