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스타트업이 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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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IT과학부 부장
입력 2020-02-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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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하지 못하는 발상으로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스타트업을 육성하지 못하면 경제성장이 어렵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선 국가 단위로 팀을 꾸려 스타트업을 참가시키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이제 CES는 대기업들만의 축제가 아니다. 스타트업도 주인공이다. 그들은 CES를 등용문으로 여긴다. 잠재력 있는 투자처를 발굴하기 위해 돈 있는 벤처캐피털이 구름처럼 라스베이거스에 모여든다. 스타트업은 그들의 투자를 받기 위해 혁신 기술을 들고 이곳에 전시를 꾸민다. CES에 참가한 스타트업은 투자처를 찾기도 하지만, 해외 매체에 노출되기를 꿈꾸는 곳도 많다. 해외 매체에 소개되면 비즈니스로 연결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CES에 스타트업이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CES에선 평균 1조5000억원 이상의 투자가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래서 CES에 참가하는 스타트업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엔 800개, 2019년은 1100개, 올해는 46개국에서 스타트업 1200개사가 참가했다. 전시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수많은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이곳을 찾아 활발한 네트워킹을 펼치기도 한다. 이들의 참가 분야는 인공지능(AI), 모빌리티, 헬스케어, 웰니스, AR/VR, 로보틱스, 스마트시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CES 개최 기간 중 스타트업 전시장을 한곳에 모아 놓은 유레카파크는 국가 대항전을 방불케 했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국가별로 팀을 만들거나 브랜드를 통일시켜 참가하는 게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스타트업이 유레카파크 전시장에 자리를 마련하려면, 전시품이 소비자 기술과 관련된 제품이어야 하고, 전시 제품이 아직 출시 전이거나 출시 후 1년 미만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또, 제품의 프로토타입과 목업 전시가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CES를 주최하는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는 국가별로 컨트리 파빌리온을 형성해 단체로 참가할 경우엔 이러한 까다로운 참가조건을 완화해 준다고 한다. 국가별로 팀을 꾸려 참가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CTA도 국가별 참가를 권유하고 있다. 

 

CES 개최 기간 동안 유레카파크에선 국가별로 스타트업이 팀을 꾸려 컨트리 파빌리언을 형성한다. 사진은 일본의 스타트업들이 모인 재팬 파빌리온. [아주경제 DB] 


각국의 기관마다 통계 수치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KICTA)에 따르면, 'CES 2020'에 참가한 스타트업은 국가별로 미국 343개, 프랑스 240개, 한국 200개, 중국 84개, 대만 64개, 일본 34개다. 이 중 한국은 3위를 차지했다. 참가 스타트업의 수가 곧 국력이라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많기 때문에 대규모 컨트리 파빌리온을 꾸며 투자 유치 경쟁을 벌인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린 미국 스타트업의 참가가 가장 많았지만, 프랑스의 참가규모도 만만치 않았다. 프랑스는 프랑스무역투자청의 비즈니스 프랑스 소속 스타트업 20개를 포함해 프렌치테크라는 브랜드로 240개사가 참가했다.

중국은 CES에 참가한 기업체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기업, 스타트업을 모두 합쳐 1000개 정도인데, 이 중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선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회사만 400여개에 달했다. 혁신의 이미지를 '선전'이라는 이름에 담아 투자를 유치하려는 전략이다.
 
대만은 과학기술부가 64개 스타트업을 이끌고 참가했다. 참가 스타트업은 모두 ‘TTA(Taiwan Tech Arena)’ 브랜드로 참가했다. 일본은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가 ’J-Startup‘이라는 브랜드로 29개사를 참가시켰고, ‘JAPAN TECH PROJECT’라는 브랜드로도 9개사가 참가했다.

최근 20개 스타트업을 이끌고 CES에 참가한 서울시는 1000건의 투자상담이 이뤄졌고, 1500만 달러(약 175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성과를 공개했다. 시각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닷(DOT)'은 구글과 시각장애인 실내 내비게이션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계약까지 맺는 쾌거를 이뤘다. 

현지에서 만난 스타트업 관계자는 스타트업 참가 수가 많을수록 그만큼 성공할 기업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스타트업 참가가 많은 나라일수록 성공사례가 많아진다고 했다. CES에선 스타트업도 규모의 경제가 작용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 한계도 있다. 대부분의 한국 스타트업은 국내에서 먼저 사업기회를 모색해 성공한 후 해외로 진출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곳이 많다. 그래서 CES에 전시를 차려도 당장 비즈니스 기회를 살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프랑스의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판로가 유럽연합(EU)으로 조준돼 있어서 해외 진출이 우리보다는 수월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 

CES는 세계 최대 스타트업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CTA는 전 세계가 스타트업에 기대를 갖는 배경에 대기업이 혁신적인 제품과 기술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이번 CES에선 혁신 기술들을 융합시킨 서비스나 솔루션을 제안한 대기업이 많지 않았다. 

내년 CES에선 스타트업 한국관의 규모를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대기업과 협업해 혁신을 탄생시킨 사례를 들고 나간다면 한국 스타트업은 더욱 많은 투자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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