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니엘의 일본 풍경화] (3) 제국주의 일본은 이들이 일으켰다..중화학 5대 콘체른

이수완 논설위원입력 : 2020-02-06 18:41

[노다니엘]



‘2019년 12월 29일, 오사카의 간사이국제공항에서 커다란 악기 상자에 숨은 한 사나이가 프라이빗 제트기에 실려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레바논에 도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이 사건의 주인공은 카를로스 곤이라는 65세의 남자. 그가 레바논, 브라질, 프랑스 삼중 국적자라는 사실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겠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가 탈세혐의로 도쿄에서 재판 중에 보석으로 구치소에서 풀려나자 일본탈출 작전을 해치운 것이다. 이 외국인이 일본의 신흥재벌 이야기와 무슨 관계인가? 그는 프랑스의 자동차 메이커 르노가 닛산(日産)자동차의 최대 주주가 되면서 최고경영자로 보낸 사람이다.

다섯개의 콘체른

위의 에피소드야말로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신흥재벌이란 1차대전 이후의 세계적인 호경기 속에서 일본에서 발흥한 중화학 기업체들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다섯개가 꼽히는데 그 이름은 닛산(日産), 닛지쓰(日窒), 리켄(理研), 모리(森), 닛소(日曹)이다. 이들은 모두 제2차대전이 끝나기 전에 일본의 15대 재벌에 들어가던 기업군이었다.

이들은 일본에서 ‘콘체른’이라고 불린다. 콘체른이란 독일어의 Konzern인데, 원래의 의미는 독점가격을 형성하기 위해서 생산부터 판매까지를 모두 통제하는 기업그룹을 가리킨다. 이 시리즈의 전편에서 다룬 미쓰이·미쓰비시·스미토모가 금융과 상사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그룹이라면, 콘체른은 중화학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 및 사업기업군이다.

일본은 1920년대의 소위 ‘대정데모크라시’가 끝나고 1926년에 쇼와시대에 들어가며 일본 군부가 독립성을 높이는 가운데 조선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만주에 손을 뻗치게 된다. 따라서 이 시기는 군수산업을 포함한 중화학공업이 발흥하는 시대였다. 이 중화학기업들은 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고 주주의 통제에 들어가기보다는 소위 ‘국책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안으로는 기업통제를 강화하고 밖으로는 우익정권 및 군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된다. 그중에서 특히 조선반도에 진출한 닛지쓰와 만주에 진출한 닛산이 대표적인 콘체른이라고 할 수 있다.


닛산 콘체른

 

[노다니엘]




위 포스터를 보면 닛산트럭에 가득 올라탄 일본군이 히노마루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만주에서의 '황군(皇軍)의 대승리'를 축하하는 모습이다. 이 포스터를 만든 것은 닛산자동차판매주식회사인데, 대형차는 닛산(Nissan), 소형차는 닷선(Datsun)의 두 브랜드가 ‘국산자동차의 쌍벽’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전후에 나타난 도요타나 혼다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태어난 일본의 첫번째 자동차회사이다. 닛산이라는 이름은 당시 그룹의 지주회사였던 일본산업(日本産業)의 줄임말이다.

1928년에 만들어진 광업회사인 일본산업은 군국주의가 발흥하던 1938년에 일본군과 발을 맞추어 만주국으로 본사를 옮긴다. 그때 23개 회사의 사장단이 ‘춘광회(春光会)'라는 이름의 모임으로 과거의 연대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이 춘광이라는 고유명사는 이토 히로부미의 혼외자였던 이토 후미기치(伊藤文吉)의 아호인데, 그는 관료를 거쳐 일본광업의 사장을 역임하였다.

닛산 콘체른의 지붕 아래에 있던 기업으로서 아직도 일본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업으로서는 닛산자동차, 종합전기전자메이커인 히타치(日立), 그리고 일본광업에서 이름을 JXTG홀딩즈로 바꾼 석유 및 유전개발회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닛지쓰 콘체른

닛산이 활동의 기반을 만주로 옮긴 데 비하여 닛지쓰는 현재의 북한을 성장의 기반으로 삼았다. 해방 후의 시기에 공업시설이 남한보다 북한에 압도적으로 많았던 배경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닛지쓰 콘체른이다. 닛지쓰(日窒)는 일본질소비료라는 회사의 준말로서, 1908년에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라는 사람이 만든 화학비료회사였다.

