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웅의 데이터 政經] 내년 총선, 알고보니 수도권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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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입력 2019-12-0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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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주의자 강준만은 2008년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매우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펴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해온 강준만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지방언론 등 다양한 지방 이슈를 제기하며 그 해법을 내놓는다. 서울 소재 대학의 지방분산, 지방언론사의 공공성 강화 및 시민사회와의 연대, 정치·행정의 사유화 중단 및 제대로 된 지방자치 실시 등이 그것이다. 2019년 10월 말 현재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국내 주민등록인구의 49.97% 이상이 서울, 인천, 경기도 등 3개 시·도에 밀집해서 거주하고 있다. 학업 및 직업 때문에 실 거주를 하면서도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은 경우를 포함하면 이미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은 수도권에 몰려 살고 있다. 국토면적 11.8%에 불과한 수도권은 인구비중이 제1회 동시지방자치선거를 실시한 1995년 이미 45.3% 수준이었다. 강준만이 ‘지방 식민지체제’를 언급한 2008년에는 48.8%로 꾸준하게 증가했으며 이제 50%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치행정, 경제금융, 교육문화 등 모든 것이 중앙으로만 향하는 현상은 ‘서울공화국’을 넘어서서 가히 ‘수도권공화국’으로 치닫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자치 부활 30년을 바라보지만 특히 정치의 중앙권력화는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1948년 제헌국회 때는 어땠을까? 정원 200석 국회의원 가운데 단 39석이 수도권에 배정되어 비중 18.5%에 불과했다. 영남이 훨씬 많은 64석이었고 호남도 51석에 달했다. 이듬해인 1949년 대한민국 정부가 처음 실시한 인구센서스에서 수도권 인구비중은 국회의석 비중과 비슷한 20.7%에 그쳤다. 강준만 교수가 그의 책에서 인용한 1966년 수도권 인구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본격적인 이농 시작 전이었기 때문에 아직은 23.6%에 그치고 있었다. 곡창지대 호남권은 수도권과 비슷한 수준인 22.5%였고, 영남권이 여전히 31.1%로 가장 많았다. 따라서 다음해 6대 총선에서 국회의석은 영남권이 42석, 호남권 30석, 수도권은 27석으로 제헌국회 때와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신민당이 돌풍을 일으킨 1985년 2·12 총선 당시 수도권 인구비중은 39.1%로 대폭 증가했다. 이어서 영남권은 29.8%로 현상을 유지했지만, 호남권은 14.7%로 크게 줄어들었다. 영남권은 공업화에 따른 인구유입이, 호남권은 값싼 노동력 공급원으로서 급격한 인구유출이 이루어진 까닭이다. 이에 따라 국회 의석도 수도권 52석, 영남권 58석, 호남권 36석으로 수도권과 호남권의 역전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신민당 강세는 바로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에 기반한 것이었다.

현재 영남권(25.2%), 충청권(10.7%), 호남권(9.9%)의 인구비중은 다 합해도(45.8%) 수도권에 4% 이상 못 미친다. 현재 공직선거법은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하여 국회의원선거구를 획정한다. 따라서 19대 국회까지는 이 3개의 남부권역이 122석으로 수도권(112석)에 비해 10석이나 더 많았지만, 2014년 위헌판결에 따라 인구 상·하한선이 줄면서 이 차이도 덩달아 줄었다. 즉 20대 4·13 총선에서는 영·호남 의석은 4석이 줄고 대신 수도권은 무려 10석이나 늘어나 의석 규모도 120석 대 122석으로 역전되었다. 금년 10개월 동안에만 수도권은 순유입 인구가 7만8000명이 넘고 있으니 2020년 4·15 총선 때는 그 격차가 더욱 더 벌어질 것이다. 결국은 지역경제 피폐와 농촌인구 감소에 따라 지방을 대변해줄 정치인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뜻이다.

