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패션계 뒤흔드는 '원저우 중국인' 못막았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박승준 아주경제 논설고문.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입력 2020-03-22 16:05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박승준 논설고문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박승준의 지피지기(知彼知己)] 


중국을 ‘카타이(Cathay)’라는 이름으로 유럽세계에 처음 소개한 책은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이었다. 125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출생한 마르코 폴로는 아버지 니콜로, 삼촌 마페오와 함께 17세 때인 1271년에 베네치아를 출발해서 41세가 된 1295년까지 24년간 중앙아시아를 거쳐 쿠빌라이 칸이 지배하던 원(元)나라를 두루 여행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와 1299년에 ‘Le Divisament dou Monde(Description of the World·세계묘사)’라는 책을 구술했다. 이 책을 일본사람들이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이라고 번역했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여행기록에서 타이두(Taidu·大都, 현재의 베이징·北京)를 거쳐 비단 생산지인 킨사이(Kinsai, 항저우·杭州), 수지우(Sugiu, 쑤저우·蘇州), 남쪽으로 내려가 푸지우(푸저우·福州), 그리고 차이툰(Chaitun, 취안저우·泉州)으로 가서 배를 타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돌아간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현재의 베이징 남서쪽을 흐르는 융딩허(永定河)에 1118년에 건립된 루거우차오(蘆溝橋)를 보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표현한 대목이 나오는데, 이런 이유로 서양사람들은 이 다리를 “마르코 폴로 브리지”라고 부른다. 이 다리는 1937년 7월 7일 부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1명이 피살됐다는 구실로 일본이 공개적으로 중·일전쟁을 개전하는 근거를 제공해 또다시 전 세계에 유명해졌다.

2000년 동안 이탈리아와 중국 사이에는 실크로드를 통한 비단 교역과 마르코 폴로 이후  예수회 선교사들의 중국 선교 여행이 끊임 없이 이루어졌다. 비단은 중국 장강(長江) 하류, 기온과 습도가 높아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기에는 최적의 기후조건을 가진 항저우(杭州)와 쑤저우(蘇州)에서 주로 생산됐다. 이 비단은 이탈리아 상인들을 포함한 유럽 상인과 중국 상인들이 끄는 낙타에 실려 유럽으로 갔다. 최종 목적지는 로마였다. 비단을 싣고 로마를 향해 간 중국 상인들 대부분은 항저우와 쑤저우 부근 저장(浙江)성의 해안 도시 원저우(溫州) 사람들이었다. 저장성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해안가의 척박한 토지라 농업생산이 낮아 역사적으로 가난을 대물림해 오던 원저우 사람들은 억척스럽고 단결력이 강해 ‘중국의 유대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탈리아 국가통계국(ISTAT)의 통계를 인용해서 지난해 9월 24일 현재 이탈리아에 합법적 이민으로 거주하는 중국인의 숫자는 32만명으로, 지난 10년간 9만 명이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와 프라토에 거주하면서 의류와 가죽 제품 생산에 종사하고 있으며, 중국 외교부는 밀라노(Milano)와 프라토(Prato)에 총영사관을 설치해두고 있다. 인구 22만명의 프라토에는 4만명의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프라토는 세계 패션의 중심도시 피렌체의 위성도시로, 아르마니(Armani)·구치(Gucci)·프라다(Prada) 등 '메이드 인 이탈리아'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나, 대부분 중국인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메이드 바이 차이니즈'로 제작되고 있다고 영국 BBC TV가 2013년에 보도했다. 7년 전에 이미 프라토에 중국인이 경영하는 패션제품 공장의 숫자가 4000개에 이르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1000년 이탈리아 패션 메이커의 전통을 자랑하는 프라토에 이처럼 중국인 의류공장의 숫자가 많은 것은 대부분이 원저우 출신인 중국인들이 가격경쟁에서 이탈리아인 소유의 공장을 눌렀기 때문이며, 이들 프라토의 중국인 패션 기업들이 이탈리아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전체 섬유제품의 30% 정도를 소비하고 있다고 BBC는 아울러 보도했다.
중국 최대 검색 엔진 중 하나인 서우후(搜狐)의 지난해 7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밀라노와 프라토 거리에는 중국어로 된 패션숍 간판이 흔하며, 이들 거리에서 쇼핑이나 비즈니스 토크를 하는 데는 이탈리아어나 영어를 몰라도 중국어, 그중에서도 원저우 방언을 알면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한다. 서우후는 프라토의 중심가에서 100년을 경영해 오던 유명한 바 안드레이(Bar Andrei)가 두 달 전인 5월에 원저우 출신 중국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고 아울러 전했다. 이탈리아 북부의 슈퍼마켓들은 원래 8시간 영업이 기준이었으나, 원저우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24시간 영업으로 바뀌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3월 20일 공식집계(Situation Report)에 따르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숫자는 전 세계가 23만4073명, 중국 8만1300명, 이탈리아 4만1035명, 한국 8652명이다. 확진자수 증가는 전 세계 2만4247명, 중국 126명, 이탈리아 5322명, 한국 239명이다. 누적 사망자 숫자는 전 세계 9840명, 중국 3253명, 이탈리아 3407명, 한국 94명, 사망자 숫자 증가는 전 세계 1061명, 중국 11명, 이탈리아 429명, 한국 10명이었다. 인구 규모는 중국이 14억3500만명, 이탈리아 6055만명, 한국 5100만인 점을 비교해보면 이탈리아와 한국의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도는 놀라운 숫자이다.

