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울진 관동팔경길 25km…망양정·월송정 저넘어 바다는 사색에 잠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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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경북)=기수정 기자
입력 2020-02-1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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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동팔경 중 2곳 울진 소재…숙종이 극찬한 망양정·솔 향기와 어우러진 월송정 ‘절경’

시국이 어지럽다. 겨울 끝자락, 매섭게 불어오는 칼바람에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다. 이불 밖이 ‘위험’해지니,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선사하는 수려한 풍광이 더 그리워졌고, 불현듯 경북 울진이 떠올랐다. 시리도록 푸른 동해가 선사하는 해조음(海潮音)이라도 들으면 켜켜이 쌓인 마음속 번뇌가 달아날 것만 같다.
 

관동팔경을 그려온 강원도 관찰사 그림을 살펴보던 조선 숙종은 경북 울진에 있는 망양정이 가장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사진=울진군 제공]

◆관동팔경길 시작 망양정···왕피천, 바다와 몸을 섞는 감동

울진은 ‘3욕(浴)’ 고장이라 불린다. 삼림욕·해수욕·온천욕이 가능한 천혜의 지역이란 얘기다. 지리적으로 경상북도 끝자락에 자리한 덕분에 원시미 가득한 자연이 오롯이 살아 숨쉰다. 압도적인 풍광을 품은 동해 명승지로 꼽히는 ‘관동팔경’ 중 두 곳도 바로 울진에 있다.  

25㎞에 달하는 관동팔경길은 울진 해변을 대표한다. 망양정에서 월송정까지 이어지는 그 길을 달릴 땐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청량하다.

강원도 관찰사에게 관동팔경을 그려오라 명한 뒤 그 그림을 감상하던 숙종은 관동팔경 중 망양정 경치가 최고라 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란 현판을 하사했다. 나중에 망양정을 친히 둘러본 숙종은 “이 바다가 변해서 술이 된다면 어찌 삼백 잔만 기울이겠는가”라며 감탄했다. 

정추 김시습이 쓴 시를 비롯해 정철 ‘관동별곡’ 등 망양정 절경을 읊은 유명한 글귀에 실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정선 ‘백납병’과 ‘관동명승첩’에 있는 망양정도 역시 유명하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망양정은 정철이 시를 읊고 겸재가 그림을 그렸던 그 자리가 아니다. 본래 망양정은 이곳에서 15㎞쯤 떨어진 기성면 망양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1858년 울진 현령으로 있던 이희호가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세월이 흐르고 정자가 퇴락해 주춧돌만 남은 망양정은 1957년 울진군·울진교육청이 보조금을 내고 여러 사람이 목재를 기증해 1958년 중건했다. 이후 다시 낡고 기울어진 것을 울진군에서 여러 차례 보수·유지해 오던 것이 다시 심하게 낡아 2005년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었다.

소나무 우거진 숲길을 200m쯤 오르면 시야가 열리면서 보이는 정자 하나가 망양정이다. 심산유곡에서 흘러내린 옛이야기 가득한 정자와 정감 어린 포구, 솔숲 시원한 해변이 한데 어우러지며 말 못할 감동을 안긴다. 정자 위에 오르니 드넓게 펼쳐진 푸른 동해가 한눈에 담긴다. 왕피천이 바다와 몸을 섞는 감동적인 장면도 엿보인다.
 

관동팔경 중 한 곳인 월송정 전경. [사진=기수정 기자]

◆그윽한 솔향기와 짭쪼롬한 바다내음 품은 ·월송정

고려 시대 창건된 월송정은 관동팔경 마지막 여정이다. 울진 남쪽, 빽빽한 솔숲 너머 바닷가에 자리한 월송정(越松亭)은 ‘달빛과 어울리는 솔숲’이란 뜻을 지닌 ‘月松(월송)’에서 나왔으나 잘못 표기됐다는 설과 월송 한자 그대로 ‘신선이 솔숲을 날아 넘는다’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신라 시대 영랑·술랑·남속·안양 등 네 화랑이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달을 즐겼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선 성종은 국내 명화가를 시켜 “팔도 사정(射亭, 활 쏘는 사람들이 무예 수련을 위해 활터에 세운 정자) 중 가장 풍경이 좋은 곳을 그려오라”고 명했다. 화공은 함경도 영흥 용흥각과 평해 월송정을 그려 올렸다. 그려진 두 그림을 보던 숙종은 “용흥각 버들과 부용이 좋기는 하나, 경치로는 월송정만 못하다”고 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푸른 동해 모습과 빼곡히 들어찬 솔숲 그늘이 가슴을 울린다. 아름다운 명사십리 바다풍경은 가히 손꼽을 만하다. 월송정 소나무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힘차게 솟아오르는 일출 광경은 이미 유명세를 타 관광객과 사진가들이 몰린다. 월송정 현판은 최규하 전 대통령 글씨다.

이 누각이 지어질 당시에는 왜구 침입을 살피는 망루 역할이 컸다. 조선 중기 관찰사 박원종이 중건했지만 세월이 흘러 퇴락했던 것을 1933년 향인 황만영 등이 다시 세웠다. 일제 말기 제2차 세계대전 중엔 월송에 있던 일본군이 또다시 철거했다. 이때 일본군은 울창했던 송림도 모두 베어냈다.

1956년 월송리 마을에 사는 손치후라는 사람이 사방관리소 도움을 받아 해송 1만5000여그루를 다시 심어 다시금 울창한 모습이 됐다. 1969년 4월엔 평해·기성·온정면 출신 재일교포 모임인 금강회 후원을 받아 철근 2층 콘크리트 현대식 건물로 신축했다. 하지만 월송정 옛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 1979년 해체 후 1980년 7월 당당히 오래전 모습을 찾았다. 
 

월송정 가는 길, 빼곡히 들어찬 솔숲에 서서 들이마시는 공기가 상쾌하다. [사진=기수정 기자]

월송정에서 바라본 동해 풍경[사진=기수정 기자]

동해 따라 쭉 뻗은 울진 해안도로[사진=기수정 기자]

시리도록 푸른 울진 바다. 겨울 바다 쾌청함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기수정 기자]

월송정 전경. [사진=기수정 기자]

망양정에서 바라본 망양해수욕장. [사진=울진군 제공]

월송정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솔숲. [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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