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캣 금융] 한 해 상품 99%가 붕어빵···히트 상품 베끼고 영업 채널 확보에만 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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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
입력 2020-01-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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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난 2018년 금융권에서 독창성을 인정받아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한 상품의 수다.

'9'. 2018년 금융사가 특허청에 등록한 특허 건수다. 다만 특허 중 대부분은 결제 서비스와 인공지능(AI)에 대한 특허로 금융상품에 대한 특허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종합하면 2018년 특허나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할만한 독창적 금융 상품은 많아야 20여개 남짓했다. 그해 수천 개의 금융상품이 출시됐음을 감안하면 99%의 상품은 그야말로 독창성 없이 기존 상품 혹은 다른 회사의 상품을 단순 카피했다는 의미다.

국내 금융사의 상품 카피는 뿌리가 깊다. 1950년대 광복 전후 설립된 국내 금융사는 대부분 일본의 것을 그대로 베껴 만든 상품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미국·유럽 국가로 카피의 대상이 바뀌어 왔으나 현재까지 상품 베끼기 관행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태생적으로 그렇다보니 금융상품의 독창성을 인정해주는 문화도 미약하다. 국내 금융권에서 독창적 상품을 처음 개발한 금융사에 한동안 독점 판매권을 부여하는 배타적사용권을 제도화한 곳은 사실상 생명·손해보험업권 뿐이다.

은행권에서는 배타적사용권과 유사한 '우선판매권' 제도가 있으나 도입 이후 현재까지 10년이 넘도록 실적이 단 하나도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여신금융업계에서도 배타적사용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일부 업체의 반대로 계속 무산되고 있다.

 

배타적사용권의 기반이 되는 보험업법 및 보험업법 시행령.[사진=생명보험협회]

배타적사용권 제도가 정착된 보험업권도 결국 카피캣 상품의 확대·재생산을 피할 수 없다. 일부 상품이 독창성을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공고하게 뿌리박힌 카피 관행을 뒤엎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15년 오렌지라이프생명(옛 ING생명)에서 개발한 저해지 종신보험의 경우 배타적사용권이 종료되는 즉시 모든 생보사가 해당 상품의 구조를 차용해 유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카피 관행이 계속되다보니 금융사는 독창적 상품을 개발하기보다 영업 채널의 확보에 신경을 쏟고 있다. 독창적 상품을 개발하더라도 결국 영업 채널이 강한 대형 금융사가 그 상품을 카피해 더 많은 판매고를 올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탓이다. 오렌지라이프생명이 개발한 저해지 보험 역시 대형 생보사에서 더 많이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표절 관행이 반복되면서 국내 금융사의 독창적 상품 개발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핀테크 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했다.

독창적 금융 아이디어만 있다면 금융당국의 것 뿐 아니라 다른 법률의 규제도 해소해 현실화하겠다는 의도였다. 샌드박스 도입으로 지난해 77건의 혁신금융서비스가 지정됐으나 상세히 살펴보면 기존에 예상되던 서비스가 대부분으로 진정한 의미의 혁신적 상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금융권의 중론이다.

금융사 상품개발 관계자는 "신제품을 만들 때 대형사가 비슷한 유형의 상품으로 성공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대형사의 성공사례가 있으면 통과되고 전혀 새로운 것이면 퇴짜 맞기 일쑤"라고 말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실패의 부담 없이 가장 손쉽고 저렴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타사 성공 상품을 베끼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수십 년 반복되다보니 윗선에서는 이미 문제가 있다는 인식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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