일본 국내에서 비료, 화학, 전기 등 다양한 사업에서 성공한 노구치는 1925년에 조선총독부로부터 개마고원의 부전강에 수력발전소 건설을 제안받고 조선으로 사업 기반을 옮기게 된다. 부전강에 20만KW급의 수력발전소를 세운 노구치는 1927년에 조선질소비료회사를 설립하고, 장진강·허천강에 차례로 발전소를 지어 총 12개 발전소에서 97만KW의 전기를 생산하는 거대한 콘체른을 형성하게 된다.

이어 그는 1937년에 만주국정부, 조선총독부와 3자 협력으로 수풍발전소 건설에 착수한다. 이 발전소는 1944년에 1단계 공사가 완성되어 70만KW의 전기를 생산하지만 2단계 공사를 끝내지 못하고 태평양전쟁이 끝나게 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닛지쓰의 사업이 더 흥미를 끄는 것은 그가 흥남부두 일대에 거대한 산업단지를 건설하였으며, 이 산업단지에서 일본 해군의 위촉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고체연료 로켓이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닛지쓰의 흥남부두 산업단지]


노구치는 개마고원의 댐에서 공급되는 풍부한 전력을 이용할 수 있고 일본에 직항할 수 있는 항만이라는 입지조건을 가진 함경남도 함흥군의 흥남, 영안, 본궁 세 곳에 공장지대를 건설했다. 특히 부두를 둘러싼 흥남이 중심이었다. 흥남은 정식적인 행정구역이 아니었고, '함흥부의 남쪽에 있는' 지대여서 그렇게 이름이 붙은 것이다. 흥남 지역에는 조선질소비료 등 10개가 넘는 자회사와 관련 회사가 설립되고 종업원 4만5000명과 가족을 포함한 총인구는 18만명에 이르렀다.

일본질소 흥남공장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 생긴 것은 1944년 7월 31일이었다. 당시 태평양전쟁에서는 이미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도쿄에서 온 해군성 군수과장은 "일본이 이길 가망은 없다. 단 하나의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진 것은 이 로켓 병기다. 일본의 운명을 걸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만들라”고 요청했다. ‘NZ프로젝트’라는 코드명 아래에서 일본질소 흥남공장은 해군이 원하는, 미국본토를 때릴 수 있는 로켓연료 개발에 성공하여 1945년에 실전에 도입되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이 고체연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전극에 쓰일 백금 2t을 일본황실에서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바로 이 흥남부두에서 미군 함정에 흥남 일대의 한국인들이 실려 거제도로 피란을 하게 되는데, 바로 그 배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가 타고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드라마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흥남에 공업단지를 만든 노구치와 관련되는 또 하나의 드라마는 그가 당시 경성에 반도호텔을 지었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총독도 무시할 수 없는 거물급 정상(政商)이었던 노구치가 볼 일이 있어 경성에 오게 되었다. 그는 당시 총독부 철도국이 운영하던 최고급 호텔인 경성호텔(현재의 조선호텔)에 묶고자 했는데 공장에서 일하는 노구치의 행색이 초라했는지 숙박을 거부당하게 된다. 이에 격분한 노구치가 세운 호텔이 반도호텔이다. 서울의 명소였던 반도호텔은 재일교포 신격호에게 매각되어 1974년에 철거되고, 그 자리에 신축된 것이 지금의 롯데호텔이다.

