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 日타고 우린 못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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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가천대 교수
입력 2019-10-1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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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교수 ]



[곽재원의 Now&Future] 2019년 노벨과학상(의학·생리학, 물리학, 화학)도 예상대로 한국을 한참 비켜 지나갔다. 연구개발비가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 1, 2위를 다투고, 규모면에서도 세계 6위를 차지하는 한국이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 과학의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지적된다.

지난 6월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제45회 세계기능올림픽은 중국과 러시아에 밀려 3위에 머물렀다. 우승 19회, 2위 6회, 3위 2회를 기록하며 부동의 기능강국마저 자리를 내주는 모양새다. 기초연구에서부터 기능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과학과 기술이 대(大) 정체기에 빠진 듯싶다.

올해 노벨 과학상에서 하이라이트는 일본 화학회사 아사히 카세이(旭化成)의 노(老) 연구기술자가 딴 화학상이다. 간편하며 성능 좋고 안전한 리튬이온 전지를 상업화시킨 공로다. 이와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기술이 미국 과학자들이 이룩한 기초연구, 일본 과학자가 앞서 노벨상을 받은 플라스틱 소재 연구, 소니 등 일본기업의 상업화 기술을 총망라한 ‘이노베이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 성취는 정보기술(IT) 기반의 생활혁명을 선도했고, 지금은 자율주행자동차를 비롯한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눈부신 활약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리튬이온 전지의 사례에서 ‘기초연구-목적기초-응용연구-기술개발-상업화’의 ‘R&DI’(연구개발과 이노베이션)의 전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연구실에 갇힌, SCI(science citation index) 논문에 묶인, 단기성과에 매몰된 연구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는 사실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제 우리도 눈을 들어 멀리 보자. 우선 세계의 선진국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선진국이 국제경제에 관해 협의하는 국제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OECD는 최근 들어 과학기술이노베이션정책을 주요한 토픽으로 삼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검토의 장(場)이 ‘글로벌 사이언스 포럼’이다. OECD가맹국을 포함 34개국이 참여해 공통의 정책적 과제에 대해 논의한다. 현상과 문제점, 개선방안 등에 대해 조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정책과제로 선정한 뒤 전문가들을 붙여 2년 정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일본 일간공업신문이 정리한 이 포럼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실시중인 프로젝트들은 5개 사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째, 연구직의 불안정성이다. 많은 나라에서 대학 등의 젊은 연구자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고용이 되는 등 연구자의 신분이 불안정하게 되어 연구자의 직업으로서 매력이 저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데이터 집약적인 과학을 위한 디지털 스킬의 함양이다. 대량의 데이터를 이용하는 과학이 급속히 발전하는 가운데 어떠한 인재가 필요하고, 어떻게 육성해야 하는가가 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연구 인프라의 운영·이용의 최적화 문제다. 재정의 제약 속에서 연구에 필요한 시설설비의 고도화와 비용증가가 진행되고 있어서 대규모의 국제적 시설뿐 아니라 연구 인프라에 대해서도 효과적·효율적인 운영과 이용이 촉구되고 있다. 넷째, 트랜스디스플러너리(超學際)연구에 의한 사회문제 해결방안이다. 사회적 과제 해결을 위해 인문사회과학도를 포함해 다수 학문분야의 연구자와 시민·행정·기업 등의 관계자가 연구의 기획 단계부터 협업해 진행하는 것이다. 다섯째, 하이 리스크·하이 리워드 연구다. 공모에 의한 연구비 배분 확대는 성공 확률이 크지만 성과는 작은 연구를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실패 리스크는 크지만 얻을 수 있는 성과도 큰 연구를 늘리는 일이 중요해졌다.

이들 5개 사항은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중요한 과제다. 과학기술이노베이션에의 기대가 높아지는 동시에 연구비용의 증대와 재정 제약이 현재화(顯在化)하면서 선진국들이 직면한 정책과제들은 뚜렷한 공통성이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분야가 전문화·세분화 되면서 과학기술과 사회와의 관계가 심화되고 있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전체상을 파악해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예컨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진정으로 인간의 행복으로 연결되는가하는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작금의 미·중 대립에서 보듯이 연구개발 경쟁이 새로운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측면까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JST) 연구개발전략센터가 최근 내놓은 ‘연구개발의 부감보고서 (2019년)’는 최근 크게 발전한 IT의 관점에서 과학과 사회의 전체상을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보고서는 과학기술과 사회에 관한 중요한 세계적 조류를 5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과학기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과학기술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AI(인공지능), 게놈편집 등의 분야에서 윤리적·사회적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셋째, AI와 IoT(사물인터넷), 양자, 바이오테크놀로지 등의 중요 기술 분야에서 국가 간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AI와 빅 데이터를 활용해 연구기법의 변혁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덕분에 연구자의 발상 확대와 연구의 고효율화가 가능해지고 있다. 다섯째, 자연과학과 인문학·사회과학과의 연계가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 인터넷이 보급된 이래 온갖 상거래와 서비스 절차가 네트워크 상에서 이뤄지면서 수십년 사이에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

뿐만 아니라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바이두, 화웨이 등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인터넷 관련기업이 세계시장과 기술개발을 리드하면서 세계의 산업구조도 크게 바뀌고 있다. AI와 같은 중요 기술이 국력을 좌우한다는 인식 아래 기업과 국가 간의 개발경쟁이 확대되고 있고 실생활에 AI 이용도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IT를 기반으로 한 AI가 인간의 행동을 컨트롤하는 데 이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이너스 측면도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AI가 몰고 오는 편익과 불이익을 비교하면서 연구개발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OECD가 제시한 과학기술이노베이션정책이라는 관점, 그리고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과학기술정책 방향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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