한편 17대 총선 때부터 실시된 1인 2표 정당명부투표를 통해 당선된 비례대표 의원들을 잘 살펴보면, 놀랍게도 대부분이 수도권지역 출신이었다. 지역구에서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먼저 자유한국당은 17~20대 비례대표의원을 모두 85명 당선시켰는데, 충청권 이남에서 실제로 거주하며 활동해온 인물을 단 7명만 배치시켰다. 비율로는 겨우 8.2%이다. 더불어민주당계열 정당이 조금은 낫다지만 76명 중 13명으로 17.1%이다. 그런데 여야를 통틀어 이 20명의 비례대표의원조차 영남권이 17명으로 절대 다수(85%)이고 호남권 2명이다. 이렇게 영·호남 격차는 엄청 심하다. 특히 지역구의원이 호남중심인 민주당은 13석 중 11석을 영남비례대표로 보완했으나, 영남중심 한국당은 비례대표 7석 중 압도적인 6석마저 영남거주자들이다. 그리고 단 2명뿐인 호남권은 19대 때 처음으로 주영순(새누리당) 의원과 김광진(민주통합당) 의원이 여의도 입성에 성공하는데, 그나마 청년대표 김광진 의원이 지도부 낙점을 받지 않고 1주일 동안의 심층면접과 배심원 심사, 그리고 선거인단 투표에 의한 자력 진출이었다.

이처럼 현실은 50석 안팎에 불과한 비례대표조차 수도권 집중을 보완하기는커녕 오히려 지방분권에 역행하고 있다. 똑같은 지방 안에서도 인구수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당내권력이 집중되는 영남권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하지 않으면 수도권 집중은 더더욱 심화되고 인구 약세지역 호남은 진짜 ‘정치 식민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진보학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직수입하는 것만을 유일한 대안으로 고집해서는 안 된다.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 영·호남 간 격차 등을 완화할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야 한다. 당장 21대 총선 때부터 권역별 비례제 법제화를 요구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현행대로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되, 남부 및 북부권(수도권 포함지역) 등 크게 2대 권역으로 명부작성을 하고 지방거주자에게 더 많은 비중을 주어 강제 할당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대통령제이면서 양원제를 실시하는 미국은 상원을 통해 각각 인구수가 다르고 이해관계가 상이한 주별 갈등을 잘 조정하고 있다. 즉 인구비례로 선출하는 하원과 주별 대표성을 갖는 상원은 그 역할이 꽤나 다르다. 4000만명 가까운 캘리포니아와 50만명 남짓한 와이오밍의 인구격차는 무려 68배 이상이지만 상원의원을 똑같이 2명 배정한다. 이 때문에 미국연방은 권역별 인구변화는 10년이 가도 눈에 띄지 않는다. 프랑스 역시 상원을 두고 있다. 주로 지방의원들에 의한 선거인단(약 16만2000명) 간선방식이지만 2011년부터 법률개정을 통해 6년 임기의 348명을 3년마다 절반씩 개선한다. 결선투표를 거치는 1~2인 선거구에서 93명, 3인 이상 선거구에서 뽑는 비례대표의원이 255명이다. 최다 선거구는 파리주로 12명을 선출한다.

제1야당 대표가 추운 겨울 위험한 노숙단식까지 벌였다. 신속처리안건 자동부의(패스트트랙)를 반드시 막겠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그는 군소정당들이 민주당 2중대, 3중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절대 반대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원조인 독일이나 뉴질랜드를 보면 높은 봉쇄조항(4~5%) 때문에 군소정당이 발붙이기가 쉽지 않다. 최근 독일에서 대안당과 좌파당이 약진하고 있으나 기민당 또는 사민당 급진파 세력이 이탈해 만든 정당이기 때문에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뉴질랜드는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이래 기존 양당 외에 꾸준하게 원내정당을 유지하고 있는 건 녹색당 정도뿐이다. 독일식 비례대표의 본래 취지는 지역구에서 발생한 사표를 모아 추가로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것이다. 상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비례대표의원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들은 계층, 부문, 소수자의 이해도 잘 대변해야 하지만 지역구의원을 통해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그 통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민주평화당과 (가칭)대안신당은 호남지역구 축소를 이유로 선거법협상에 임할 일이 아니다. 자유한국당도 갈수록 영남인구가 줄어드는 데 대하여 근본대책이 있어야 한다. 계속해서 소멸 중인 지방, 그중에서도 정치식민지로 전락해가고 있는 호남 민심을 획득하기 위한 유효 수단인 강제할당 비례대표제도로 정치권이 대타협을 하면 얼마나 멋질까?


 

최 광 웅(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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