닛지쓰와 관련하여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기업이 일본공영(日本工営)이라는 엔지니어링 컨설턴트 회사이다. 전후 한국의 군사정권이 한국의 댐 등 수자원 종합개발을 기획할 때 한국의 모든 하천의 토목조사자료를 필요로 했다. 이 자료가 있던 유일한 회사가 일본공영이다. 그 연유는 이 회사의 설립자 구보타 유타카(久保田豊)가 바로 노구치 밑에서 토목기사로 수풍댐 건설에 참여한 키퍼슨인 것이다. 앞으로 북한이 전국의 토목공사를 하려고 한다면 일본공영을 방문하지 않고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리켄 콘체른

한국의 언론에 일본의 ‘이화학연구소(理化学研究所)’라는 이름이 가끔 언급되는 경우가 있다. 이 단체 이름의 준말이 리켄(理研)이다. 전후에 이곳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3명이나 나와 한국에서는 의약품 등을 연구하는 연구소로 이해되고 있으나 이 단체도 전전(戰前)에 일본의 신흥재벌이었다.

이화학연구소를 설립한 사람은 바로 일제의 조선진출 주역 중 한 사람인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앞서가는 기업가이자 금융전문가였고, 이러한 배경으로 리켄을 만든 것이다. 1917년에 만들어진 리켄은 물리학, 화학, 공학, 생물학 등의 기초 및 응용연구를 하는 국책연구소였다. 따라서 이 기관은 약품을 개발함과 동시에 고무, 비행기부품 등 다양한 군수물자를 생산하였다. 1930년대에는 60개 이상의 회사를 거느리는 거대한 그룹으로 ‘리켄산업단’이라고 불렸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는 1941년에 일본육군의 요청에 따라 원자폭탄 개발연구를 극비리에 실행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리켄은 전쟁이 끝난 후 연합국사령부에 의하여 15대 재벌 중 하나로 지목되어 해체된다. 따라서 지금 활동하는 리켄은 뿌리는 같지만 전후에 다시 태어난 조직이다.

모리(森) 콘체른

모리(森) 콘체른은 모리 노부테루(森矗昶)라는 사람이 1926년에 설립한 회사를 그 중심으로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상처가 나면 ‘옥도정기’라는 빨간 액체약을 발랐다. 이 약을 처음 생산한 회사가 모리이다. 옥도(沃度)는 요오드의 일본식 한자표기이다. 모리가 만든 일본옥도와 쇼와비료라는 두 중핵회사는 화학약품과 합성암모니아비료를 생산해 거부를 형성하게 된다. 이 콘체른은 점차 사세를 확장하여 일본에서 전기화학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그룹이 된다. 한국인의 귀에는 생소하나, 이 그룹의 중핵회사였던 쇼와전공(昭和電工)이나 일본야금(日本冶金工業) 등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회사이다.

닛소 콘체른

이 콘체른은 나카노 도모노리(中野友礼)라는 사람이 일찍이 1920년에 ‘식염전해법’이라는 기술특허를 확보하여 1920년에 일본소다(日本曹達)를 만든 것이 시작이다. 그후 나카노는 광업, 철강, 비단직조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에 성공한다.

일본소다도 다른 신흥재벌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아시아팽창전략에 협력한다. 1938년에는 해군지정공장, 1939년에는 육군감독공장이 되어 다양한 화공약품을 군부에 공급하게 되며, 1939년 9월에는 조선에 닛소조선광업을 설립하여 무기에 쓰이는 텅스텐 제조에 들어간다.

일본에서 들어온 재벌이라는 말은 금융과 제조를 포함하는 종합기업그룹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사실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미쓰이나 미쓰비시형 재벌이 아니라 신흥재벌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삼성, 현대, LG, SK 등 어느 재벌도 처음부터 은행과 상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특정한 사업회사를 중심으로 하여 국가정책과 발맞추어 성장해온 것이다.



<노다니엘>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MIT에서 비교정치경제학을 전공하며 일본전문가로 교육받았다.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시작되던 1989년 3월에 도쿄에서 연구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일본에서 보냈다. 학자로서 홍콩과기대, 중국인민은행 등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컨설팅업에 종사하며 미국과 일본의 회사에서 일본과 관련한 일을 하고, 현재는 서울에서 아시아리스크모니터(주)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수완 논설위원  danielroh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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