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교의 골프& 休] ‘태극기 동반’ 72홀…고진영의 품격, 캐나다도 매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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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교 기자
입력 2019-08-2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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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로라의 마그나 골프클럽(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캐나다 퍼시픽(CP) 여자오픈. 대회 기간인 나흘 내내 고진영과 함께 동반 라운드를 돈 건 데이비드 브루커 캐디만이 아니었다. 고진영의 뒷주머니에 꽂힌 태극기가 선명하게 새겨진 스코어북도 고진영의 발걸음을 따라 72홀을 돌았다.
 

[고진영의 뒷주머니에 꽂힌 태극기 스코어북.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이 스코어북은 브루커 캐디가 이번 대회에 앞서 고진영에게 선물했다. 뒷주머니에 무심코 꽂을 수도 있었지만, 고진영은 그렇지 않았다. 태극기가 눈에 띄도록 잘 보이게 넣었다. 그리고 이 스코어북에는 버디 26개가 적힌 ‘72홀 노보기’ 역사가 새겨졌다.

그렇게 고진영은 우승으로 향했다. 5타 차 우승. 2016년 리디아 고(뉴질랜드) 이후 3년 만에 시즌 4승을 수집했고, 2015년 박인비(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이후 4년 만에 72홀 노보기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캐디가 늦게 도착한 탓에 연습 라운드도 제대로 못 치르고 프로암 9홀만 돌고 나서 신들린 우승 스코어를 적어냈다.

21언더파를 기록한 니콜 라르센(덴마크)와 19언더파를 친 브룩 헨더슨(캐나다)도 정말 잘한 경기였다. 하지만 고진영을 넘어서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진영은 나흘 내내 페어웨이는 두 번 혹은 세 번, 그린은 한 번 또는 두 번만 놓쳤다. 그린 적중률이 90.27%를 기록할 정도로 아이언 샷이 예리하고 정교했다.
 

[LPGA 투어 시즌 네 번째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은 고진영.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고진영은 이번 대회에서 실력 외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샷을 할 때는 차분했고, 그 뒤에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캐나다 팬들에 대한 예의도 정중하게 갖췄다. 캐나다 골프 영웅인 헨더슨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잔잔한 감동까지 안겼다.

사실상 우승이 확정된 마지막 18번 홀. 그린을 향해 걸어가던 고진영은 갤러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 순간 우승의 기쁨에 사로잡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뒤처져 걸어오던 헨더슨을 돌아보며 먼저 손을 내밀어 챙겼다. 고진영은 헨더슨에게 “이 관중은 너를 위한 거야”라고 말했고, 헨더슨은 “아니야, 내가 아니라 너를 위한 사람들이야”라고 대화를 주고받은 뒤 어깨동무를 하고 나란히 웃으며 걸었다. 캐나다 갤러리들의 박수와 환호는 더욱 뜨겁게 그린을 달궜다. 세계랭킹 1위의 품격이었다.
 

[18번 홀 그린을 향해 고진영과 나란히 걷고 있는 브룩 헨더슨.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헨더슨은 고진영의 눈부신 성적을 존중했고, 그의 배려에 감동했다. 헨더슨은 “우리는 서로를 많이 존중했다. 내가 우승하지 못했지만 고진영이 우승해서 기쁘다”며 축하 메시지를 전했고, “나도 버디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고진영을 따라잡기에는 불가능했다. 그는 정말 100만 언더파를 칠 것만 같았다”고 치켜세웠다.

고진영은 이날 우승이 확정된 순간 하늘을 향해 키스 세리머니를 했다. 평소 신앙심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고진영이 할 수 있는 자신을 향한 경의의 표시였다. 우승 후 고진영은 “나 자신이 대단하다고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한 주였다”고 겸손한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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