WHO 공식집계에 따르면, 인구 1만명당 병상 수는 2012년 조사 결과 이탈리아가 34개로 중국 42개보다도 적고, 일본 134개, 한국이 103개인 점과 비교하면 이탈리아는 의료투자 후진국임을 알 수 있다. 환자를 돌볼 의료인력 숫자는 2016년 현재 이탈리아 33만7515명으로 일본 143만9721명의 4분의1 수준이고, 우리의 34만8401명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이탈리아가 20일 현재 WHO 공식집계에 따른 코로나19 바이러스 폐렴의 세계 최대 창궐국이 된 것과 관련, 지난 1월 23일 중국정부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를 봉쇄한 열흘 뒤인 2월 2일 원저우시 중심가 루청(鹿城)구가 봉쇄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월 1일 원저우시 단일지역 확진자 숫자가 265명이 되자 취해진 조치였다. 중국 정부 당국은 우한이 봉쇄된 직후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하루 3600명씩 모두 1만8800명의 원저우 사람들이 우한을 탈출해서 900㎞ 떨어진, 국제공항이 있는 고향 원저우로 이동한 것으로 집계했다. 우한에는 3000여개의 원저우 출신 기업들이 무역과 물류, 기계·전기, 패션, 구두, 금융 등에 종사하고 있으며, 2017년 우한의 원저우상인회(温州商会) 집계로는 우한 패션 기업의 90%를 원저우 출신들이 소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탈리아가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 최대의 코로나19 창궐국으로 주목을 받게 된 뒤인 지난 1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주세페 콘테(Giuseppe Conte) 이탈리아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중국은 이탈리아 정부가 견고한 방역 조치를 취하는 데 대해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낸다. 중국은 코로나19 방역 전문가와 의료진, 물자를 보낼 것이다. 우리의 지원이 ‘건강의 실크로드’를 형성하기 바란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3월 25일 G7 국가로는 최초로 시진핑이 주도하는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에 서명한 국가가 됐다. 일대일로는 시진핑이 2013년 국가주석으로 취임한 직후 강력하게 추진 중인 유라시아 대륙 연결 인프라 건설 사업으로, 이탈리아는 과거의 해상 실크로드인 One Belt의 종착지점으로 계획돼 있다. 시진핑은 주세페 콘테와의 일대일로 서명식에서 마르코 폴로를 언급하면서 “그 베네치아의 상인이자 모험가가 옛 실크로드를 여행해서 중국과 이탈리아 사이의 첫 브리지를 놓았다”고 말했다. 시진핑의 중국은 일대일로 선상의 국가들에게 인프라 건설에 막대한 위안화 자본을 투자하거나 차관을 공급해주고 있다.

이탈리아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서명하기 전 미국과 영국은 주세페 콘테 총리에게 이탈리아 정부가 중국으로 기울어지지 말 것을 경고했으나, 콘테 총리는 G7 최초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서명을 강행했다. 1인당 GDP가 G7 최하위 수준인 3만4483달러로 독일(4만7603달러)의 72% 수준, 국가채무는 독일보다 17% 많은 형편이라 콘테 총리로서는 중국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중국의 인접국가로 코로나19 바이러스 방역 초기에 중국으로부터의 감염원 차단을 제대로 하지 않아 확진자 수 세계 2위로 한때 주목을 받았으나, 이탈리아 역시 중국으로부터 오는 감염원을 차단하지 않아 우리가 물려준 세계 2위를 기록 중이다. 우리나 이탈리아나 역사적으로 관계가 깊은 중국과의 외교정책을 어떤 수준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처지다. 이탈리아나 우리가 결코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의 인구다. 중국 인구는 진(秦) 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며 2300년간 최대 1억 선을 유지해 오다가, 청대 후반 18세기에 감자와 고구마가 구호 식량으로 수입됨으로써 5억 수준으로 급증했다. 더구나 마오쩌둥(毛澤東)이 1960~70년대에 인구 조절 정책을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현재의 14억 인구가 조성됐다는 점이다.

1985년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홍콩 반환 문제를 놓고 베이징에서 마거릿 대처 총리와 회담하면서 “홍콩의 안정은 홍콩 내부에서 방어하는 영국군이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홍콩 바깥에서 수많은 중국인들의 홍콩 진입을 막고 있는 중국인민해방군이 지켜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대처 총리는 회담장을 나오다 인민대회당 계단에서 쓰러질 뻔했으며, 이후 홍콩의 1997년 반환 최후 결정을 중국 정부에 통보했다. 우리나 이탈리아의 정치인들은 과거의 역사적인 중국과의 외교정책 답습에서 벗어나, 14억 인구를 가진 현대 중국과의 외교정책에 효율적이고 가변적인 ‘출입문’ 설치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19 확산 사태는 가르쳐 주고 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제공]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